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가까이 누워서 먹고 자고만 하던 아이가 드디어 두발로 일어섰습니다.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뒤뚱거리며 내디딜 무렵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안돼! 거기로 가면 안 돼, 거긴 찻길이야!"
손가락 힘이 약해 연필을 쥐기도 만만치 않았을 무렵. 가, 나, 다 글자는 삐뚤삐뚤, 1, 2, 3 숫자를 낑낑대며 쓰고 있습니다. 그걸 본 아버지는 틀림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장하다, 우리 아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못 살던 시절에 태어나 자랐습니다. 먹을 게 없어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일만 죽어라 하셨습니다. 아침별 보고 나가 저녁별 보며 들어오는 일상을 한평생 동안 하셨던 우리 아버지들은 '하면 된다'라는 정신으로 '노력만이 살길이다'라는 신념이 투철하셨던 이 시대의 전형적인 새마을 운동의 주역이자 산업역군들이셨습니다. 가난이 죽기보다 싫었으니까요.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 있는지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걸 미덕으로 아시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 할 일이 없으면 빗자루를 들고나가 집 앞이라도 쓸던지, 하다못해 뒷짐 지고 동네 한 바퀴라도 걸어야 직성이 풀리셨습니다.
'능률이 최우선이다'라고 믿는 아버지는 어느덧 청년이 된 아들이지만 하시는 잔소리는 여전합니다.
방학을 맞이해서 늦잠 좀 자려는데 이를 보시던 아버지는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녀석아,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자냐? 죽으면 얼마든지 실컷 잘 수 있는 잠이다."
머리도 식힐 겸 오랜만에 기타를 꺼내 기타 줄을 튕겨보려 하는데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십니다.
"그, 취미를 가져도 돈이 되는 걸 가질 것이지, 으이그."
나이는 먹어가고 취업은 걱정되고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싸매다 신을 찾아 기도라도 하려니 어디선가 혀 차는 소리가 날아옵니다.
"쯧쯧. 에이. 젊은 놈이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뒹굴기나 하다니."
모름지기 자식들은 결혼을 해서 아들딸 낳아 대를 잇는 건 기본, 자녀가 많을수록 조상님 볼 면목이 선다고 믿었습니다. 혼인은 당연한 일, 그런데 형제들 가운데 꼭 한 명은 결혼 같은 거 하지 않고 연애도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을 볼 때마다 걱정이 태산, 속에서는 열불이 일어납니다.
'결혼해라' 같은 이야기는 이미 수천 번도 더한 터라 이제는 포기할 법도 한데 아버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명절이나 부모 생신날에 모처럼 다 모인 가족들, 아버지는 자식들 한 명 한 명에게 덕담을 하십니다.
"가정은 화목하고, 건강이 제일이다. 하는 일마다 만사형통하고, 매사 조심하거라. 그리고 네가 하고 있는 그 일 말이다. 그거 술술 풀려서 돈도 좀 벌고. 그 덕에 네 엄마 아버지 호강도 시켜 주고. 허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또 넘어섭니다.
"얼른 올해는 꼭 네 짝 만나서 떡두꺼비 같은 자식 낳고 잘 살아야지, 안 그래?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내가 너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잠을 못 잔다."
오랜만에 앉아 덕담을 나누는 시간, 분명 시작은 격려의 말이었는데 그 끝은 언제나 그랬듯이 잔소리가 되어 덕담은 악담으로 끝나곤 합니다.
칠순을 앞둔 노모가 회초리를 들어 반백살이 된 아들의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아들의 생일날, 젊은 동지들이 옷을 팔아 고기와 선물을 사 왔습니다. 그걸 본 어머니는 아들이 괜히 생일을 알려 독립운동에 매진해야 할 동지들의 돈을 허투루 쓰게 했다는 게 회초리를 든 이유였습니다. 그 아들은 다름 아닌 백범 김구 선생이었습니다.
자식이 비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디 김구 선생의 어머니뿐이겠습니까?
해가 뜨나 달이 뜨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는 마음, 자나 깨나 자식 하나 잘되기를 바라는 오직 한마음으로 가슴 조여 기도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뿐입니다. 그러니 자식 걱정하는 것이 부모님의 가장 중요한 일과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은 물론 사회에서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제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며 살아가는 자식들입니다. 어딜 가나 듬직한 큰형님으로, 억척같은 왕언니라는 소리를 듣는 자식이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여전히 애기 같은 존재입니다. 아들도 백발이 되었는데도, 딸도 세월의 흔적인 주름이 깊게 패었는데도 말이죠.
아주 오래전에 이미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늦둥이 막내가 낳은 어린 손자와 같이 걷습니다. 당신의 속도를 맞추다 행여 아장아장 걷는 귀한 손자가 넘어질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보폭도 반의 반보다 적게 하며 조심스럽게 걷습니다.
내가 어릴 때는 무뚝뚝해서 말 걸기도 어려웠던 아버지였는데 지금은 뒤뚱뒤뚱 걷는 손자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어린아이처럼 좋아 어쩔 줄 몰라하십니다. 덕분에 걸음마 손자는 두려움 없이 수월하게 앞으로 걸어갑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와 삶의 뒤안길에 선 할아버지의 인자한 웃음이 서로 어울리며 나란히 보폭을 맞춰 걷는 모습, 이보다 아름다운 삶의 조화가 있을까 싶습니다.
한 빵집 가게에 들어선 어르신,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선뜻 고르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점원이 찾는 물건이 있으면 도와드리겠다고 하자 우리 딸내미가 먹을 건데 요즘 애들은 어떤 케이크를 좋아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점원이 자녀분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여쭈어보자 어르신은 답합니다.
"응, 우리 애? 이제 한 쉰쯤 됐는데."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반백살이 된 아들과 통화를 합니다.
"나는 괜찮다, 별일 없다"라며 몇 마디 나누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십니다. 그리곤 언제나 늘 하던 잔소리로 끝을 맺습니다.
"매사에 조심하거라."
혈기왕성했던 젊은 날의 씩씩함은 찾아볼 수 없고, 쩡쩡하던 목소리는 기력이 달리신지 예전만 못한 우리 시대의 아버지. 하지만 꼬마이든 반백살이든 자식들이 눈에 밟히는 건 여전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