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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대중목욕탕

나를 보고 예쁘다고?

by 연어사리

날이 추워졌다.

겨울에 영하로 떨어진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날의 변화가 너무도 급격했다.

가을이 아니라 봄날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가 갑자기 영하의 날씨가 되었다.


인생의 봄날도 계속될 것 같지만 봄날의 끝, 삶의 하반기도 어느 순간 훅~ 들어온다.


따끈한 어묵탕과 찐빵, 고구마, 붕어빵 이런 간식들이 줄지어서 생각나는 거 보니 확실하게 추운 것 같다. 겨울 간식만큼 간절해지는 것은 뜨신 아랫목, 김이 올라오는 따순 목욕탕.


구례에도 인구가 많을 때가 있었다.

동네 목욕탕마다 사람이 가득가득, 엉덩이 붙일 곳이 없는 곳에서도 씻어야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커다란 탕 옆에 대야와 물바가지를 끌어안고 묵은 때를 벗겼었다.


문득, 과거가 떠오른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 하던데...... 그런 것일까.

집에서도 샤워는 할 수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 대중탕을 다닌다. 커다란 욕조에서 상쾌한 물 냄새를 맡으며 일주일의 피로를 덜어내고 나면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용기를 얻어오는 것인지 재충전하는 것인지 애써 구분하고 싶지 않지만 목욕탕에 버리고 오는 묵은 때만큼 새로운 것을 가져오는 것은 틀림없다.


구례에 살며 읍내에 있는 대중목욕탕보다는 산동온천이나 남원의 찜질방을 선호했다. 아는 사람을 만나기 싫어서 보다는 살찐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목욕탕에서 아는 척을 할 만큼 친한 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변한 내 몸만큼 변한 내 생각조차 들키기 싫었다.


Tesa Robbins, 출처 Pixabay

글을 써서 좋은 점.
글을 쓰고 또 쓰다 보니 내면을 보게 되었다. 왜곡되지 않은 거울 속, 마음의 솔직함을 얻은 것이다.

문득 가까운 곳의 목욕탕을 가보고 싶어졌다.

자동차를 예열해서 15분 이상 걸리는 곳의 목욕탕이 아닌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상점에 가장 가까운 곳에 목욕탕이 있다.

그곳으로 가자.

입구부터 낡았다.

어릴 적 기억 속 입구는 같은데 내부는 기억과 다르다.

사람은 몇 명 없는데 탈의실 보관함은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몇 개 없다.

정리되지 않은 개인 목욕바구니들, 일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마구 놓인 개인 물품들.

'이곳이 왜 오고 싶었을까?'

마음의 후회스러움에 솔직하게 나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이었다.


탕 안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후회감.

'도대체 이곳이 왜 오고 싶었니?'

샤워기가 없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에 자리 잡고 오랜만에 바가지를 사용해 씻었다.

어떤 기억부터 왜곡되고 잘 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억 속 모습이 아닌 탓에 한참 당황했다.

기억 속의 목욕탕 구조는 도대체 어디 목욕탕인 것일까.

이 목욕탕에 마지막에 온 것은 30년 전일까? 25년 전일까?


목욕을 마치고 나와 탈의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두 분이 연어를 보더니 말씀하신다.

"이삐다. 이뻐."

그녀의 말에는 젊음에 대한 부러움과 노년의 회한이 느껴진다.


젊음에 대한 부러움은 내게도 있다.

그러나 나와 그녀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에게는 부러움만 있으나 그녀들에게는 슬픔과 후회가 함께 있었다.

시절에 대한 부러움과 슬픔일까.


구례에는 크고 작은 목욕탕이 10여 개 정도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산동 온천지구에 주기적으로 운영하지 않는 곳도 포함한다면 훨씬 많겠지만 대충 일정하게 문을 열고 영업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이다.

지금은 읍내에만 4개 정도 있다.


그곳을 누가 찾을까 늘 궁금했다.

집집마다 목욕탕이 다 있고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오는 집에 사는데 요즘 시기에 목욕탕을 굳이 누가 오려나.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 시골이라서 나이가 들어서 또는 혼자 사는 게 싫어서 그렇게 사라져 간다.

대중목욕탕도 사라져 간다.

살찌고 나이 들어가는 나를 보고 이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


이상한 상상을 해본다.

목욕탕에서 버리는 묵은 때만큼 사람의 나이가 들어간다.

목욕탕에서 버리는 것이 묵은 때인가, 젊음 인가.

혹은 목욕탕에서 남겨지는 것이 사람의 감정일까.


오래된 목욕탕에 들어설 때 감정과 나올 때 감정이 달라졌다.


추억의 목욕탕.

어린 시절에 보았던 젊고 예쁜 이모들은 중년을 훨씬 넘긴 장년의 여사님들이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며 목욕을 하며 활력을 찾는다.

그러나 혼자서 목욕을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다시 그곳을 가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한다.

목욕탕의 오래된 타일처럼, 마음속에도 굳은살 같은 타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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