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by 공감의 기술

1990년 우리나라에 인기를 끌었던 '영심이'라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러 주제가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그중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귓가에 맴도는, 엄청 중독성이 강한 '숫자송'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셋이면 셋이지 넷은 아니야,

넷이면 넷이지 다섯 아니야,

랄라랄라 랄라랄라 랄랄라~


숫자 하나씩만 더하면 되는 가사가 무한 반복되어 지구력만 있으면 끝도 없이 부를 수 있는 노래였습니다. 당시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200번대까지 불렀다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이 노래에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쉽게 하기 어려운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이토록 당연한 말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인데 하나라도 말하기가 어려운, 그래서 온갖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면 그냥 하나라고 말하면 될 것을

'백 빼기 구십 구' 또는 '십 나누기 십'이라고 하면서 이래도 모르겠느냐며 오히려 답답해합니다.

그러다 '셋 빼기 둘! 이제 알겠지?'라며 가장 중요한 하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홍길동도 아니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온갖 수사법을 갖다 붙여 빙빙 돌려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파문도 그렇고, 온갖 비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해 놓고선 구차한 핑계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이들도 그렇습니다.

범법행위로 의심을 받으면 오리발로 일관합니다. 나중에 뼈도 박도 못하게 되면 그제서야 마지못해 미안하다는 말보다 못한 유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하나면 그냥 하나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가장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비단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때론 괜찮지도 않으면서 애써 괜찮다고 합니다. 화가 나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는데도 화나지 않았다고 차분한 척합니다. 괜한 오해 사고 싶지도, 약한 모습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사과하면 깔끔할 텐데 그보다는 변명거리를 찾고 괜히 자신의 힘듦을 우울로 미화하며 그럴 싸한 포장 거리만 떠올리려고 합니다.

혹시 이런 적 없으신가요?




한 남자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저, 화내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화나지 않았느냐고 하니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오히려 다그쳤습니다.

"아니, 저는 흥분한 적이 없다니까요!!"

아닌 것 같다고 하자 남자는 시뻘게진 얼굴로 고함을 쳤습니다.

"여보세요. 저는 쉽게 흥분하는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요!!"

지금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그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거 하나 깨우치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이 고집스러운 생각의 근육이 더 굳어버리기 전에 고집부터 줄여보는 게 필요합니다. 감정부터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자신만 모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왜 나한테 많이 먹는다고 그래?" 자신만 모르고 있을 때가 있고요.

"왜 나한테 까칠하다고 그래?" 자신만 모를 수 있고요.

"왜 나한테 게으르다고 그래?"라며 자신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보면 어느 누구나 모든 것에 다 적용될 수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한다’라는 건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존중한다는 의미와 그럴싸하게 더 꾸미거나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즘 우리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서툴러 보입니다. 말이나 태도도 그럴 때가 많고, 사람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가운 소식은 갖은 양념을 쳐서 부풀려 말하지만, 달갑지 않은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기보다는 대충 얼버무려 무마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믿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치와 시선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전에는 있는 그대로의 생각은 드러내지 않고, 감정은 꾹 참는 게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생각이 다르거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엉망이 될까 봐, 화를 내면 남들에게 부정적인 인상만 남을까 봐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치며 자신에게 엄격했습니다.

그럴수록 스스로는 더 힘들어졌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곤 했습니다.


가끔은 나 자신이 지금 어떤 소리를 내고 싶은지, 어떤 향을 품고 있는지, 어떤 색을 내기 원하는지. 자세히 들려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쓰다듬고 보듬고 다독거리는 게 감정을 다스리고 내면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이니까요.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습니까? 그러니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파악하고 표현해도 부딪힐 일이, 남들에게 오해받을 일이 훨씬 줄어들 테니까요. 

keyword
이전 10화우리 시대 아버지의 잔소리 변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