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과 선물의 가치

비례와 반비례로 구분할 수 없다.

by 연어사리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주머니에는 돈이 없다.

돈은 있지만 내 돈은 없다.


'돈'이라는 것을 명사로만 보면 의미와 상관없이 문맥에는 그럭저럭 맞다.

명사로서가 아닌 여러 가지 상황에서 돈의 실물과 화폐의 의미로서 본다면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돈이 있어야 삶이 윤택하기에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지만 돈에 쫓기고 돈에 짓눌려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돈은 쫓아갈수록 도망가고 돈은 멀리하고 막 대하면 또 멀어져 버린다.


어려운 돈!


얼마 전에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왕복에 들어간 돈은 버스비 60,000원과 지하철 요금 2,500원, 감기가 걸린 아들에게 먹이기 위한 도시에만 있는 브랜드의 캐릭터 도넛 13,000원.

10만 원도 되지 않는 돈.

신사임당으로는 2장이 안되고 세종대왕은 10장이 안된다.

혼자라서 가능한 비용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좀 넉넉히 잡으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고 조금 많이 걷고 움직이면 충분한 돈이었다.


1998년 고등학생이던 내가 엄마에게 여행 간다고 하고 받은 용돈 10만 원.

그때는 그 돈이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의미이며 얼마나 큰돈인지 몰랐다.

기차를 타고 친구와 무박 2일 동안 철없이 펑펑 썼던 10만 원.


2022년 겨울, 10만 원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서울을 왕복하고도 남는 돈이며, 일주일 식비가 될 때도 있고 한 끼 식사 비용이 될 때도 있으며 아이의 신발 한 켤레 값일 수도 있고 부모님 용돈이 되기도 하며 결혼식 축의금이 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누군가의 속옷 한 장 가격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계절 잠옷 한 세트의 가격이 된다.

그래 어떤 날에는 이불을 한 세트 살 수도 있고 화장품 한 개의 가격이 되기도 한다.


1년 전 명절에 선물 받은 오일클렌징.

며칠 전 친구가 선물 보내준 오일클렌징.

가격도 다르고 브랜드도 다르고 용량도 다른데.

두 개의 가치는 같다.


생각지도 않은 소중한 이들이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보내온 선물.

쓰임새도 다르고 향도 다르고 용량도 다른데.

1년 전 오일클렌징을 처음 받고 방자한 생각을 했다.

'안 쓰는 브랜드인데, 좀 부담되는데...'

쓰기를 주저하다 포장된 상자채 보관했다. 문득, 아낄 필요 없다는 생각에 마구마구 쓰다 보니 벌써 바닥이 보이는 제품.

사용하면 할수록 처음의 부담과 달리 '덕분에 이렇게 좋은 걸 사용해 보는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넘치고 넘쳐서 행복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그분에 표현하지 못했지만 감사함을 느꼈다.

감사함 덕분이었을까 선물 받은 오일클렌징 수명을 다 할 즈음에 친구가 보내온 오일클렌징.

이제는 2배로 감사하고 3배로 행복해하고 있다.


물건을 꼭 돈으로 구매해야만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맞춰 쌀독에 쌀이 채워지는 것처럼, 선물이 선물을 불러오는 것처럼.

돈이 없어도 살아가고 있다.

검은 토끼, 구례현상점 - 표정이 너무 뾰로통하다.

그들에게 새해가 오기 전에 선물을 하려 한다.

돈을 넣지 않는 혹은 동전을 넣는 주머니와 토끼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

토끼 인형은 2024년의 검은 토끼를 의미하는 것 마냥 검은 것이 좋으려나.


시집가고 얼마안되어 있었던일이다. 시댁 어른 한분이 복주머니를 선물해주셨다.

빳빳하고 날카로운 천 원짜리가 가득 든 직접 만드신 복주머니.

아이와 함께 건강하라고. 잘 살라고.

멀 이런 걸 주시나 촌스러운 원단에 사용하지도 않는 복주머니를.

그런 오만한 생각들.


한참 지나고 보니.

이제는 그 의미가 새롭다.

복주머니를 만들어 선물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알 거 같다.


소유한 것들이 손을 거쳐간 것들이 사라져 가고 수명을 다해가며 흘러가는 시간조차 아까워진다.


글 하나 적음에 점하나 선택하는 것조차 소중해진다.









keyword
이전 10화반달곰처럼 묵묵하게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