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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쌈지 + 책(book)

까칠한 마음을 보듬다.

by 연어사리

지나가는 사람들 중 익숙한듯한 얼굴, 본 적은 있지만 어디서 봤는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혹은 친척이었을까. 어린 시절 기억 속 누군가를 닮은꼴인지. 동창? 선배?

'어디서 봤을까?'

마음은 대놓고 묻고 싶지만 한참 망설이다가 물어본다.

"우리 어디서 만났죠? 학교를 같이 다녔을까요?"

나이가 들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 건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혹여 기억하지 못해 실수하는 것은 아닐지 새침하게 소심 해지는 하루였다.


누구인지 잘 모른 채 그저 상대의 말에 동조하며 한참을 웃고 이야기하다가 뒤돌아 나오는데 말소리가 들린다.

"잘 안다면서?"

"아니 잘 모르는데 그냥 얼굴만 익숙해."

서로가 마주 서서는 예의를 차리고 개천에 돌다리처럼 건너서 아는 사이라 안면은 있지만 모른 척하는 것은 민망할 거 같으니 안다고 했으나 사실은 잘 모른다. 지금은 몰라도 지나고 나면 알아지기도 하고, 당장은 아는 척은 했지만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연어는 결국 이방인인 것이다.

알던 사실인데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익숙해지지 않는 것, 손 거스러미처럼 매번 생길 때마다 낯선 그런 아픔이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이방인이 맞나 봐요."

"선생님은 여기가 고향이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이방인일 뿐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언젠가 큰 이모를 찾아가 물었었다.

"이모, 친구인 것 같은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해."

"나도 그래. 가끔 기억에도 없는 어릴 때 친구들이 와서 먼저 물어보고 기억하더라."

"아는 사람이 없어.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

"원래 다 그래."

10대에 떠나 50년을 도시에 살다 온 이모, 20대에 떠나 다시 돌아온 연어. 결국 같은 이방인이다.


오늘따라 더 까칠까칠해지는 마음을 솜을 넣어 꿰매면 따스해지려나.

호박 쿠션 위에 마구 꽂혀있는 바늘들이 연어를 위협하는 불안들 중 하나 같다.


KakaoTalk_20221125_093441739_01.jpg 바늘쌈지 책(book)

마음먹은 김에 바늘쌈지를 만들어 보자.

따뜻하게,

찔리지 않고 가방 안에서도 안전하게 보관되는 바늘쌈지.

책(book)처럼 펼치고 닫치는 것이 좋다.


구례현상점을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앞 가게에서 산 단추, 빈티지 같아 보이지만 사실 진짜 빈티지가 맞을 거 같다. 할머니께서 얼마나 보관하고 계셨던 것인지 잘 모르는 단추니깐.

판매용으로 놔둔 단추들인데 언제 입고되었는지 언제 마지막 판매되었는지 잘 모른다고 하셨다.


단추와 뜨개실, 부자재와 속옷 등 여러 가지 잡화를 파는 할머니는 연어가 어릴 적부터 시장에서 단추를 파셨었다. 기억이 잘 못된 게 아니라면 심부름을 자주 갔던 그 가게의 할머니였다.

지금은 걸음도 잘 못 걷고 병원신세를 지는 날이 많은 분이지만 예전에는 친절하게 단추를 세어서 골라주시던 분이었다. 적어도 나의 기억에서는 그랬었다.


보풀이 잘 일어나지 않는 두께감 있는 펠트를 두장 오리고 바늘을 꽂을 수 있게끔 도톰하게 올려서 또 바느질하고 꿰매고 바깥에는 앞 가게에서 산 두 개의 빈티지 단추를 달고 튼튼해 보이는 머리고무줄로 고정했다.


KakaoTalk_20221125_093542088_01.jpg

완성된 바늘쌈지 책.

책처럼 펼쳐지고 내부에는 바늘들이 가지런히 놓이고.

비슷한 사이즈의 바늘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바늘귀가 길고 두껍고 좁고 다 제각각이다.

또한 바늘의 소재도 다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손톱 아래를 깊숙이 찔러도 아픔이 뒤늦게 느껴질 만큼 가늘다.


바늘쌈 지안에 모이면 바늘은 위협적이지 않다.

모양이 제각각인 바늘이 아늑한 책 안으로 들어갔다.



KakaoTalk_20221125_093441739.jpg

바늘쌈 지도 만들고 지난번에 만든 곰인형 패턴으로 새로운 곰과 작은 토끼, 고양이 등등 많이들 만들어졌습니다.

하나씩 늘어가는 완성품들이 마음을 따스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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