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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pr 08. 2022

복 중의 복, 전화위복

 길흉화복에 관심이 없어도 옆 사람이 손금을 기막히게 잘 본다고 하면 내 손도 보여주고 싶고요, 아무리 재미로 보는 운세라고 하지만 운수가 대통이라고 나오면 기분이 말도 못 하게 째집니다.

 손바닥에 그어진 손금으로 재물이 얼마나 들어올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 삶이 평탄한 지를 미리 점쳐보곤 합니다. 사주팔자를 넣어 토정비결을 보며 무언가 부족하거나 성에 차지 않으면 메꿀 방법은 없는지 찾아 고민하고요, 천지신명께 빌기도 합니다. 


 바라는 복도 참 많습니다. 재물복, 자식복, 부모복, 건강복, 인복, 행복 등등. 저마다 받고 싶은 복은 늘 있기 마련, 그래서 새해가 되면 복조리를 걸고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나누고 복을 부르는 상징물을 지니고 다닙니다.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을 항시도 떼어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복을 비는 가운데 태어난 우리는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속에서 자라납니다. 복을 부르는 온갖 상징 속에 둘러싸여 복을 빌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복을 비는 마음을 받으며 생을 마감한다고 하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드라이브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둘만의 오붓하게 보내는 이 시간은 세상 부러울 게 없습니다. 손을 꼭 잡고 꽃들이 만발한 나무들 사이로 거닐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달콤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합니다. 둘만 앉아 있는 차 안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돌아오는 길,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합니다. 


 신호를 받고 대기하는 중에 반대편 차선, 그것도 2차선에서 갑자기 유턴을 하는 차량이 사정없이 들이박았습니다. 눈앞에서 삽시간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는 달달하게 즐기던 데이트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사고로 차량은 구겨진 종이처럼 찌그러졌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몸은 병원으로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119 구급차에 실려서 말입니다.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아픕니다. 옆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흐느껴 웁니다. 통증으로 신음 소리조차 내기 힘든 몸 상태, 아닌 밤중에 이게 웬 날벼락인지, 이러다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닌지, 걷지도 못하고 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삶의 위기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잠시라도 잘 사는 꼴이 못 봐 사고를 주는 운명이 미웠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행복은 무슨 얼어 죽을...' 끙끙 앓으며 한탄만 할 뿐이었습니다.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비명이 나왔던 통증은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던 팔다리도 서서히 움직이고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아프고 불편한 부위를 체크하며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고로 아프고 골절이 있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몸속에 전혀 몰랐던 암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증상이 없지만 엄청 빨리 자라 전이된다는 악성 암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조기 발견하여 조기치료를 받아 암이라는 녀석을 깔끔하게 제거하였습니다. 만약 사고가 없었다면 암은 순식간에 커져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새삼 교통사고가 너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신의 저주라며 원망했던 사고가 내 삶을 지켜준 신의 배려였습니다.  




 복 중의 복, 최고의 복이 있습니다. 재물에서 나올지, 자식이나 부모 같은 관계에서 생길지, 건강에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복입니다. 이 복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쓰디쓴 아픔을 겪어야 하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봐야만 맛볼 수 있습니다.

 시련과 좌절을 딛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내하며 버틴 자에게 찾아오는 복, 고통의 시간은 쓰디쓰지만 그 열매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복 중의 복, 전화위복입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인 전화위복(轉禍爲福),

 중국 고전 사기(史記)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전국시대 때 합종책을 주장하며 당시 여섯 나라의 임금을 보필했던 재상 소진의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옛날에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했고 [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功(공)이 되게 했다 [因敗爲功].”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슬퍼하고 원망만 하고 있어 본들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불러와 더 큰 재앙이 될지도 모릅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포기하고 주저앉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더 나은 방향으로 일이 풀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일 일은 아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합니다. 순간순간 일어난 일에 일희일비, 좌지우지되기보다 크게, 넓게, 멀리 내다보는 담대함이 전화위복을 불러오는 마음가짐입니다.

 넘어졌을 때 아파서 엉엉 울고 땅을 치며 운명을 원망하는 자, 아픔을 견디며 이겨내려고 땅을 딛고 일어서는 자, 전화위복은 누구에게 미소를 지을까요? 


 복 중의 복 전화위복, 듣기만 해도 짜릿하지 않습니까? 9회 말 대역전 같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내 인생에도 펼쳐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P.S

에피소드에 나오는 이야기, 제 이야기 아닙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한번쯤은 보셨을 내용입니다. 혹시나 걱정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오버 조금 했습니다. 오늘은 기다리던 불금입니다. 넓은 마음으로 봐주시고 다들 달달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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