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Apr 22. 2021

인생이란 두 글자와 친해지는 방법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는 게 왜 이리 팍팍한지, 뜻대로 되는 게 어찌 이리 하나도 없는지 하고 말입니다. 그래 봤자 이런 고민은 끝이 없습니다. 답도 모르면서 답답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기도 하니까요.




 인생(人生)의 생(生)이라는 한자를 보면 육중한 소(牛) 한 마리가 외나무다리(一)를 건너는 형상이라고 하죠. 그래서 그런지 인생은 늘 아슬아슬, 조마조마한 가 봅니다. 세월만 속절없이 흐르고 딱히 해놓은 일은 없고,  하루하루가 버거워 '이놈의 인생이 뭔지' 투덜대며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옆에서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인생, 인생을 외쳐댑니다.


 "야, 너 이 집 가봤어. 이 집 스테이크가 진짜 끝내줘. 내 인생 맛집이야!"

 "너, 이 영화 봤냐?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최고야. 내 인생 영화야!"

 "이 사진 잘 나왔네. 어디서 어떻게 찍은 거야? 이건 네 인생 사진인데?"


 지금까지 인생이란 두 글자, 이를 따로 떼어서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 근사하고 번듯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 뿐이기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교육도 받았으니까요. 그렇지 못하면 멋지고 찬란하게 살아야지 하는 꿈을 꿉니다만 현실은 무겁고 고통스럽고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다들 '인생살이가 하루살이다’, '인생살이 힘들어 못 살겠다’라는 푸념을 입에 달고 있듯이 말입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인생, 알다가도 모를 인생이라 바짝 긴장하고 늘 끊이지 않는 걱정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인생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마구 갖다 붙입니다. 인생이라는 표현을 너무 가볍게 쓰는 건 아닌가 싶고요. 이들의 생각이 짧은 건지, 아직 인생의 뜨거운 맛을 덜 봐서인지 아님 내가 생각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생을 만만히 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외침을 뒤로하고 퇴근길에 시장을 지나쳤습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안 그래도 인적이 드문 시장은 한산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골목 모퉁이에 앉아서 딸기를 파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 앞에 놓인 싱싱한 딸기, 손바닥만 한 바구니 가득 5천 원이란 팻말이 보입니다. 그런가 보다 하며 앞을 지나치는데 할머니가 저를 보며 나지막이 이야기합니다.

 “싸게 드릴게요. 세 개 만 원에 들고 가세요.”  


 바구니 3개 가득히 만 원이라니. 애당초 살 계획이 없었던 딸기지만 이런 계산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귀가 솔깃해져 바구니 3개 가득 담아 샀고요, 과일을 본 식구들은 엄청 좋아했습니다. 잘 샀다며 칭찬도 받았습니다. 넘쳐나는 딸기를 생크림에 찍어서 먹고 우유로 만들어 먹고 샐러드에도 넣어 먹으면서 한동안 딸기로 호사를 누렸습니다. 진짜 인생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평소 말도 안 걸던 아이가 나보고 오늘 인생 득템이라며 한껏 추켜 세워줍니다.  

 내 인생 득템이라는 칭찬을 들으니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무겁게만, 고통스럽게만 생각했던 인생이란 단어가 득템이란 말과 있으니 꽤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고의 맛집, 영화, 사진 그리고 득템. 이런 말들이 인생 뒤에 붙으면서 인생이란 의미가 굉장히 부드러워지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무거움보다는 친근함, 고통보다는 베스트 같은 표현이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합니다.  




 인생을 산다면 어떻게든 성공해서 빛나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인생을 오히려 어렵고 힘겹게만 느끼지 않았나 싶고요, 하기야 그렇게만 따진다면 괜찮은 인생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인생, 당연히 알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도 모르고요. 그렇다면 특별한 계획 없이 시작한 하루일지라도 오늘 밤엔 우리가 또 어떤 호사를 누리고 있을지도 역시 모르는 일 아닌가요?

 

 어차피 모르는 게 마찬가지라면 인생을 무겁게만, 어렵게만 여기고 스스로 힘들어하며 살 이유 또한 없습니다. 비싸지 않아도 좋은 걸 발견하는 순간들이 하나씩 쌓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인생 맛집, 인생 영화, 인생 사진, 인생 득템. 또 뭐가 있을지 즐거운 고민거리를 찾아봅니다. 이런 행복한 상상만으로 인생이란 두 글자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오늘은 또 어떤 인생의 재미가 하나 더 쌓이게 될까요?

 특별한 계획 없이도 갑자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면 좋겠는데 말이죠.

 오늘은 인생 맛집, 인생 영화.. 그보다 오늘은 인생 최고의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봅니다.  

이전 08화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나야 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