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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잠드는 바다 10화 지니라는 이름 2

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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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부터 할까요?”

“연습생 아닌 연습생 시절.”

“넹.”

“중학교 3년 내내 그렇게 다닌 거야? 2학년 때 너 수강권 지원 받는 서류에 사인 엄청 많이 했던 기억 난다. 그래도 국영수 이런 입시학원 아니라 보컬, 댄스 이런 거 다니는 게 좋아 보였어.”

“방과 후 한 두 시간 취미로 배우고 그런 줄 아셨죠?”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지. 아니 대체 얼마나 다녔길래?”

“저녁 급식 먹고 바로 가서 지쳐 쓰러질 때 까지 했어요. 바우처 박박 긁어서 다녔죠. 연습생들 훈련하는데 낑겨 배우는 거라 밤 늦게까지 연습하는 건 기본이었어요. 12시 다 되어 집에 가는데도 연습생들 계속 남아 있는 날도 많았고. 그 언니들도 다 나 같은 학생들인데, 대체 집에 언제갈까 걱정되더라니까요.”

“연습생들하고 같이 배웠다고?”

“자기네 연습생 훈련시키는데 저 끼워 넣은 거죠. 이름은 근사하죠. 취약계층 문화향유 기회 확대 민관 협력사업. 실상은 엔터사가 나랏돈 받아 자기 연습생 훈련시키려고 저 같은 애들 몇명 끼워 준 거에요. 구민회관 같은 데서 발표회 하면 높은 분들이 아이고 기특하다 그러면서 사진 찍고. 저 같이 못 사는데 춤 잘 추는 애들은 윈윈 카드죠.”

순간 나는 가슴을 움켜쥐어야 했다. 은행 지점장과 약사 아들로 태어나 강남에서 학교 다니고 자사고 나와서 서울대학에서 학부에서 박사까지 마치고, 송파구, 강남구 이외에는 살아보지도 않았던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 같은 세상이 있었다. 이 아이는 그 세상을 살아야 했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전 괜찮았다니까요? 아니 좋았다고요. 원하는 거 배웠고. 또 그걸로 성공했고.”

한 사람 뿐일지라도 관객의 반응에 민감한 예진이가 벌써 내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이게 제가 연습생이 아니지만 연습생이나 마찬가지인 까닭이랍니다. 아 참, 저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살았어요.”

“와, 고경력자네?”

“후배들한테 나 연습생 경력 6년이야 이럼 다들 믿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어차피 집에 가 봐야 있을 방도 없거든요.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열 다섯 평 짜리 반 지하 칸에 다섯 식구 엉켜 사는 게 어떤 건지 쌤은 아마 모르실 거에요.

집에서는 공부도 휴식도 놀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쓰러져 자기 직전까지 집 밖에서 시간 보냈어요. 방과후 학교, 댄스 학원, 보컬 학원, 나랏돈 받아 갈수 있는데 있으면 최대한 다니는 게 저나 식구들이나 좋았죠.”

말 뿐 아니라 생각까지 멈추었다. 중식지원 대상자, 교육복지 대상자 등등 추천 서식 작성하면서 예진이네가 어렵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워낙 티를 내지 않는 아이라 이렇게 본인 입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어린 나이에 힘겹게 삶과 맞서 싸우는 모습이 떠올라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눈물을 누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공부는 대체 어떻게 했어?”

순간 느낌이 왔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어떻게 춤도 그렇게 잘추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춤에 그렇게 미쳐있던 아이가 그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는 어떻게 잘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진이의 대답은 딱 한 단어였다.

“열심히요.”

공부 잘 한 학생이었던, 사실 그거 말고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던 나는 그동안 거꾸로 생각하고 있었다. ‘열심히’로 되는 영역과 ‘열심히’만으로 안되는 영역을. 공부는 ‘열심히’만으로 안되는 영역이고, 춤은 열심히 연습하면 되는 영역이라고.

그런데 예진이는 거꾸로 말했다. 자신이 가진 춤의 재능과 열정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공부에 대해서는 단지 “열심히.”라고만 말한 것이다.

“그게 다야?”

