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게 ‘나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외칩니다.
그런 중년을 보며 청년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죠. “나이는 못 속인다.”
나이가 들어 백발에도 불구하고 이루고픈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이 있다면 ’그는 청춘이다’라며 부러워하고
스무 살 혈기왕성한 청년이 꿈도 없이 그저 빈둥 빈둥거리고만 있으면 ’애늙은이’라고 비웃습니다.
불과 반 세기만에 평균 수명이 50세에서 두배인 100세가 되었습니다.
과거 60세, 환갑이 되면 장수를 축하하며 동네잔치를 벌인 큰 행사였지만 지금은 스무 살 생일처럼 앞자리 숫자만 바뀐 한 살 더 먹은 생일일 뿐입니다.
영국의 ‘베네든 헬스’라는 기관에서 중년에 대해 조사한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활동적인 생활방식, 노화를 대처하는 태도가 바뀌고 있어 중년들이 중년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연구팀에서 중년의 신호 10가지를 제시했습니다.
1 일상적으로 쓰이는 전자기기들의 작동 방법을 잘 모르게 된다.
2 젊은이들이 얘기하는 화제에 대해 잘 모른다.
3 몸이 뻣뻣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4 오후에 낮잠을 자야 한다.
5 몸을 굽힐 때 신음소리가 나온다.
6 최신 음악 그룹의 이름을 모른다.
7 관절염이나 병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8 시끄러운 술집을 싫어한다.
9 털이 많아진다.
10 경찰관이나 선생님, 의사가 젊다고 생각한다.
중년의 신호 10가지를 읽어봅니다. 이 중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항은 몇 가지인가요?
늙으면 최신 전자기기가 어떤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젊은이들이 하는 대화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자리에 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최신 음악 그룹 아이돌은 누가 누군지 아무리 들어도, 통째로 외워도 내일이면 까맣게 잊어버리죠. 늙어서 몸이 뻣뻣해지니 굽힐 때마다 신음소리를 넘어 비명이 절로 나옵니다. 술집뿐 아니라 비단 시끄러운 것 자체가 싫어지고요. 무엇보다 듬직하게 보였던 군인 아저씨, 우러러보였던 선생님을 보며 앳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 같아 보였던 의사, 판사, 검사가 저리 젊은데 경험은 있을까, 세상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알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면 영락없는 중년인가 봅니다.
부모 세대 때는 중년의 신호가 어땠을까요?
내가 청춘일 때 부모는 워크맨이 뭔지도 몰랐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 정신 사납다고 채널을 돌리곤 하셨습니다. 앉았다 일어서는 어머님은 ‘아이고’ 하며 연신 신음소리를 냈고요. 친척네, 회사 내 누구누구가 00병에 걸려 큰일이라며 걱정도 하셨죠. 군대 갔다 휴가 나온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면 부모님은 많이 먹으라며, 그래야 힘을 쓴다며 한상 가득 차려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씩씩한 군인 아저씨를 그저 많이 먹고 많이 커야 하는 어린애 취급이셨죠.
그러고 보면 중년의 신호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싶습니다.
매끈한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뽀송뽀송한 청년들과 눈가엔 잔주름, 입가엔 팔자 주름에 잡티는 기본이고 자칫 검버섯도 생기는 중년과 외모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어요.
온종일 뛰어다녀도 멈출 줄 모르는 에너지 넘치는 청년과 마트에 장만 보고 와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년이 체력적으로 비교가 되겠습니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나이를 속일 수도 없고요. 잘 생기고 잘 나가고, 얼굴이 동안이라고 부러움을 받고, 몸매가 예술이라고 찬사를 듣더라도 그래 본들 동네 아저씨, 중년일 뿐입니다.
중년이 청년처럼 외모를 꾸미고 가꿔 아무리 꽃중년이니, 중춘기라고 외쳐대도 중년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이고요, 세파에 시달린 흔적은 지울 수 없습니다.
지나가는 예쁜 사람을 쳐다보다가는 능글맞다, 음흉하다, 주책이다 같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이.
조금이라도 호감을 보이면 비호감으로 돌아와 괜한 오해를 받아 곤란해지는 나이.
자신이 겪은 경험을, 조금 더 안다는 지식을 내세웠다가 꼰대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이.
그러기에 말도, 행동도 신중해야 할 나이가 중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 취업이나 고용 건강보험 등과 관련된 나이 기준은 청년의 연령은 19-34세, 장년은 35-49세, 중년은 50-64세, 노년은 65세 이상입니다.
반면 2015년 UN이 재정립한 평생 연령 기준엔 18-65세를 청년, 66-79세를 중년, 80-99세를 노년, 100세 이상을 장수노인으로 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이 기준으로 하면 스무 살 약관도, 마흔 살 불혹도, 예순 살 환갑도 다 같은 청년입니다.
그러니 중년들이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먼저 배운 지식을 내세워 그저 자신의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청년 직원들을 무시하거나 질책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젊은이들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자리에 없는 꼰대 상사를 뒷담화하며 흉보는 행동은 자제했으면 좋겠고요.
만고불변의 진리인 누구나 청춘을 살고 중년을 지나고 노년이 될 거니까요.
중년의 신호는 옛날과 비슷할지라도 시대는 분명 변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최신 노래보다 어른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트롯에 열광합니다.
중년들도 청춘을 돌려받으려고 피부를 관리하고 최신 기기를 배우며 능숙하게 사용하죠.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먹고살기도 빠듯한 세상에
다들 서로를 인정하고 세대를 이해하고 살아간다면 각박한 세상살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는 게 힘들다고 좌절하는 청년들
사는 게 의미 없다고 푸념하는 중년들
사는 게 심심하다고 외로워하는 노년들
청춘이 없었던 중년이 어디 있으며 늙지 않을 청년이 어디 있습니까.
이래 사나 저래 사나 한 세상인데 서로를 존중하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사회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