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들이 많아 길이 막히면 말할 것도 없고, 신호가 바뀌어 잠시 멈춰 서도 그렇습니다. 앞차가 갑자기 끼어들거나 느릿느릿 걷는 보행자를 기다려야 할 때면 딱히 바쁜 일이 없어도 괜히 조급해집니다.
마트 계산대에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으면 어느 줄이 짧은지 두리번두리번하고요, 계산이 느린 카운터에 있으면 잠깐 동안을 견디지 못해 짜증이 밀려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놀러 간 유명 관광지, 찬찬히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사진 몇 장만 달랑 찍고 다음 장소로 바삐 이동합니다. 여유를 찾고 기분전환으로 간 여행지에서도 빨리빨리 조바심 내는 모습은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방해하는 사람 없는 혼자만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느긋하게 보내는 게 어색합니다.
영상을 제 속도로 보려고 하니 느려 터진 것 같아 조바심이 납니다. 재미있는 부분이나 알아 두면 유익한 내용만 간추려 봐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니 답답합니다. 밀려오는 답답함을 달래려고 재미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은 2배 속으로 빨리 감고, 정보성이 있는 영상들은 1.2 또는 1.5배속으로 시청합니다.
빨리 감아보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최대한 압축된 걸 선호합니다.
베스트셀러를 비롯한 이름 있는 책은 물론 문장 하나하나 음미해서 읽으면 좋을 문학작품도 요약본으로 읽습니다. 두 시간짜리 영화는 30분으로 축약한 영상을 시청하고요, 몇십 회가 넘는 드라마는 1시간 남짓 편집한 몰아보기로 대신합니다.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는 하이라이트로 모아놓은 동영상이면 만족하고요, 노래 전주도 10초만 넘어도 길어서 건너뜁니다.
이렇게만 해도 다 읽고 듣고 본 기분이 들어 뿌듯합니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가치 아래 일분일초가 아깝다고 여기는 현대인에게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를 본 일본의 한 전문가가 이런 진단을 내렸습니다.
도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도시과민증 증상이라고 말이죠.
도시에 살면서 사람들이 매 순간 조바심을 느끼게 되는 증후군을 '도시 과민증'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든 여러 미디어들이 넘쳐 나고, 그 미디어에서 하루에 쏟아내는 정보만 해도 어마 무시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처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흡수해야 한다는 강박,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합니다. 이런 강박과 생존본능이 조바심을 일으키기에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8-90년 대의 노래들은 평균 20초 정도의 전주가 나오는 반면 요즘 인기곡의 전주는 길이가 5초가량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사를 빨리 듣고 싶어 전주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접하기 위해 영상을 2배 속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게 습관이 되어 정상 배속으로 보면 답답함을 느낀다는 설문 조사도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말이 '빨리빨리'라고 하죠.
바쁘게 움직이는 게 당연하고, 분주한 삶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빠른 걸 선호합니다.
혹시 지금 영상을 2배 속으로 보거나, 불필요한 부분이다 싶으면 빨리 감기로 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단기 속성반처럼 모든 걸 속도전으로 끝내야만 직성이 풀리고 만족하는 우리, 하지만 매사 빨리빨리를 외치며 조바심을 갖게 되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밥은 게눈 감추듯 먹습니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영상을 배속으로 보고, 놀러 가서도 일 걱정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몸은 늘 긴장 상태가 되어 혈관을 수축시켜 두통, 현기증 등 여러 증상을 야기한다고 하죠.
'빈칸을 채우는 일보다 비워두는 일이 언제나 더 힘들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득 차 있으면 보이지 않다가 빈틈이 생기면 틈 사이로 보이는 새로움이 있습니다. 빈틈 하나가 숨 막힘을 해소하고 또 다른 시각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잡동사니로 빼곡한 방을 비우고 나면 새로운 환경이 되듯이 복잡 미묘한 사람 마음도 그렇습니다.
시간과 노력 대비 성과가 좋은 가성비를 가득 담고 싶은 마음, 다들 좋아하고 가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보고 느끼려면 하나라도 찬찬히 보는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고 그렇게 보는 영상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유명 관광지에서 빨리빨리 찍은 사진 한 장은 흔적이지만 이름 없는 나무 앞에서라도 진심으로 즐긴 순간은 추억으로 만들어집니다.
빨리빨리 감아 본 속도만큼 머릿속에서 저장할 여유가 없어 빨리빨리 사라지고 남는 거라고는 가물가물한 기억뿐일 테죠.
어떻게든 모든 순간을 꽉 채우기보다는 오늘은 여백이 매력적인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요?
채우지 않아도 편안한 그런 하루 말입니다.
지금부터 찬찬히 느끼며 여백을 담아 가시죠. 두 배속 없고요, 건너뛰기도 하지 말고요.
이미지 출처 : CNN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