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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잠드는 바다 9화 지니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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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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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너 어떻게 서강대까지 갔어?”

“아이, 쌤, 바로 그것부터 물어보심 어떡해요?”

두번째 만남에서 대뜸 이렇게 묻자 예진이 소스라쳤다.

물론 나는 이 질문이 예진이를 건드릴 것이고, 듣기에 따라 모욕적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 연고대 정도는 갈 줄 알았는데, 어쩌다 그리 미끄러졌어?” 이렇게 들릴 수도 있고 “인서울이나 겨우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올라갔어?” 이렇게도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고 던진 말이었다. 예진이는 상황 판단이 빠르고 여러가지 사회적 페르소나가 학습된 아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기 맞는 예쁜 대답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온다. 그래서 흐뜨러뜨려야 했다.

“선생님”이 아니라 “쌤.” 그 한 글자 차이에 나는 예진이의 본심이 스쳤음을 느꼈다. 아이돌 특유의 ‘예쁜 대답’을 꺼내던 껍데기가 벗겨진 느낌. 공격 성공이다.

나란히 앉은 테이블 너머로 예진이가 항의의 뜻을 담은 눈을 깜빡였다. 지니의 애교는 수납되었다.

예진이가 그 항의의 눈빛을 유지한채 말했다.

“쌤, 중학교 졸업 기준으로, 저 원래 그 정도는 갈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쌤이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진이가 아이돌 활동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3년을 공부했다면 서울대는 애매하고 연고대는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활동과 학업을 병행한다면? 입결은 커녕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당시 기대값 만큼의 입결이 나왔다. 궁금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일단 예진이가 스스로 말하도록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오래된 북카페 나무 선반 위에 놓인 오래된 시집과 아무도 듣지 않은 지 오래되었을 엘피판(요즘 말로 바이널)들로 시선을 옮겼다.

“수능 대박, 그리고 입시제도 혼란 덕분이죠.”

마침내 예진이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박?”

그 애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항상 정제된 단어, 고르고 고른 표현만 쓰던 아이가.

“저도 그렇게 까지는 기대 안했어요. 회사 쪽에서도 목표 상한을 중대, 경희대 정도로 하한을 건대, 동대, 홍대 정도로 잡고 있었어요.”

다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회사? 대입을 회사가 계산하고 관리했다고? 그건 학교에서 해야 할 일 아닌가? 대체 무슨 놈의 엔터사가 소속 아이돌 입시까지 챙긴단 말인가?

“정신 없으시죠?”

“그래. 너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다 온 거야?”

“그걸 이해하려면 지니를 만나셔야 해요. 쌤 생각 대로라면 예진이를 지워버린 그 못된 아이돌 말이죠. 그런데 쌤, 예진이가 정말 저의 본체였을까요? 아니면 선생님들, 부모님들이 바라는 학생의 이데아였을까요? 쌤이 기억하는 그 반듯하고 공부 잘하는 예진이가 사실은 그렇게 해야 학교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되바라진 아이, 매혹꾼 지니가 연기한 아이돌이라는 생각 한 번도 안해보셨나요?”

전에도 언뜻 이런 늬앙스를 비춘적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아이는 왜 자꾸 내가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그 예쁘고 반듯한 모범생 김예진의 기억을 흔드는 것일까?

“말을 살짝 바꿔 볼까요? 연습생 경력 없는 현역 외고 재학생의 아이돌 데뷔, 이건 진실일까요, 거짓일까요?”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만들 거리가 또 나왔다.

예진이가 지니라는 이름의 유노이아의 메인 댄서로 데뷔할 때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연습생 출신 아닌 현역 외고생이라는 특이성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노이아는 청순을 연기하는 그룹이 아니라 진짜 청순한 그룹이라는 강력한 이미지 자원을 얻었고 엘리트 아이돌, 고품격 아이돌을 지향하며 고가 브랜드 광고도 많이 받았다.

