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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원단, 앞면과 뒷면 구분하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by 연어사리

"쌤,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예요?"

"못하는 거 많아요. 자자 보세요. 저는 정리도 잘 못하고 청소는 정말 못합니다."


사람들은 스윽 보이는 것으로 대부분 판단한다. 수업을 하고 소품을 만들고 글을 쓰고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행하고 때론 만나지 않는 시간에도 완성된다.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알기 위해선 대화를 해보면 알게 되고 글쓰기는 노력한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

물론 타고난 감각도 영향을 주겠지만 그건 찰나일 뿐이라 생각한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야'

글이 쓰고 싶어서 글쓰기 중이라고 했을 때 아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잊고 있다가 한 번씩 생각이 난다. 글은 손과 머리를 이용해 쓰는 거지 어떻게 엉덩이로 쓴다는 것인지. 오랫동안 생각해 봤었는데 비유적 표현 안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오랜 시간의 노력과 끈기, 멈추지 않는 열정,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 단어가 '엉덩이'였다. 한 곳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버티기를 말하며 얼마나 몰두하는 지를 알려준다.


생각해보면 내 나름의 기획이었다.

정리와 청소가 최하위가 된 것은 30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였다. 30대부터 건강상태가 늘 바닥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건강하다 못해 과해 넘쳤던 20대는 늘 그렇게 젊고 강할 줄 알았다. 참고 버티며 스트레스를 단기간에 몰아 받아보니 내 체력은 한계를 드러냈었고 몸은 '더 이상 못해'를 외쳤다. 28살의 내 몸은 여자로서의 모든 기능을 멈추기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연애는 할 수 있으나 결혼시장에서는 상품성이 없는 여자가 되었다.


내가 왜 여자로 평가받아야 하고 결혼시장의 상품성이 없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시간을 책을 읽으며 이겨냈었다. 이후 나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건강은 되돌릴 수 없었다.

20대의 호기 넘치던 자만과 불평.

그것은 사랑을 모르고 감사를 몰랐다.

자신이 가진 것이 물질이 아니면 모두가 다 없는 것이라 치부했다.

그런 불성실함은 마음을 갉아먹었고 그것은 스트레스라는 친구를 보상인 듯 트로피로 만들었다. 결국 나쁜 친구를 사귀며 남 탓을 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20대는 노력을 몰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빛이 났고 예쁨을 받았다.

30대부터는 무엇이든 자신의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가끔이지만 엄청난 보물 수저가 있어서 앉아만 있어도 큰 보상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 소유권이 불분명해질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은 노력해야 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도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도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는 것은 없다.


KakaoTalk_Photo_2022-11-17-22-46-54 002.jpeg 사각 재단한 자수 원단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도 끊임없이 노력한다.

만들고 싶은 것과 삐뚤빼뚤한 것을 최대한 피해 가며 노력한다.

원단의 앞 뒤면을 보는 것도 알아가고 실의 종류도 알아간다.

바늘의 사이즈나 재질에 다른 차이도 알아간다.


"나는 여자인 것이 싫어."

친구가 고백한 사실이다. 슬픈 말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말을 하는 여자들이 꽤 많다. 친구의 슬픈 대답에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여자인 게 좋은데."

여자이기에 우선순위로 누리는 것들이 있다. 바느질을 하거나 꽃을 좋아하거나 화려한 프린트 원단에 빠지거나 인형이나 리본이 가득한 액세서리를 만든다. 만약 남자가 좋아하고 누린다 해도 사실 이상하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여자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하니 내 입장에선 여자라서 대놓고 좋아해도 되는 것이다.

내가 여자이기에 저런 취향인가 싶지만 남자여도 좋아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만든 노력의 결과물들 중,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 무늬가 없고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려한 것은 평면적이지도 않다. 입체적이며 여러 가지 재료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만들어 보인다.

좋아하는 재료 중에는 자수 원단이 있다. 여자이기에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여자가 아니라도 그 누구에게도 잘 어울리는 고급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자수에 얇은 솜 원단을 덧대고 그 뒤에 광목을 대면 꽤나 튼튼하고 멋지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갖추어진다.


노력하지 않고 예뻐질 수 없다.

바느질의 결과물들은 반복 반복, 엉덩이로 글을 쓰는 것만큼의 노력과 관찰이 필요하다.

가끔, 마음이 흔들린다.

대충 해볼까? 빨리 완성해볼까?

그러다가 자수 원단의 뒷면을 앞면 인척 작업했다.

바쁘면 앞뒤가 잘 안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갑자기 나태주 시인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노력의 결과물은 자세히 보아야 실수를 찾는다.

대충 하듯 습관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몸이 아프니 그 핑계로 엉덩이가 가벼워졌나 보다.

초심을 잃었고 노력을 깜박했다.


자수 원단의 작은 보풀이 뒷면이라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데 빨리 완성하고픈 마음에 자세히 보지 않았다. '자수 원단은 예쁘니깐 된 거야.'라고 생각했다. 자세히 보면 자수 원단에는 정말 세심한 구분이 있는데 보고 싶지 않았다.


러그 퀼트를 하고 싶어 재단해 놓고 바느질을 계속 미루고 있다가 작업하려 보니 집중이 안돼서 앉아 있기 힘들어서 등등 핑계로 미루다가 재단하려고 하니 다시 힘이 빠지길래 멍~ 그때 보였다.

접착 솜 원단을 다리미로 누르면서 보니 이상했다.

절반이나 반대로 준비했다.

급하게 하려고 만드는 게 아닌데 한 땀 한 땀 나에겐 치유제와 같은 결과물인데 잠시 잊었었다.

아마도 또 늦게 완성되겠지?




건강검진을 다녀왔습니다.

늘 그렇듯 시원한 해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인 것은, '창작'이라는 즐거운 치유제가 있습니다.

뜯고 다시 만들고 이런 과정이 노력한만큼 모두가 반영된다고 생각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완성을 하려 했더니 재단이 뒤집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웃음이나 나고 재밌더군요.

바쁠 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잠시 물러서서 완성되었을 때 모습을 떠올립니다.

노력없이 아무것도 없다.

지금 누리는 것에 감사하며 큰 목표안에 어떤 결과물이 되어 배치될지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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