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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un 10. 2022

귀차니즘,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엘리베이터 근처에 주차하려고 주차장을 뺑뺑 돕니다. 빈 공간을 발견했지만 입구와는 너무 멀어 통과, 게다가 바로 뒤에 다른 차가 따라붙는 바람에 다음 층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다 어느새 지하 맨 아래층까지 와있습니다. 좀 걷는 걸 귀찮아하다 말이죠. 


 운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부터 고민에 빠집니다. 할까? 말까? 뭘 입고 나가지? 무슨 운동을 하지? 그냥 내일부터 할까? 문을 열고 나서기까지 1시간은 족히 이랬다 저랬다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막상 하려니까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하나하나 따지고 이번만은 그냥 못 넘어가겠다며 씩씩거리는 친구가 웬만하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기는 친구에게 따져 묻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어? 그게 가능해?"

 그러자 친구는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로 뚝 잘라 말합니다.

 "귀찮다."  




 세상만사가 귀찮아서 게으름 피우는 현상이 고착화된 상태를 일컫는 말, 귀차니즘. 인터넷 신조어인 귀차니즘 하면 한때 유행했던 모 카드회사의 이런 광고 문구가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뒤처지지 않은 인생 같고,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바쁜 척이라도 해야 정상처럼 보입니다. 피곤에 찌든 모습은 싫어서 여러 비타민도 챙겨 먹지만 피곤해야 세상을 그나마 제대로 살고 있는 기분이 드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급변하는 사회, 치열한 경쟁 그래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일상에 지쳐서 편안함을 그리워하면서 말입니다. 


 사람이란 뛰다 보면 걷고 싶고, 걷다 보면 서고 싶고, 서있다 보면 앉고 눕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뭐든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쪽으로만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편안함을 누리고 있으면 이 편안함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을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익숙한 업무를 처리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일상이라 편안하다 못해 밋밋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불안의 덩어리가 불쑥불쑥 올라와 가슴을 요동치게 합니다.

 휴일에 놀러 가도, 휴가를 한껏 즐기다가도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 편안함에 안주하다 나만 나태해지고 도태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몰려와 편안함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귀차니즘을 현실적으로는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귀차니즘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게 심하게 진화하면 무기력한 우울증이 되기도 합니다.

 귀차니즘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체와 퇴보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인류는 귀차니즘 때문에 망할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귀차니즘이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있지 않습니다.

 인류는 귀차니즘 때문에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기술을 발달시켰습니다. 3분이면 한 끼가 해결되는 인스턴트식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연락하기 위해 전화를 발명하였고 나아가 휴대전화에 컴퓨터까지 넣은 통신기기를 만들었습니다. 소파의 편안함을 극대화하려고 리모컨을, 잔을 들기도 귀찮아하는 사람을 위해 빨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도 빠지지 않습니다. 제사나 마을 잔치를 하고 남은 음식들을 처리하기 귀찮아하던 백성들이 만들어낸 음식이 있습니다. 귀차니즘으로 만든 이 음식은 지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하는 비빔밥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더 격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면 한 시간에 30cm 움직인다는 나무늘보를 부러워합니다.

 나무늘보는 영어로 Sloth, 나태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름하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동물입니다. 바쁠 때는 간혹 나무늘보의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 끝이 좋지 않을까 봐 얼른 철회합니다. 


 나무늘보는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나무늘보는 동작이 매우 느리지만 게으르거나 나태한 게 아닙니다. 나무늘보가 느린 이유,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진화의 산물이자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나무를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틈틈이 늘어져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삶, 사람의 속도가 어울립니다.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지치는 건 당연, 그럴 때는 쉬었다가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일상에 찌들어 심신이 편하지 않은 날이 있습니다. 앞만 향해 달리기만 하는 삶에 잠시 멈춤이 필요한 순간, 그런 날에는 귀차니즘을 패턴으로 잡아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귀차니즘으로 너그럽게 봐주면서 말이죠. 그런 시간이 있어야 몸도 마음도 편안한 휴식이 되고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으니까요. 


 사소한 일에 열받고, 괜한 걱정을 사서 하다 보면 피곤과 짜증이 몰려옵니다. 생각할 거리가 끊이질 않고, 묻고 따지고 화낼 일이 많은 일상이라면 귀차니즘을 잘 채색하는 요령이 도움이 됩니다. 채색을 잘해서 잘만 포장을 하면 귀차니즘이 여유로움을 가져다주고,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보낸 귀차니즘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줄 테니까요. 


 또 한 주일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귀차니즘을 한껏 누려보는 건 어떨까요? 귀차니즘을 잘 채색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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