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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y Oct 24. 2021

까칠한 척을 하는 여린 사람

Revised on Oct 24, 2021

(왼쪽 아래) 귀면각 위에 접목되어 판매되는 밍크 선인장의 모습 (사진: 나)



밍크 선인장은 보기만 해도 부드러울 것 같은 하얀 밍크를 두른 모습을 하고 있다. 만지면 밍크를 만지듯이 매끄럽고 부드러울 것 같지만,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섣불리 밍크 선인장의 밍크를 만지는 순간 손 끝으로 느껴지는 따가운 고통에 아파할 것이다.


밍크 선인장은 밍크를 두른 선인장이 아니라, 부드러운 털처럼 보이는 아주 가느다란 가시가 빼곡히 둘러있기에 조금이라도 살에 닿는 순간 엄청난 아픔을 느끼게된다. 사실 밍크 선인장은 우리나라에서 밍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원래 밍크 선인장의 이름은 백섬 선인장이며, 백섬 선인장이 철화가 되어 널찍한 부채모양이 된 것이 백섬 철화 선인장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밍크 선인장이다.


이렇게 함부로 겉모습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은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위험하다. 가시에 찔려 버린 사람도, 갑자기 공격을 받은 선인장도 동시에 상처를 입는다.




내가 키우던 어린 백섬 선인장 (밍크 선인장)



이와 반대로, 겉으로는 날카롭고 두꺼운 가시를 가지고서는 딱 봐도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모양의 식물도 있다. '흑룡각'이라는 다육 종류의 식물이다. (선인장도 다육 종류의 하나이다)



크고 날카로운 가시 모양을 가진 흑룡각, 그리고 그의 꽃 (사진: 나)


찔리면 바로 큰 상처가 날 것만 같은 모습을 한 흑룡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아주 말랑말랑한 촉감을 자랑한다. 뾰족한 가시 모양을 한 모습과는 다르게 아주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리고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벨벳 느낌의 꽃도 피워낼 줄도 안다. 이 흑룡각의 꽃은 나도 정말 의외였는데, 꽃을 전혀 피우지 않을 것만 같던 흑룡각이 충분한 해를 보여주고, 필요한 만큼의 물을 주니 가시 모양의 잎 사이사이로 꽃망울을 올리고서는,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었다.


나 또한 섣부른 판단을 최대한 줄이며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숙이 박힌 나의 편견은 이렇게 또 오해를 일으킨다. 흑룡각을 보며 편견 없이 살고 있다는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흑룡각에게서는 꽃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 꽃이 저렇게 아름다울 줄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오해와 편견을 내보인 사람들이 흔히 하는 변명을 나도 해버렸다.


"그렇게 생기지 않아서 몰랐어."

"그렇게 안 생겼는데 의외네."

"그럴 줄 몰랐어."


까칠하게 생겼지만, 혹은 일부로 까칠한 척을 하는 사람이나 식물들은 오히려 더 여린 속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험난한 세상에서, 혹은 상처 주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려 일부로 가시를 더욱 크게 세운다.


누군가는 무엇을 판단하기 전에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겪어볼 시도조차도 하지 않은 채 보이는 겉모습과 몇 마디의 말로 편견에 가득 찬 판단을 한다. 의도하지 않게 겉모습으로 맘 판단을 당한 당사자들은 이렇게 섣불리 판단되어 정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억울해한다. 하지만 여린 그들은 그렇다고 변명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저 흑룡각의 사진을 본 후 저 식물은 까칠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직접 만져보지도 않고서 느끼는 가짜 생각이자 편협한 편견일 뿐이다.


이 넓은 세상에 만날 사람들은 한정적이고, 나의 시간도 한정적이다. 굳이 모든 사람들에게 착하고 친절한 천사로 보일 필요는 없다. 소중한 나의 시간과 감정의 낭비일 뿐이다. 나는 이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것이 길가에 돈뭉치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밍크 선인장처럼 부드러운 겉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여 함부로 만져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항상 웃고 있다고 저 사람은 항상 행복하며 걱정 같은 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섣불리 생각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저 웃음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큰 상처와 힘듦이 있기에 오히려 부드러워 보이는 가시들로 아픈 자신의 상처와 여린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 일 수 있다.


밍크 선인장과는 반대로, 흑룡각처럼 뾰족한 가시 모양을 하고 있다고 딱딱하고 무서운 식물이라고 편견을 가져서도 안된다. 크고 뾰족한 가시를 가지고 있다 하여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상처가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그것은 오해이자 편견일 것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더 여리기에 더 이상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상처 줄 수 있는 것들에게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일부로 무서운 가시 모양을 하고 억지로 강한 척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그들의 속사정을 알지도 못한 체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을 바탕으로 함부로 부드럽네, 까칠하네 라고 판단할 권리가 없다. 부드러운 밍크의 모습을 한 까칠한 밍크 선인장과, 무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린 흑룡각 둘의 공통점은 온몸에 가시를 둘러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여린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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