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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un 04. 2020

식당을 차리겠다는 꿈을 접었다.


회사를 그만 두기 위해서는 돈을 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식당을 차리면 좋을 것 같았다. 결혼 전 연애시절에 아내는 주말이 되면 혼자 살던 집에 놀러 왔다. 놀다가 밥때가 되면 대부분은 밖에서 사 먹었지만, 가끔 요리를 하기도 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내놓은 음식이었는데 아내는 맛있게 잘 먹었다. 매번 잘 먹으니 신이 났다. 요리하는 횟수가 빈번해졌고, 할 때마다 맛있다는 칭찬을 기대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해됐다. 요리가 재미있어졌다.

    

성공해서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작은 식당이면 될 것 같았다. 테이블은 3개 정도만 놓고 메뉴는 하나만 정해 내놓으면, 그리 버겁지 않게 운영을 할 수 있을 듯했다. 하나의 메뉴만으로 승부를 볼 거니 그 메뉴에 경쟁력이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요리 유학을 떠올렸다. 라멘이라면 일본에서, 에그타르트라면 포르투갈에서, 크로켓이라면 프랑스에서 1년에서 2년 정도 배워오면 경쟁력 있는 메뉴가 될 것 같았다.


퇴사 이후 유일한 밥벌이가 될 직업이니 신중해야 했다. 식당 운영에 노하우가 없다는 점이 내심 불안했다. 다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걸로는 부족해 보였다. 그때부터 프랜차이즈 식당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 돈 내고 노예가 되는 거다, 어떨 때는 아르바이트생 보다도 적게 번다는 얘기도 보였지만, 어차피 배우는 것이 목적이어서 상관없었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최소한 망할 거 같지 않았던 죠스떡볶이가 괜찮아 보였다.


죠스떡볶이를 3년 운영하고 2년 유학을 다녀온 이후 내 식당을 연다!


마음이 편해졌다. 스스로 인생을 계획 할 줄 아는 어른 같았다. 전체적인 뼈대는 잡았으니 살만 붙여나가면 성공할 거 같았다. 적어도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맥주 안주로 자주 사던 슬라이스 치즈가 있었다. ‘맛있는 치즈’라는 이름이었다. 배부를 때 먹기 좋았고 물리지도 않았다. 입에 넣으면 자연스럽게 녹고 부드러웠다. 매번 마트에 갈 때마다 꼭 하나씩 카트에 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치즈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인기가 좋아 다 팔려나간 거라고 짐작했다. 다음에 사야지 했는데 다음번 장 보러 갔을 때에도 그 치즈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번에도 없었다. 단종된 것이다. 그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가 대중적인 입맛이 아닌 건가!’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 나초를 자주 먹었을 때 ‘짜 먹는 체다치즈’와 함께 먹으면 좋았다. 다른 체다치즈는 뜯으면 한 번에 다 먹어야 했는데, 이건 마요네즈 용기처럼 먹을 때 적당량만 덜 수 있게 된 제품이었다. 물론 맛도 있었다. 이것도 단종됐다. 특정 브랜드의 샤오롱 만두와 즉석 곱창볶음도 사라졌다. 자주 가던 식당은 빈 테이블이 많았고, 어느 날 갑자기 폐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너무 매워서 가지 않는 떡볶이 집은 인기가 좋았다.


맛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었다. 나는 전라도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고, 음식의 맛은 늘 중요했다. 맛집 선정의 기준은 까다로웠다. 마트에서 무언가를 살 때에도 신중했다. 경상도 음식을 먹으면서 자란 아내의 입맛을 한 수 아래로 여겼다. 아내는 그 맛있는 고등어구이를 비리다고 먹지 않았다. 게맛살이 맥주 안주인 취향을 얕봤다.


단종된 슬라이스 치즈는 내가 비주류의 입맛일 수 있다는 의심의 단초가 됐고, 그건 충격이었다. 비슷한 몇 번의 경험을 더 하고 난 후 깨달았다. 남들보다 맛을 잘 아는 게 아니라 그냥 별난 입맛일 뿐이었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건 위험했다. 식당을 차리겠다는 꿈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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