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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n 18. 2020

10년 후에도, 옆자리에 내가 있어?

연애시절에 아내는 가리는 음식이 많았다. 음식의 맛보다는 보이는 모습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치킨은 잘 먹으면서도, 삼계탕은 다리를 꼬고 누워 있는 모습이 보기 안 좋다며 먹지 않았다. 잔멸치는 젓가락으로 잔뜩 떠서 먹으면서도, 이목구비가 뚜렷이 보이는 큰 멸치로 만든 볶음은 피했다. 당연히 온전한 모습 그대로 누워 있는 생선구이도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렇더라도 뼈를 발라내고 하얀 살점만 떼어서 밥 위에 올려주면 그 생선구이와는 다른 음식인 양 곧잘 먹곤 했다.



 

양대창은 20대 초반, 대학시절에 선배가 사주어서 처음 먹어봤는데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나 싶었다. 처음 경험하는 신세계였다.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이 소주와 딱이었다. 지금까지 이 맛을 몰랐던 게 괜히 억울했다. 주변의 모든 일이 술 마실 이유가 됐던 20대 초반의 시절에, 술 마실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양대창이 먹고 싶으니까!’


하지만 양대창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충당하는 대학생이 자주 먹기에는 너무 비쌌다. 한번 먹으러 가려면 돈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달치 돈을 받았던 날, 비싼 양대창을 사주는 게 아깝지 않을, 충분히 친한 친구와 먹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식당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우리를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여긴 그냥 곱창볶음집이 아닌데...’

신림동 곱창볶음집 같은 곳이 아닌데 너희 같은 어린 학생이 그 가격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눈빛이었다.

 

TV 어느 프로에선가 양대창 맛집을 소개할 때, 학생 때 있었던 그 얘기를 아내에게 해줬더니 관심을 보였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

내가 느꼈던 신세계를 아내에게도 체험시켜주고 싶었다.

‘궁금하지? 가자. 먹으러.’

낯선 생김새 때문에 처음엔 주저하는 듯하더니, 잘 익은 대창 한 점을 입에 넣어보고는, 처음 내가 양대창을 맛보았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날 이후, 양대창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주 찾는 안주가 되었다. 둘 다 돈을 벌고, 씀씀이가 컸던 연애시절, 양대창의 가격이 더 이상 무섭지가 않았다.




양대창은 소주와 잘 어울렸고, 양대창을 먹던 날은 늘 취했다. 평상시 취하면 둘 다 웃음이 많아지고 톤이 좀 높아졌는데, 그날 아내는 내내 차분했다. 이야기에 집중을 잘 못했던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몸이 좀 안 좋은 거냐고 물어보려는데, 아내가 먼저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10년 후에도, 옆자리에 내가 있어?’

건조하고 차분하게 말했지만, 이미 눈가엔 눈물이 잔뜩 괴어있었다.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으로 넘겼어야 했다. 비싼 안주 먹고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얘기했었어야 했다. 10년이 아니라 50년이 지나도 내 옆자리는 너일 거라고 자신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시선은 밖으로 헤맸고, 입이 굳었다.


아내는 10년 후의 내 옆자리에서 자신을 찾지 못했다. 보통의 연인이 평범하게 짐작해 볼 수 있는 결혼 이후의 모습을 아내와 나는 서로 공유한 적이 없었다. 난 그때까지 한 번도 결혼 이후의 우리의 모습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 퇴사 고민과 퇴사 이후의 불안 속에서 결혼은 선뜻 꿈꾸어지지 않았다. 내가 내어주지 않은 옆자리를 아내가 찾을 수는 없었다.


저 생각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왔던 걸까.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아픈 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속시원히 묻고 싶은걸 얼마나 참았을까. 내가 먼저 말해주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말을 꺼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선뜻 물어보기 어려워 술의 힘을 빌린 걸까.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에 내가 취하길 기다린 걸까.


머릿속이 꽉 차 있으면서도 텅 빈 거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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