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삼겹살집에 갔더니 메뉴판에 재미있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인생은 짧고 고기는 맛있다.'
옆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는 소리와 냄새가 이성을 잃게 합니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고기가 나오나 안 오나 고개를 빼들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벽면에 붙어 있는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다림 끝에 고기 온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이 꽉 막힌 도로 위, 스멀스멀 짜증이 밀려듭니다. 얼마큼 시간이 지났을까 시계를 확인하는 그 순간 앞뒤로 울리는 경적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출발을 합니다.
이제 막힘이 풀렸나 싶다가 또다시 거북이걸음, 그러다 이내 도로 위는 도로 주차장이 되곤 합니다.
대체 이 답답한 기다림의 끝은 어디일까요?
흔히들 인생은 기다림이라고 합니다. 이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항상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주말을 기다리고, 출근을 하면 퇴근을 기다립니다.
학기가 시작되면 방학을 기다리고, 직장에서는 휴가를 기다립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선선한 가을을 기다리고, 매서운 한파의 겨울에는 계절의 여왕을 기다립니다.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고, 어른이 되면 삶이 좀 편안해지기를 기다립니다.
사랑할 이를, 성공한 나를, 행복한 삶을 기다립니다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삶이 버거울 때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얼굴을 달리합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눈에서 안 보이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 한동안 소식도 없어 기억에서 멀어져 갑니다.
'여기까지인가?' 했던 아쉬움은 점점 그리움이 더해져 무작정 보고 싶어 애를 태웁니다. 아쉬움도 보고픔도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기다림이 됩니다. 새로운 만남이라는 설렘도 기다림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얼굴을 달리하는 기다림은 멀어져만 가는 게 아니라 더 아름답게 만나기 위한 기다림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다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목이 빠지게 기다립니다. 행여 언제 오시려나, 일 나간 엄마 아빠가 얼른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의 기다림입니다.
마음을 졸이며 기다립니다. 합격자 발표에 내 이름이 있을까 없을까, 아직 며칠이나 남았는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초조한 기다림입니다.
기다리다가 지칩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아 또 기다려야 한다면 남아 있는 기운까지 다 빠집니다. 이제 좀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면 의욕마저 꺾입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이놈의 역병처럼 말입니다.
지쳐서 더 이상 못 기다리고, 기다리다 쓰러지고, 기다림에 녹초가 되어도 끝까지 기다립니다. 단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때 기다림은 성립합니다. 포기하는 순간 기다림도 사라집니다.
새로 출시된 스마트폰은 얼마나 빠른지, 즉석요리는 얼마나 빨리 먹을 수 있는지,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지 다들 빠름에 익숙해져 사는 세상입니다. 빠르지 않으면 실망을 하고 빨리 끝내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합니다. 남들보다 빠르지 못하면 근처에 묻어서라도 가야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기다림은 빠름이 아닙니다. 3분 만에 컵라면이 익어가는 기다림이 있는 반면 수십 년을 가꾸어야 열매를 맺는 기다림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다리는 시간은 답답하고 초조하고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서두른다고, 조급해진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오늘 씨를 뿌렸다고 내일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는 없습니다. 오늘도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수고를 하고, 햇빛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생존을 하루도 멈추지 않고, 세찬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맞섭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때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이것이 자연이 만든 성장의 섭리, 그러니 기다림은 인내의 연속입니다.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나무를 더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듭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나오는 고기처럼, 때가 되면 찾아오는 방학처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바뀌는 계절처럼 끝을 안다면 기다림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인생의 기다림은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기약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끝까지 기다린다고 잘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때론 기약도, 보장도 없는 기다림을 또 기다리기도 합니다. 마음을 비우면서 말이죠.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실망도 하고 좌절도 겪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기다림은 행복한 내일을 바라는 기대이자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희망이니까요.
우리는 무언가를 늘 기다리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고 행복하기를 기다리고 그리고 죽음을 기다립니다. 사는 내내 기다림은 희로애락과 같이 하며 삶은 이어지고 완성됩니다.
기다림은 여백입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여백을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이 삶의 여정입니다.
모처럼 큰맘 먹고 놀러 갑니다. 들뜬 마음도 즐겁고, 이것저것 잘 챙기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차가 막혀 기다려야 할 인내도 필요합니다.
인생살이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이루고픈 소망이 있다면 바라고 원하는 만큼이나 긴 기다림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도 있어야 하니까요.
인생은 긴 기다림의 여정, 오늘은 그 기다림의 시작.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 볼까요?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설렘이자 행복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줄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