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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소설 디누 1부 29회 디누투어: 브뤼셀1

by 권재원

좁은 이코노미 칸 통로에서 마냥 기다리자니 한국인의 조급증이 짜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5분 정도가 지나 증기가 나올 지경이 되니 커튼이 걷히고 승무원이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마음이 급해진 승객들에 밀리고 밀어가며 비행기 밖으로 나섰다.

브뤼셀. 내가 ‘디누 투어1’이라고 명명한 유럽 여행의 시작.

일정은 이랬다.

2007년 7월 27일: 브뤼셀에 도착하여 디누가 아녜스와 처음 만난 브뤼셀 콩쿠르 전후 사정을 알아봄.

7월29일: 뮌헨으로 이동, 미우&디누가 우승했던 바이에른 실내악 콩쿠르에 대해 알아봄.

7월 31일: 정우에게는 성지나 다름없었고, 해마다 이 맘 때면 가서 연주했던 잘츠부르크 답사.

8월 1일: 정우가 피아니스트로서 처음 명성을 얻었던 쮜리히를 둘러보고 취리히 콩쿠르의 이모저모 조사.

8월 2일: 몬테카리니 문하에 있었던 루체른 답사.

8월 3일: 귀국

무모한 강행군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우에 대한 내 기억이 1982년 6~9월이라는 벽 앞에서 완전히 막혀버렸다. 그런데 저 석 달은 정우가 예술가로서 성숙했던 시기로 3년보다 더 무게감이 있는 그런 시기다.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1982년 6월에서 9월 사이 미우와 정우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 6월 6일 출국해서 뮌헨에서 열린 바이에른 국제 실내악 콩쿠르의 바이올린-피아노 2중주 부문에 참가했고,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정우는 병역 면제 특혜와 해외유학 자격을 확보했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이들은 미리 계약했던 콘서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7월 23일까지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서독,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를 돌며 15회의 공연을 했다.

공연은 모두 매진 되었고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세계 수준의 듀오로 자리 잡게 된 순간 엉뚱하게 해체를 선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정우는 취리히로 갔고, 미우는 베른으로 갔다. 정우는 쇼팽콩쿠르와 더불어 피아노의 월드컵과 올림픽으로 불리는 쮜리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여 1위 없는 2위에 올랐고, 미우는 파리, 브뤼셀 콩쿠르와 함께 바이올린 3대 콩쿠르라고 불리는 베른 콩쿠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당시 이들이 겨우 만14세, 17세였다.

정우는 8월 24일에 귀국하여 2학기 때부터 학교에 다시 나타났고, 미우는 헨릭 셰링의 문하에 들어가 연말까지 귀국하지 않았다.

정우가 유럽에서 그런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때 나는 평범한 중학교 2학년으로서 학교 잘 다니고 있었다. 녀석은 흔한 엽서 하나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엽서는 정우가 아니라 미우의 것이었다. 물론 미우도 엽서를 보내지 않았다. 미우도 정우 못지않게 음악이 언제나 넘버 1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미우에게 넘버 몇이나 되었을까?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음악, 예수, 정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정우가 귀국했을 때 유럽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물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정우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아 그 전기를 쓰고 앉았을 거라고 그때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그 무렵 정우와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정우는 ‘러브리’ 실신 사건 이후 겁먹은 아이처럼 약간 넋 나간 모습이었고, 남매간에 험악하게 다투곤 했다. 신문으로만 전해들은 듀오 해체 소식은 끝내 남매간에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이들 남매 중 정우보다 미우 편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바란다. 나는 사춘기였다- 정우를 원망했다. 미우가 정우를 밀어낸 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래서 정우에 대한 내 기억에서 1982년 여름은 완벽한 공백기로 남았다. 하지만 그 시기를 공백기로 두고서는 그의 일대기를 도저히 재구성할 수가 없었고, 나는 그가 이 시기에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 그 경험을 공유해야 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그 석 달 간 미우와 정우가 거쳐 갔던 곳을 직접 다녀 보는 것. 그러나, 국가에 매인 공립 학교 교사 신분이라 석 달씩 학교를 비울 수 없기에 방학 기간 중 열흘의 시간을 내어 그 모든 코스를 다 다녀보는 강행군 일정을 짤 수밖에 없었다.

미우, 정우 남매 일정보다 더 고된 일정이었다. 그들에게는 공연 사이 휴식일이라도 있지, 나는 휴식일 없이 그 많은 도시들을 돌아다니고 또 당시 그들과 만났던 사람들 인터뷰를 따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항공권과 열차 패스를 디누 음악재단에서 구입해 주었다는 것, 브뤼셀과 쮜리히에서는 아녜스가, 잘츠부르크에서는 유선이 안내 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와 권 선생님, 올 방학 아주 화려하네요? 그것도 공짜라고요?” 라며 은근히 부러워했다. 하지만 여행 깨나 다녀 봤다는 사람들은 일정표를 보고는 “아직 20대 청춘인 줄 아세요? 마흔입니다. 마흔. 이렇게 다니다 쓰러져요.” 라며 훈수를 두었다.