“그럼 기를 쓰고 했다 할까요? 할 수 있는 장소는 학교 뿐, 시간도 그때 뿐, 그러니 학교 있는 동안에 1분도 낭비 안하고 정말 죽을 힘을 다했어요. 그게 친구들이나 선생님들한테 예의 바르지만 내성적이고 차갑게 보인 이유에요. 시간도 힘도 다 빠듯했거든요.”

나는 다시 온 몸의 힘이 푹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예진이를 ‘얌전하고 모범적인’ 아이라고 기억했다. 12년만에 내 앞에 발랄하고 애교까지 있는 모습으로 이 아이가 나타났을 때 나는 그것을 아이돌 지니로 훈련받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고 있던 얌전한 예진이는 공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일분 일초도 아껴야 했을 뿐이었다. 열다섯 살 소녀에게 있음직한 발랄함과 애교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아이를 그저 얌전하다고만 생각했다. 참 바보 같은 교사였다.

이럴 때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일종의 회피기동 역할을 한다.

“물론 열심히 한 건 알아. 내가 궁금한 건 왜 열심히 했냐는거야.”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맛을 아니까. 친구들은 졸업할 때 까지 제가 그럴듯한 집에서 공주같이 자랐을 거라 믿었을 거에요. 90점 좀 넘는 건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그림이 그려지는데 95점쯤 되면 아예 선을 딱 긋더라고요. 얘는 기준 이상 집 아이다 이렇게. 그래서 그 점수는 어떻게든 맞춰야 했고, 93점 받았을 때는 세상 무너진 것처럼 울어야 했어요.

덕분에 인싸 그룹에 들었죠. 주리, 기억 나시죠? 진짜 공주. 걔네 그룹. 엄마들끼리도 친하고 학교 운영위원 나눠먹던 애들. 같이 놀러 다니고 그러진 않았지만, 일단 걔들이 저를 자기 동아리로 인정하는 거, 이거 여학생 사회에서 아주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제 춤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고요.”

“춤? 결국 또 춤이네?”

“예쁜 아이가 공부는 그냥 저냥 하는데 좀 야한 옷 입고 학교 행사나 이런 데서 막 춤을 춘다, 그럼 어떤 반응 나올까? ‘인물 값 하고 있네’ 이런 소리 막 들리지 않나요? 그땐 인식이 그랬잖아요? 양아치, 날라리, 노는 애들. 첨부터 낮잡아 봤잖아요?

학교 예술제때 선생님들 표정 봤거든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좀 심한 상황이긴 했어요. 노는 애들이 팀을 여러개 짜서 계속 무대 올라가서 형편없는 춤 추는 거 보면서 ‘저것들 살판 났네’ 하며 못마땅해들 하시더군요. 그러다 제가 무대에 올라가니까 좋아하시고.

그게 춤추는 아이들 보는 시선 아니었나요? 저, 연습생들 사정없이 얻어 맞는 거 여러 번 봤어요. 특히 남자애들. 그때 보컬 샘, 안무 샘 표정에는 ‘얘들은 이렇게 다뤄도 돼’ 아니 ‘이렇게 다뤄야 말을 쳐들어’ 이런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럼 제 춤을 보는 시선이 첨부터 달라지니까.”

“너 선생님들 표정을 다 읽었던 거야?”

“그럼요.”

순간 나는 배구선수가 머리를 후려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선생님들이 서포터라도 된 것처럼 격려하고 사랑하고 응원했던 김예진. 학교가 사랑한 아이. 그런데 그게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예진이는 필사적이었다. 춤 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 시절 이야기를 하자 감정이 복받치는지 예진이 잠시 말을 끊더니 시간을 빠르게 돌렸다.

“구질구질한 얘기가 길어져요. 다음 곡, 어머, 다음 이야기 가요. S 외고. 운이 좋았어요. 기억하세요? 제가 외고 들어가던 해가 경쟁률 역대급으로 낮았던거? 외고 폐지된다는 설 파다했고, 외고들은 살아 남으려고 저소득층 학생 선발, 장학금 확대로 착한 외고 코스프레 했죠.”

