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아닌 친구였다.
과거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대의 젊은이는 대부분 치기 어리고 맹목적이며 대책없이 앞만 보며 달리지만 30대는 없을 것처럼 행동한다. 나도 그랬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든 조심스럽고 두려우며 무섭다.
싸움은 되도록 피하며 또 싸워야 한다거나 조율점을 찾아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지치고 힘든것보다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미덕이니 그렇게 해야만 편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런 삶이 차라리 편했다.
결혼생활의 미덕도 그러한 것이겠거니 당연히 그래야만 서로가 맞춰진다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그게 독이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독이 되었고 우리라는 존재였던 과거에도 독이 되었고 그래서 남이 되었다.
그런 남과 한달이 지나 전화한통을 받았다.
설레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고 그저 반갑게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고는 알게 되었다.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늘 막힌 존재처럼 생각하더니 이젠 전혀 아무렇지 않은데,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는 언제부터 가족이 아닌 친구가 되어버린채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일지 1년, 2년......각자가 되어 안본지 몇달 지나고 한 달만에 울리는 전화, 그 너머 들리는 목소리에서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채 무덤담하게 전과 다름없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어쩌면 처음으로 크게 다툰 그날 이후 확연하게 나뉘어졌다.
인정하기 싫었고 인정할 수 없었다.
한 달만에 들리는 그 목소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레임은 언제부터 사라졌을까.
노력하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채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며칠째 입었던 그 옷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달이 지난 후에도
두 달이 지난 후에도
그리고 1년이 되어가는 어느 날에도 더 이상의 설레임은 없었고 아이스크림이 생각날 정도로 답답했다.
가족인 줄 알았는데 가족이 아니라 친구였다. 친구의 모습에서 볼 수 없었던 그 미묘한 복잡다난함이 생각 났지만 전혀 원하지 않는 관계였다.
이제 누군가로부터 설레일까.
설레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지금은 혼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