이 취재 여행에 따라붙으려던 아내와 딸 예니도 일정표를 보더니 포기했다. 그래서 이틀간 런던 관광을 함께 한 뒤 나 혼자 브뤼셀 환승편을 타고, 아내와 예니는 계속 영국 여행 하다 런던에서 다시 만나 귀국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계획은 첫날부터 어긋났다. 시차 적응기간을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을 런던 도착해서야 알아챘다. 하지만 아내와 딸은 런던이라는 도시에 한껏 들떠 있었고, 시차적응은 나만 필요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가족에게 한바탕 시달리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브뤼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브뤼셀에 내리자마자 잠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색깔이 같지만 전혀 다르게 생긴 캐리어를 마치 내 것인 양 질질 끌고 가다 도둑 취급까지 받았다. 그렇게 힘들게 공항 도착층에 들어서자 지인들을 찾는 프랑스어와 플랑드르어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요란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아녜스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아니, 어떻게 벌써 나와 계세요?”

“오늘따라 편서풍이 세찼다고 할까? 내가 유체물리학자라 제트가 내 말을 잘 듣네요.”

“하하하. 조크 하신 거죠? 이럴 때는 웃어드려야 하죠?”

“아이, 왜 그러세요?”

오랜 친구처럼 농담이 오고 갔다. 하지만 예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인사부터 했다.

“아녜스, 뜻밖에 이렇게 시간 내 주어 도와 주신다니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아뇨. 저도 2주 휴가 받았어요.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루쩨른에 가 있답니다. 저도 내일 저녁에 루체른으로 날아 갈 거고요. 박사님은 기차로 잘츠부르크 거쳐 쮜리히 코스죠? 루쩨른에서 쮜리히는 기차로 한 시간이니까 취리히에서 연락 주시면 가서 봴께요.”

“이거, 황금 같은 가족 휴가를 저 때문에 누더기로 만든 거나 아닌지 좀 미안하네요.”

“오, 노우. 천만에요.”

아녜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윤기로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이 마치 부챗살처럼 펴지면서 좌우로 나풀거렸다.

“저도 브뤼셀에 오고 싶었어요. 추억이 가득한 곳이라. 나도 늙었나봐요. 소녀 시절이 그리워지고. 그때 참 좋았죠.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고. 나 때문에 행복해하고. 나빴던 건 미우를 이기지 못한 거.”

“뜻밖이네요? 그런 타입 아니신 것 같은데?”

“어머, 저도 일부는 한국계랍니다. 그땐 어렸고. 미우를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어 미우 참가하는 국제 콩쿠르는 다 찾아 다녔죠. 다 졌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죠. 브뤼셀은. 3등 상도 받았고, 무엇보다 디누를 처음 만난 곳이니까. 제가 이름값에 비해 수상 실적은 영 초라하답니다. 그 3등이 제 커리어 하이였으니까요.”

공항에서 브뤼셀 시내로 가는 열차가 출발했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녜스가 마치 유로스타가 달리는 것 같은 속도로 말을 쏟아내어 내 영어 듣기 능력의 한계치를 시험했다. 더구나 아녜스가 구사하는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미국 중부영어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식 영어라 말도 빠르고 추임새도 많아 알아듣기 어려웠다.

요점만 기억나는대로 적어 본다.

“디누가 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가 쮜리히였죠. 내가 그 증인이죠. 그날 객석에 내가 있었어요.”

“네? 거긴 왜?”

“디누 보러 갔죠.”

“그때 벌써 그 정도 사이였나요?”

“브뤼셀에서 이미 친한 사이가 되었어요. 1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서른 통이 넘었으니까. 요즘 같으면 그냥 이메일 주고받았겠죠. 디누가 쮜리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고, 마침 비슷한 시기에 저도 베른 콩쿠르 참가해서 쮜리히랑 베른에 모두 숙소를 잡았어요. 어차피 쮜리히에서 베른 까지 기차로 한 시간이니까. 디누 경연 있는 날은 쮜리히에서 자고, 제 경연 있는 날은 베른에서 자고, 기차로 왔다 갔다 했죠.”

“아니, 정우 녀석,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문제 있나요?”

