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Nov 22. 2021

물처럼 산다는 건, 상선약수

 인상을 험상궂게 찡그린 채 반말을 찍찍 해대며 목소리를 한껏 올리는, 싸가지와는 아예 담을 쌓은 무례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로지 목소리로만, 윽박질러서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보나 마나 하수입니다. 다만 상대하려니 짜증 날 뿐입니다. 


 값비싼 물품을 몸에 걸친 채 있는 척, 높은 사람을 아는 척하며 상대방의 기를 꺾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물이나 권력으로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중수라고 합니다. 척하고 사는 사람들, 알고 보면 자격지심이 만만치 않다고 하죠. 


 남녀노소 불문하고 상대가 누구인지 간에 온화한 미소로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미소로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사람을 상수라고 부릅니다.

 상수보다 더 고수는 상대와 다투려고 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을 상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툼과 반목과 갈등이 만연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다 보니 상선은 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상선이 들어간 사자성어를 찾아보면 이 네 글자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으뜸이 되는 선은 물과 같다'라는 의미로 노자가 하신 말씀입니다. 상선이란 이상적인 생활 의식이며 가장 이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물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이 최고의 선이라고 하는데, 물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들여다봅니다.

 물은 당연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러다 바다에 닿고 그 물은 증발하여 하늘에 구름이 되고 때가 되면 비가 되어 목마른 대지를 다시 촉촉이 적셔줍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 지구 상의 2/3가 바다로, 인간의 몸도 2/3가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모든 생명의 목을 축이고, 무릇 때 묻은 대지를 깨끗하게 씻겨주기도 합니다.

 물은 까탈스럽지도 않아 언제 어디서든 모양을 드러내지 않고 그렇다고 홀로 고상한 척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머무는 곳이 무슨 상관이냐 하듯 맡은 소임을 다할 뿐입니다. 자신의 모습이 이것이라며 고집 피우지도 않고 항상 변화를 함으로써 상대방을 거스르는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이 한없이 약하고 부드럽지만은 않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함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한 방울씩 끊임없이 흐른 물방울이 바위를 뚫어버리고요, 때론 폭풍우를 일으켜 세상을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나오듯 타락한 인간을 보며 후회한 조물주가 세상을 휩쓰는데 사용한 도구는 물입니다. 


 물처럼 약하고 유연하고 부드러운 것도 없는 반면 물처럼 굳세고 강한 존재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흐르면서 여러 가지 덕을 지닌 물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이상적인 삶으로 여기는 이유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도 그 공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물, 그래서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합니다.  




 상선약수 같은 최고의 상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분이 영 아닐 때 한 번씩 물의 힘을 빌려 마음의 평화를 얻곤 합니다.

 온수를 받아 놓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습니다. 손끝에 주름이 잡힐 때까지 수영을 하기도 하고 운동으로 땀을 쭉 빼며 마음의 짐을 털어 버리기도 합니다. 내키면 비를 일부러 맞으며 즐길 때도 있고요, 만사 생각조차 하기 귀찮으면 그저 물만 멍하니 바라보는 자체만으로 힐링을 얻습니다.

 그렇게 몸을 푹 적시고 나면 마음의 상황이 한결 나아집니다. 


 좋아하는 차 한 잔과 따뜻한 목욕물에 지뿌뚱한 마음이 누그러지고요, 가을비는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답답한 분위기를 녹여주고 갔으면 합니다. 쓰디쓴 술 한 잔에 쓰디쓴 인생을 내뱉으며 달래어 보고, 울고 싶을 땐 실컷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기도 합니다.

 "우울이나 스트레스는 수용성이다"라고 한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말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꽉 막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네 탓, 남 탓, 세상 탓, 환경 탓을 하며 좌절하고 원망을 퍼붓곤 했습니다. 

 물은 그릇을 탓하지 않습니다. 둥글든, 네모나든 설령 찌그러졌든지 간에 제 모습을 그릇에 맞출 뿐입니다. 그러니 탓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며 흐르는 순리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급함 대신 물 흐르듯 살아야 한다는 이치를 물을 보며 흩뜨려졌던 마음을 다시 가다듬어 봅니다. 


 물을 벗하지 아니하고 어찌 불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욕심이 생기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양심에 거슬리지 말아야 나중에 곤란을 당하지 않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오르면 흐르는 물처럼 흘러 보내는 용서가 지나고 나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 남을 이겨야만 살아남는 세상이라고 합니다만 그게 삶의 전부는 아닐 테죠.

남을 이롭게 하고 아낌없이 주면서도 자기를 드러내는데 급급하지 않은 존재,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어떤 모양으로 바뀌는 유연함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 물이 보여주는 상선약수의 진면목을 되새겨 보면 좋을 듯싶습니다. 


 물처럼 산다는 건 빨리 간다 늦게 간다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누가 앞에 가든 누가 뒤에 서든 괘념치 않습니다. 어차피 돌고 도는 물처럼 흘러 결국엔 세상에 뿌려지니까요.

 고수, 하수 할 것 없이 지금껏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돈 없이,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었지만 물 없이는 살 수 없었다는 진리를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이전 19화 '아, 좋다.' 평범하면서도 좋은 습관을 꾸준히 가져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