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만나기 이전에 했던 연애는 과정도 결과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난 상대방이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넓은 어깨를 가졌어야 했다. 남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장점을 볼 수 있는 눈과, 무엇이든 공감하면서 들어줄 수 있는 귀,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해주는 입을 가졌어야 했다. 이상적인 연인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내 능력을 뛰어넘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갖추어야 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그런 능력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그냥 스스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둘의 관계에서 든든한 울타리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빚어낸 배려심과 이타심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았다. 대가를 바라는 행동은 채권자의 마음이 되어, 언젠가 나에게 되갚아 주기를 바랐다. 외상장부에 일일이 기록하고, 매일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둘 사이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건, 대가를 바라고 하는 행동들이 점차 쌓이지만,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들 때부터였고, 그렇게 삐걱대기 시작한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엔 늘 해왔던 연애와는 달랐다. 아내는 대가를 바라는 행동을 할 때마다 바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방적인 배려도, 아내는 고마워했다. 별것 아닌 작은 친절에도 감동하고 좋아했다. 외상장부에는 한 줄도 적을 게 없었다. 오히려 어떨 때엔 내가 빚을 진 것 같았고, 내가 받은 만큼도 돌려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핑계로 빚을 갚는데 게을러도 아내는 독촉을 하지 않았다.
내 것과 아닌 것의 경계가 희미해져 갔다. 경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나 혼자 멋대로 그어놓은 선일뿐이었다. 아내의 선은 둘을 감싸면서 바깥에 있었다.
당시에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생각하면서 물러진 정신은 작은 공격에도 쉽게 무너졌다. 한 번은,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회사 동료의 서운한 말이 준 상처를 견뎌내기가 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나 조금만 기댈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법도 했는데, 아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단지 어깨를 내어주고 가볍게 등을 토닥거리기만 했다. 그 10분 남짓의 시간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안했다. 그건 아내가 나에게 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 평온한 시간은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를 이제 더 이상은 그만하고 싶다는 바람을 뭉갰다. 무너질 때마다 이렇게 기대어 잠시 쉬면 회사 생활을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물론 회사는 미처 치유되기도 전에 다시 상처를 줬지만, 아내의 존재는 더 이상 내가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고, 그것만으로도 한번 더 일어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