“아니 어떻게 숙녀를 왔다 갔다 시켜요? 굳이 왔다 갔다 하겠다면 정우가 베른에 숙소를 잡고 쮜리히를 왔다 갔다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디누한테 그런 자상한 배려 같은 건 전혀 기대 안했어요. 디누 머리속은 온통 피아노였으니까. 저도 디누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고. 미우와 함께 연주하는 것만 들었는데, 독주가 궁금했거든요. 데이트가 주목적은 아니었어요. 살짝 기대하기도 했지만. 헛된 기대였죠.”

“잘 안해주던가요?”

“국제 음악 콩쿠르의 중압감 모르시죠?”

“당연히, 저는 참가한 적이 없으니.”

“공연 앞둔 연주자들 집중력 흩어질까 봐 엄청나게 긴장된 상태에서 시간 보내는 건 아시죠? 국제 음악 콩쿠르는 훨씬 더해요. 일주일 혹은 이주일 기간 동안 서바이벌로 탈락자들을 만들어가며 공연하는 거니까. 혀가 타고, 피가 마르죠. 그러니 우리가 그 기간에 만나봐야 뭘 할 수 있겠어요?”

“각자 연주 준비.”

“그렇죠 뭐. 쮜리히까지 일부러 찾아 갔다 해도 같이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식사 시간, 식후의 커피 시간 잠깐 뿐이었죠. 디누는 늘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요.”

“직접 들어보니 연주는 잘 하던가요?”

“잘하는 정도가 아니었죠. 완전히 매료되었답니다. 저 뿐 아니라 객석의 모든 청중들, 그리고 심사위원들, 특히 심사위원장인 지히발 선생님까지. 막상 결선에서 연주했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은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결국 우승 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경연 과정에 이미 많은 음악 전문가, 기자, 프로듀서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에 얻을 건 다 얻었죠. 우승을 놓친 감춰진 사연이 있기도 했지만.”

“감춰진 사연? 작가의 흥미를 돋구는 단어네요?”

“그렇다면 잠시 미스테리로 남겨 둘게요. 쮜리히 콩쿠르 이야기는 쮜리히에서 하죠. 브뤼셀에서는 브뤼셀 얘기만.”

아녜스가 깍지 낀 손가락을 귀엽게 까딱 까딱 흔들었다.

브뤼셀 공항에서 브뤼셀 남역 까지는 20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녜스의 이야기가 미처 마무리되기 전에 열차에서 내려야했다.

“뭘 좀 먹을까요? 연봉 많은 제가 대접 할게요.”

아녜스가 역 앞 광장을 마치 아이같이 깡총거리는 걸음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오, 그럼 고맙죠. 단 술은 안 마십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종의 근무니까요.”

“호호호.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스텔라와 호가든의 나라까지 와서 금주령?”

“미안합니다만, 안되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분위기를 다잡았다. 파사데나에서 아녜스의 매력에 빠져 알맹이 없이 반나절이나 시간을 보냈던 실수를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녜스를 볼 때마다 그 아름답고 귀여운 모습 때문인지 까닭 없이 흐뭇한 마음이 되었다. 나는 그 까닭 없는 흐뭇함 속에 달콤하지만 불순한 무엇인가가 느껴져 꾹꾹 신경 써 가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음. 술이 싫으시면, 벨기에 까지 왔는데 초콜렛이나 와플은 어때요?”

“기왕이면 와플에 초콜렛 잔뜩 얹어서 먹어 볼까요?”

“그럼 저기로 가요.”

아녜스가 즐비하게 늘어선 초콜릿 카페들 중 ‘Neuhaus’라는 간판을 가리켰다.

“어디든 좋습니다.”

우리는 벨기에에 온 느낌을 살리기 위해 와플, 감자튀김, 그리고 노이하우스 쵸콜릿 차를 테이블에 펼쳐 놓았다.

처음에는 와플이 저렴하다고 생각했지만, 토핑을 조금씩 더 얹을 때 마다 2유로씩 착실하게 올라가면서 착각에 불과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브뤼셀에서 정우를 처음 만났다고요?”

“그때가 몇 년이었더라, 휴우, 하도 오래 되서.”

내가 정확하게 시간을 짚어 주었다.

“브뤼셀 콩쿠르라면 1981년이죠.”

“고마워요. 1981년. 브뤼셀 콩쿠르. 그때 디누는 열 셋, 나는 열 다섯, 미우는 열 여섯, 음 한국에서라면 열 넷, 열 여섯, 열 일곱 살이라고 했겠죠? 어머, 그러고 보니 나 마흔이야. 세상에나. 참, 디누네 쌍둥이가 지금 몇 살이죠?”

“로사랑 마리요?”

“네. 로사, 마리.”

“94년생이니까 13세, 브뤼셀 콩쿠르 때 정우 나이네요. 유선이가 초조해 할 만 하겠어요. 정우는 그 나이 때 벌써 세계 무대를 뛰었는데 로사, 마리는 헤맑은 소녀들이거든요.”