2013년에 나왔던 광고 하나가 떠올랐다. 신라 호텔인지 어딘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굉장히 비싸 보이는 뷔페 광고였다.

성공한 남성 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배우가 멋진 수트 차림으로 고급 차에서 내렸고, 단정한 차림의 지니와 성공한 여성 역으로 자주 나오는 여배우가 함께 내리면서 광고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멋진 야경이 보이는 뷔페 좌석. 세 사람이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 이윽고 남자 배우가 이렇게 말했다.

“지니야 합격 축하한다.”

여자 배우가 지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러면 세상에 다시 없이 행복한 표정의 지니 얼굴이 클로즈 업 되고, 대충 그런 그림의 광고였다. 성공한 부모, 예쁘고 공부 잘하는 딸, 그리고 그 행복을 이 뷔페에서 만끽해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어디 그 뿐일까? 대치동에 살다 보니 나는 시험기간만 되면 총명하게 눈빛을 반짝이는 예진이 사진이 “지니가 여러분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찍힌 학원 광고로 도배되는 모습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이 연습생 출신이 아닌 현역 외고생이 학업과 꿈을 다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서사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런 지니가 사실은 연습생 출신이었다면? 그 모든 서사가 와르르 무너지고 유노이아는 그저 다른 그룹에 비해 얼굴 예쁜 멤버가 많은 그룹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예진이는 왜 하필 그 얘기를 꺼냈을까? 그룹 해체된지 오래니 “사실은 저 연습생이었어요.” 이런말 해도 상관 없단 뜻일까? 굳이? 왜? 하필 내 앞에서?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너도 연습생이었니?”

뜻밖에 예진이 아주 간단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런데 이런 얘기를 왜 꺼냈는데?”

“이쪽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쌤이 어떻게 서강대 경영까지 간 거냐 물어 보실 때 느꼈어요.”

“쉽다니?”

“쌤 잘못 아니에요. 세상 인식이 그런 거니까. 한번 정리해 볼까요? 예진이는 공부 잘한다. 그런데 또 끼도 있어서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한다. 오구오구. 그리고 외고 갔다. 뭐 당연하지. 어, 아이돌 데뷔? 아 참, 걔가 정말 예뻤지.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데 서강 대학 갔네? 연고대는 갈 수 있는 애였는데 아이돌 하면서 공부하느라 힘들었나보다. 그래도 그만하면 잘 갔지 뭐. 딱, 이 정도죠. 여기서 뭐가 빠졌을까요? 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 상담하자 할 때 알아채야 했다.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은 고민을 들어주고 해답을 찾아가는 그런 상담이 아니었다. 이 아이가 원하는 것은 인정이었다.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

내가 침묵하자 예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요 중학교 1학년 때 서울시 댄스대회 우승했어요. 2학년 때도, 3학년 때도. 그런데 아무도 ‘너 춤 쪽으로 진로 생각해 봤니?’ 하고 묻지 않았어요. 그냥 ‘아 예진이가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춤도 잘 추네?’ 이런 정도였죠.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거든요. 그 대회들, 엔터사 연습생들도 꽤 나와요. 그 사이에서 아마추어인 제가 우승한거에요. 그것도 1학년 때. 제가 첼로를 했으면 같은 상황에서 뭐라고 하셨을까요? 첼로가 좋아 공부하는 틈틈이 연습했는데 콩쿠르에서 우승한다면? 1학년이?”

“신동이지.”

“그럼 제 경우는?”

“아. 그게.”

“그쵸? 왜 다르게들 보시죠? 이 분야는 천재가 없는 분야인가요? 예쁘장한 애면, 아무라도 열심히 연습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분야인가요? 쌤 친구분, 디누 그 분. 공부도 아주 잘하셨다죠?”

“잘 했지. 피아노에 전념하면서 부터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반에서 2, 3등 정도는 했어.”

