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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처럼 묵묵하게 살아가기

두 번째 스무 살, 또다시 취준생.

by 연어사리

스무 살, 봄날의 햇살처럼 빛났던 날들.

햇살은 따사롭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두려움의 날들이었다.


두 번째 스무 살, 가을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가진 게 많고 쓸데없이 아는 게 많아서 두려워진다.


약속이나 한 듯 도시사는 친구들의 안부인사 다음에는 귀촌, 귀농에 대한 질문들이다.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 귀촌.

저수지에 노는 청둥오리의 물아래 발길질 같은 삶은 중요치 않다.


그들의 눈에는 또 다른 취업을 준비 중이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한다.

그들의 눈에는 나는 안정적으로 보일까? 즐거워 보일까?

도시든 시골이든 사는 건 같다. 조금 더 나아 보이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례에서 8년, 연어는 창작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부모님과 함께한다.

경제적인 여유로움은 포기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정정한다. 포기가 아니라 잠시만 미뤄두는 것이다.


부부가 싸울 때는 남보다 못하지만 공통의 목적을 함께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 단결된다.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10년 뒤를 준비 중이다. 조기 은퇴를 꿈꾸기도 하고 조기 은퇴 전에 투잡으로 병행하기도 한다. 모두들 바지런하다.


KakaoTalk_20221202_104259485_08.jpg 구례현상점에서 만든 반달 곰인형?? 곰인형.

구례현상점은 밤늦게 불이 켜진 채 인형 만들기에 푹 빠져있다. 만들어 놓은 곰인형 들은 만드는 즉시 바로 임자가 나타난다. 이번에 만든 곰인형 들도 포장을 앞두고 있다.


인형은 누군가의 품 안에서 함께할 때 그 생명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관만 한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하나둘 갈 곳을 찾아주어야 한다. 다행히도 인기가 많아서 갈 곳이 빨리 정해진다.


두 번째 스무 살의 불안함, 요즘 곰인형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 불안함의 여파였을까.

하루가 바쁘다.

동네 어르신의 말을 빌리자면, "공부 많이 한 자식은 멀리 살고 못 가르친 자식은 효자야."

멀리 산다고 효자가 아닌 것은 아니겠지만 멀리사는 만큼 함께 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장거리 연애가 실패하는 많은 이유는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불안함이 쌓이다 폭발하는 것 아닐까.

자식이 많아도 가까이 사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어르신의 말처럼.

생각지 않게 연어는 효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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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귀농은 장점만 있지 않다.

첫 번째 스무 살에는 몰라서 시키는 대로 했지만 두 번째 스무 살부터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러기에 사는 곳도 일하는 것도 버티는 것도 모두가 내 탓이다.


선택, 원치 않는 선택이었지만 은퇴계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밤새 곰인형을 만드는 즐거움도 있지만 귀촌귀농은 정착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내일은 무엇을 해야 할지 내년에는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는 선택을 결정해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지역에 살아가는 친구들의 안부 전화는, 안부로 시작해 귀촌귀농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관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 스무 살에는 대학을 다니거나 대학을 졸업할 시기쯤 되면 대학을 다녔든 안 다녔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다. 두 번째 스무 살이 지나자 학교는 다니지 않아도 되지만 준비할게 많다. 돈도 잘 관리해야 하고 아이도 관리해야 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친구도 적당히 있는 게 좋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모두에게 부여받은 같은 하루, 24시간.

그것을 채워가는 것은 모두가 다 다르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 하루를 묵묵히 살아가는 것은 의무이자 사명 같다.


오늘도 묵묵히, 곰처럼 우직하게 살아가고 있다.



친구가 갑자기 MBTI성향을 묻길래, 이제야 한번 해봤습니다.

'ENFJ-A 선도자'라고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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