“열심히 하다 보면 그렇게 행운도 오는거야. 넌 그걸 누릴 자격이 있었어.”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합격 할 때 까진 좋았죠. 학비 면제, 중식, 석식 제공 다 좋았고. 그런데 외고 들어가니까 예진이 말고, 지니 생명줄이 끊어졌어요. 바우쳐들이 외고까지는 안 오더라고요. 이해는 하는데, 그게 저한테는 저는 정말 심각한, 아니 재난이었어요. 거기까진 생각 못했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미안해서 테이블 위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예진이가 나의 인정을 받기 위해 외고에 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이 아이의 길을 더 넓힐 거라고 믿었고,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출구가 되어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춤에 공급되던 자양분을 차단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연습생 틈의 문화 바우쳐 학생이 아니라 정말 연습생이 될 수 밖에 없었구나.”

한숨과 함께 이 말을 내 뱉자 뜻밖에도 예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쪽 길은 생각 안 했어요. 외고 갈 때 이미 마음 정했고. 외국어 공부와 춤 공부 열심히 한 뒤 뮤지컬로 간다 이거였지. 연습생? 아뇨. 그럴 생각 없었어요.”

이 말을 들은 나도 모르게 외고생이 된 예진이 입장에서 말해버렸다.

“그럼 바우처 없이 춤은 어디서 배워?”

예진이 눈을 얇게 한 일자 모양을 만들며 가볍게 웃었다. 지니의 웃음 툴박스에 없는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할 수 없죠. 유튜브 봐야죠. 어차피 그래야 했어요. 우선 댄스 동아리부터 만들었어요. 학교 무용실이라도 쓰게.

그렇게 애들 모았는데 죄다 귀염뽀짝 율동하다 포인트 안무 살짝 넣고 빠지는 그런거 하자는 거에요. 그런 춤으로 어떻게 대회를 나가요?”

“대회?”

“나가야죠. 중학교때 3년 연속 우승했는데, 고등학교도 우승 해야죠? 제 성격 아시잖아요? 그래서 ‘우린 외고잖아?’ 라는 논리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레이디 가가 커버 쪽으로 유도했어요. 이걸로 대회 나가자고. 이건 또 의외로 잘 먹히대요? 걔들 생기부에 뭐라도 한 줄 더 적으려고 기를 쓰는 애들이라.

다들 힘들어 했지만, 외고애들, 일단 시작하면 포기 잘 안하고 지는 건 또 싫어하거든요. 상 받으면 또 스펙 하나 늘어나고. 그래서 5월, 서울 학생 동아리 발표대회를 목표로 독하게 연습했죠.

참, 쌤 저 졸업할때 주신 아이폰3Gs 그거 정말 고마웠어요. 그거 아니었으면 유튜브로 춤 배우는 것도 어려웠을 거에요. 또 동아리 애들 앞에 기 죽지도 않고.”

“그거 예니가 아이폰4 넘어가면서 쓰던 폰 넘긴건데? 오히려 좀 미안했는걸?”

“아빠가 신폰 뽑았다고 쓰던 폰 줬다 그러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거든요. 애들 사이에서 신형이든 구형이든 아이폰이 있고 없고, 정말 차이가 커요. 그 학교는 95점 짜리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그 동안 제 가난을 덮어주던 ‘공부 잘하는 애’ 장막이 벗겨진 상태였거든요.

아빠가 물려준 구형 아이폰, 이거 꽤 먹히는 이야기에요. 애들 앞에 계속 제 폰으로 영상 보여주며 안무 해야 했거든요. 예니가 쓰던 폰이라 더 좋았고요.”

이 말에 나는 감정이 올라왔다. 여기서 예니 이름이 나오다니?

구형 아이폰의 영상을 보며 춤추는 예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학원 간다고 먼저 가고 혼자 남아 밤 늦도록 춤을 추던 예진이가 잠시 동작을 멈추고 말한다.

“오늘 언니는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갈게. 예니도 잘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어려운 환경과 외롭게 싸우면서도 자기 꿈을 어떻게든 키워온 소녀가 자신이 동경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다른 소녀와 가상의 인연이라도 만들어가며 버티는 모습. 그만 눈물 한 두 방울이 눈꺼풀을 적시고 말았다.

젖은 눈시울을 들키지 않으려 얼른 회피기동을 했다.

“그래서? 우승했니?”

“그럼요. 여기서부터 진짜 스토리가 시작이랍니다.”

“아, 그 대회에서 길캐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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