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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하 Sep 25. 2024

마녀, 칸나

그간 칸나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 속에 숨어산지 20년이 넘었다.

가끔 길을 잃거나, 국경에서 넘어온 이웃나라 사람을 만난 적은 있으나 따로 마을 사람들과 교류한 적은 없었다.


이곳에서 ‘마녀’ 란,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람들과 단절된 삶이 언제부터였는지 칸나는 알지 못했다. 

처음 시작되는 기억에서부터 엄마와 이미 숲 속의 작은집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이젠 잔상처럼 남아있는 기억들 속, 지오니*와 칸나는 늘 웃고 있었다.

*지오니 - 칸나의 모친.


마을에 가지 않아도, 또래 친구가 없어도, 하루하루 즐거웠다.

지오니는 꽃과 과일 등으로 염료를 만드는 법과 먹을 수 있는 버섯, 열매와 풀들을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칸나의 머리카락을 계절마다 어린아이의 변덕에 맞추어 예쁘게 물들여주곤 했다.


밤이면 그녀는 어린 칸나를 재우고 늦게까지 마법을 공부했다. 

그리고 칸나가 글자를 깨우쳐 혼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즈음엔 아주 가볍고 쉬운 마법부터 가르치고 함께 연습해 나갔다.


칸나는 집에 몇 권 없는 외부의 책을 통해, 부모의 존재가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지오니가 ‘단 한 번’도 그에 관한 설명이 없었을 때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짐작에···


칸나가 열다섯이 되던 해, 지오니는 여느 때처럼 재료를 구하러 숲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보름 만에 돌아온 그녀는 곧 쓰러졌고, 얼마 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침대에 누워있던 내내 칸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던 지오니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책상 서랍에 있는 노트를 열어볼 것을 말하고 숨을 거뒀다.




<Part. 2>



사람과의 교류가 없던 탓일까. 

칸나는 정말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 공포··· 

모든 게 그녀를 덮쳐왔다.


시간이 흐르고 칸나는 지오니를 집 뒤 수국이 만발한 꽃밭 옆에 묻었다.

매일 그녀의 무덤 옆에 주저앉아서 먹지도, 잠을 제대로 청하지도 않고 멍하게 있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그러다 문득 칸나는 지오니가 말했던 노트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잠에서 깬 칸나가 고개를 들어보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던 지오니. 

그리고 미소를 띠며, 때론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 적고 있었던 노트.


칸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이제껏 보지 않았던 노트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러 권으로 작성된 노트들 속에는 많은 것이 적혀 있었다. 


알았던 것, 몰랐던 것, 지오니가 계속해서 살아있었다면 알려주지 않았을 것 같은 내용들도.

중간 중간 비어있는 기록들은 분명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들이 더 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칸나는 지오니가 떠난 후의 고독과 슬픔을 모두 노트와 함께 덮어두었다.


그리고 이미 있는 기록들이나 사라진 기록들에 집중하기보다 '살아달라' 는 지오니의 마지막 말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외면, 차별과 박해 등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곳에서 홀로 자신을 지켜온 엄마 지오니를 위해, 자신을 위해, 끝까지 이 삶을 살아내리라고 결심했다.




<일곱 난쟁이>



그 후 4년 뒤, 열매를 따러 나섰던 칸나는 광맥을 찾아 돌아다니는 난쟁이들을 만났다.

국경 근처 북쪽 산에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광산이 있다고 알려주자 그들은 칸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떠났다. 

한 번의 인연으로 끝날 것 같았던 그들과의 만남은, 난쟁이들이 매일 아침 광산으로 가는 길에 칸나와 안부인사를 주고 받으며 계속 이어졌다.


어느 날 저녁, 난쟁이들은 그을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누어주고 있던 칸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꺼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그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때론 하루종일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외롭게 있던 칸나였기에, 난쟁이들의 시시껄렁한 농담도 즐거운 삶의 윤활유가 되었다.


난쟁이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고, 자신들을 형제라고 소개했다. 

진짜 피를 나눈 형제인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잔혹한 시선과 차별 때문에 마을 안에서 섞여 살아가기 어려웠고, 약초나 버섯을 캐다 팔며 여기저기 떠돌이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다 힘들지만 비교적 큰돈을 벌 수 있는 광부 일을 알게 되어, 금이나 은, 보석을 캐다 파는 것으로 일을 바꾸고 정착할 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난쟁이들은 괜찮다면 칸나가 사는 곳 근처로 자리를 잡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



그녀는 잠깐 망설였으나, 소수라도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마음을 더 크게 움직였다.


한 달 뒤, 그들은 칸나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자신들의 집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난쟁이들은 광산을 오가며 칸나에게 필요한 약초나 재료들을 구해다 주기도 했으며, 마을에 내려가는 것을 꺼려하는 칸나를 대신해서 그녀의 약품이나 마법 물건들을 팔아주기도 했다. 


또, 숲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들도 사다 주었다.

칸나 역시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다치거나 아픈 난쟁이들을 마법약으로 고쳐주거나 빨리 낫도록 도왔다.


소외된 서로의 형편이 비슷하다고 느껴서일까. 

난쟁이들은 칸나에게 몹시도 친근하고 빠르게 다가왔고, 마음을 열었다.


이웃이자 친구.

칸나와 난쟁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자신들이 속할 수 없는 세상의 반대편에 서서 함께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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