“딱 제 성적이네요? 선생님들이 저 귀엽게 봐주시고, 심지어 편파적으로 제가 1등 좀 했으면 하고 맘속으로 응원도 하시고 그랬던 거 알아요. 고맙게 생각하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아이는 중학교 때 이미 어른들 속을 다 읽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걸 다 알았어?”

“그럼요. 하지만 죄송하게 1등 할 시간이 없었어요. 춤이 너무 좋아서. 공부는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만 하고 저녁 시간 내내, 그리고 학교 오기 전 새벽 시간까지 춤추고 노래했어요.

어른들은 하나 같이 제 공부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예진이가 춤도 잘추네 그랬지, 김예진 넌 댄스 천재야, 이런 분 못 봤어요. 제 정체성은 항상 공부 잘하는 애, 그 다음이 예쁜 애, 그리고 덤으로 춤 잘 추는 애였죠.

하지만 저요, 공부를 춤 추기 위해 했어요. 학교라는 곳이 일단 공부를 잘 해야 다른 것들이 편하고 자유로워진다는 거 너무 잘 알아서. 공부가 싫지도 않았고.

하지만 춤은, 발레, 컨템퍼러리, 걸스힙합, 왁킹, 스트릿 재즈, 코레오 등등 뭐든 좋았어요. 춤이기만 하면. 내 몸으로 뭔가 표현할 수 있기만 하면. 저소득층 문화 바우처 이런 거 활용해서 교육청이랑 제휴한 댄스 학원, 엔터사 등등 품앗이 하듯 찾아 다니며 배웠어요. 춤이기만 하면 다 배웠고, 영상 보이면 다 따라 했어요.

연습생 중에도 알고 지내는 친구나 언니도 많았어요. 어차피 문화 바우처 써서 다니는 학원이 엔터사 제휴한 곳이거나 엔터사 소속이라서요. 자. 이게 저의 정체에요. 연습생은 아니지만 연습생 만큼 연습한 아이. 그 자투리로 배운 것들과 유튜브에서 찾아본 안무 영상들 보고 연습해서 우승까지 한 아이.

왜 어른들은, 선생님마저 그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들 가죠? 예진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니까 춤이야 취미로 조금만 열심히 연습하면 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셨을까요? 아이돌 댄스라서? 이게 클래식이나 발레였다면 완전 얘기가 달랐겠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예진이가 한 그저 ‘춤이기만 하면’이라는 말을 곱씹을 뿐이었다.

그 동안 거꾸로 알고 있었다. 예진이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지니라는 캐릭터가 자란 것으로. 그런데 예진이는 반대로 말했다. 춤추는 지니가 어른들의 눈에 맞는 공부 잘하는 예진이를 만들었다고.

물론 예진이가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도 아닌데 예진이 나왔다 지니 나왔다 그러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스스로도 말했다. 공부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고. 그런데 춤이 훨씬 좋았다고.

하지만 내 마음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지니가 단지 노래하고 춤만 추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니는 웃음과 애교를 연기하고 매혹을 팔았다. 그 샤오룽바오 모습이 또 떠올라 사라질 기미 없이 맴돌았다.

열 일곱 밖에 안되는 아이가 30대 남자들 틈에 앉아 웃음과 애교로 매혹을 연기했다. 예진이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그런 일을 시키는 세상이 잘못이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이코의 행복한 밥상’이 10대 소녀들에 대한 교묘한 성 착취를 예술활동으로 미화 했다며 비판 받았던 일이 생각났다.

하지만 무턱대고 마음을 닫을 일은 아니다. 그건 정말 나답지 않은 일이고, 예진이에게 못 할 짓이니까.

“들려줄래? 너 중학교 졸업하고 그 다음 이야기.”

이렇게 조용히 한 마디 던졌다.

“네. 그런데 오늘 다 못 들려 드려요.”

“몇 번이라도 괜찮아. 어차피 나 퇴직했으니 남는게 시간이야.”

“좋아요.”

예진이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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