“디누 같은 아이가 어디 그렇게 쉽게 태어나나요? 우리 제이크는 어떻고요? 음악도, 수학도, 물리도 다 못하는 걸요? 속상해 죽겠다니까요. 호호. 내가 왜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한담?”

아녜스의 느낌이 자뭇 달랐다. 싱겁다고 할까, 헐겁다고 할까? 추억이 많은 장소에 와서 정서가 많이 올라간 것 같기도 하고. 대하기가 조금 불편했다. 그런 내 기색을 읽었는지 아녜스가 다시 단정한 말투로 돌아왔다.

“음, 박사님도 음악에 일가견이 있으시니까, 바이올린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브뤼셀 콩쿠르가 어떤 위상을 갖는지도 아시겠죠? 뭐랄까 최종 목표? 피아니스트들의 쇼팽 콩쿠르 같은?”

“그럼요. 지금도 이 대회 결선 실황은 인터넷에서 꼭 찾아보는 걸요?”

“그럼 이 대회 참가 신청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글쎄요. 한 5백 명?”

난 큰 대회니까 아주 많이 참가할 거란 생각에서 생각보다 더 많은 인원수를 불러보았다. 하지만 아녜스가 눈을 초승달처럼 찡그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어림없어요.”

“500명 보다 많아요?”

“1981년만 해도 1500명이 넘었답니다.”

“1500명이라고요?”

“놀랄 일도 아니죠. 요즘은10000명이 넘는 걸요?”

“그 많은 참가자들이 어떻게 예선 심사를 받죠?”

나는 수십 개의 방에서 수십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심사를 받는 엄청난 장관을 떠올렸다. 그 많은 심사위원은 어떻게 선정할 것이며, 그 많은 심사위원 간의 형평성은 또 어떻게 세울 것인지가 마치 내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고민되었다. 아녜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서류 심사로 걸러내죠.”

“서류 심사요? 아니 음악 경연대회에서 서류심사요?”

“아무나 참가하는 대회가 아니다 이런 뜻이죠. 충분히 실적을 세운 경력이 있는 연주자만 참가를 허락한다, 이런. 유력한 연주자나 자기나라 음악 단체의 추천서, 다른 대회에서의 입상 실적, 연주 녹음을 제출해야 해요.”

“지역 예선 같은 거 하지 않나요? 언젠가 브뤼셀 콩쿠르 한국 지역 예선이라면서 대회 열린 거 봤어요.”

“그 나라 음악단체에서 추천장을 써줄 젊은 연주자를 선발하는 대회를 열고, 그걸 브뤼셀 콩쿠르 지역 예선이라고 부르는 경우죠. 어쨌든 이렇게 제출된 것들을 심사해서 1라운드 참가자를 뽑아요.”

“몇명이나 뽑죠?”

“200명.”

“맙소사.”

“그렇죠? 200명에 드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제 시작이에요. 우선 200명 중 1라운드에서 50명 뽑아요. 150명이 짐 싸는 거죠. 그 50명이 2라운드 경연을 해서 다섯 명만 남고, 그 다섯명이 결선을 하죠.”

“와, 무섭네요.”

“그럼요. 브뤼셀 콩쿠르는 정말 무시무시해요. 그나마 저나 미우는 서류전형은 패스. 몇 달 전에 열렸던 파리 콩쿠르에서 저는 파이널 5, 미우는 3위였으니까요. 그래도 200명 중 다섯안에 들어야 결선이지만 자신 있었어요.”

아녜스가 이렇게 흥부자였나 싶을 정도로 말을 쏟아내었다. 받아 적는 손가락을 통증을 달래기 위해 흔들어 주어야 할 정도였다. 아녜스의 브뤼셀 추억담은 너무 상세하고 잡다해 그것만으로 소설 한 편 나올 정도였다. 중요한 정보도 건졌다. 캘러니안 클래스에서 아녜스와 지네트가 함께 공부했고 심지어 룸메이트였다는 것.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교사로 유명한 캘러니안은 은근히 쇼맨십이 있어, 오늘날 한국 엔터사처럼 클래스에서 간판 스타를 내세웠다. 당시 캘러니안 클래스의 간판 스타는 아녜스와 지네트였는데, 아녜스를 먼저 런칭한 셈이다. 세상의 평가와 달리 아녜스가 얼굴 예쁜 아이돌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증거다.

아녜스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아녜스가 풀어놓은 추억담, 그리고 정우가 틈날 때 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 했던 브뤼셀의 천사인지 인형인지 이야기를 종합했다. 이제야 소설 비슷한 것이 써지기 시작했다.

그 소설 초고의 조각들을 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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