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출판사가 보내준 20권의 따끈한 책을 박스에서 꺼내 몇 권씩 나누었다. 가족에게 보낼 책, 이전 회사 사람들에게 보낼 책, 친구들에게 보낼 책으로 구분해 책장 빈 곳을 채웠다. 그러고는 한 권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건 당신 꺼.’
아내가 낸 첫 번째 책인데 출판사에서 보내 준 20권 중의 하나로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내 나름대로 기념을 하고 싶었다.
‘난 됐어. 직접 서점에 가서 내 돈으로 살 거야.’
책 몇 권을 챙겨 들고 장모님을 찾았다. 장모님은 책이 나오기 전부터 당신이 간직하실 책, 그리고 주변 지인에게 선물할 책을 몇 권 부탁하셨었다. 딸이 직접 쓴 책을 손에 든 장모님은 책을 앞으로도 넘겨보시고, 뒤로도 넘겨 보시며 딸을 기특해하셨다. 그러다 표지 한 장을 넘기시고는 빈 공간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여기 사인도 좀 해라.’
아내는 이전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인 요구가 당혹스러운지 ‘뭐라 쓰지?’, ‘나 완전 악필인데.’라고 혼잣말을 하며 땀을 닦았다. 멋진 문구와 함께 잔뜩 휘 갈긴 사인이면 좋겠는데, 처음 해보는 아내의 사인은 정직했다. ‘행복하세요.’와 같은 흔한 문구에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아내는 내 글을 좋아했다. 브런치에 올린 첫 글부터 지금까지 첫 번째 ‘좋아요’는 항상 아내 차지였다. 지치지 않는 독자였고, 가장 큰 응원자였다.
‘투고를 해 보는 건 어때?’
나의 글이 브런치에서만 머무르고 있는 게 아쉬웠는지 아내는 이따금씩 출판사에 글을 투고해 보는 건 어떨지를 물었다. 나의 대답은 늘 같았다.
‘안 할래. 아쉬우면 지들이 먼저 연락하겠지.’
우물은 아쉬운 쪽에서 파는 거라고, 난 별로 급할 게 없다고 아내에게 얘기했지만, 사실 아쉬운 쪽은 나이긴 했다. 투고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투고를 하더라도 내 글을 책으로 내겠다는 출판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에겐 작년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를 한 것이 일종의 투고였다. 내가 응모한 글이 대상작으로 선정이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좀 더 기대를 걸었던 건 대상작 발표 이후였다. 열 군데의 출판사가 대상작을 찾으면서 내 글도 읽어볼 테고, 대상감은 아니다 하더라도 내 글이 책으로 나올만하다면 대상 발표 이후에 따로 나에게 제안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작년 12월 발표한 브런치북 대상 리스트에 내가 응모한 글이 없다는 걸 알고도 그리 실망을 하지는 않았었다. 기대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열 군데 중에 한 곳은 연락이 오지 않을까? 아마 분명 올 거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브런치를 들락거리며 제안을 계속 기다렸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책을 내자는 제안은 오지 않았다.
나는 내 글이 재미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도 새롭고 흥미진진하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내용에서는 ‘그래. 맞아. 내가 그렇게 힘들었었지.’ 하며 맞장구를 치고, 아내와의 연애 때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마치 연애 소설이라도 읽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밤늦게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브런치에 내가 쓴 글을 다시 읽고, 그 이야기를 함께 공감해준 사람들의 댓글을 꺼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어제 늦게 잠들었어?’
‘응. 내 브런치 글 읽느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아내가 물을 때, 그 이유를 대답하는 게 조금은 민망했다.
아내도 나도 브런치에 쓴 내 글을 좋아하긴 하지만, 돈을 내고 읽을 만한 글인가에는 늘 의문이 들었다. 알찬 정보가 있다거나 마음에 위안을 주는 글이라면 좋을 텐데, 난 그런 글을 쓸 재주가 없었다. 지금은 다른 분들이 쓴 에세이를 사서 읽기도 하지만, 이전에는 소설이나 인문과학책만 찾았었다. 에세이 책은 사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정보나 감동이 없는 내 글은 돈이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투고는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응모한 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아내의 책 20권이 집에 도착한 날 오후, 한동안 뜸하던 브런치에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몇 달만의 제안이었다.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낯선 이름의 한 출판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