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두려운 것 천지예요. 언제 걸릴지 모를 질병, 생각만 해도 무서운 죽음,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몸. 어디 그뿐인가요, 뒤처지고 떨어지는 온갖 것들이 두려움을 몰고 옵니다.
그래도 잘 살아보겠다고 두려움에 맞서거나 달래면서 버텨냅니다만 살다 보면 사방팔방이 꽉 막혀 도무지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미래는 신의 영역,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난감하고 답답한 일이 닥치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특히나 일이 꼬여 해결책이 안 보일 때는 더 그렇습니다. 누가 떡 하니 나타나 '이 길이다'라고 가르쳐 주기라도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내 인생이니 스스로 답을 찾는 수밖에요.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산길을 걷던 노인이 길을 잃은 듯 보이는 늙은 말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고삐가 풀려 있는 말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말을 그냥 두고 가자니 잃어버린 말을 애타게 찾고 있을 주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산속에서 주인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일, 노인은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말에 다가가 말머리를 쓰다듬으며 친근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말과 교감을 나눈 노인은 말위로 올라탔습니다. 노인을 태운 말은 천천히 걷기 시작합니다. 말의 고삐를 느슨하게 움켜쥔 채 노인은 말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겼습니다. 가던 걸음을 멈춰 설 때도, 가다가 길 옆의 풀을 뜯을 때도 그저 가만히 지켜보면서 말이죠. 그러는 동안 노인은 고삐를 당겨 방향을 틀지도 않고 억지로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말은 어느 집 앞에서 느릿느릿 걷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말이 멈추자 노인은 말에서 내려 그 집주인을 불렀습니다.
노인이 부르는 소리에 한 젊은이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말을 본 젊은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말의 주인이었거든요. 어제 아침에 갑자기 뛰쳐나간 말을 찾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는 젊은이는 말을 찾아준 노인에게 답례로 저녁을 대접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노인이 잃어버린 말과 함께 자신의 집을 찾아온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신기했던 젊은이는 어떻게 말의 주인을 알아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네. 자네 집을 찾은 건 말이 한 거고, 나는 그저 이 말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만 도와줬을 뿐이라네"라고 대답합니다.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인 '노마지지(老馬之智)',
'숲 속에서 길을 잃을 때 늙은 말을 따라가면 길이 보인다'라고 풀이합니다. 중국 고전인 한비자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그 나름대로의 재주나 슬기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위기가 닥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는 오래된 경험이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의 주인을 찾아준 노인의 지혜처럼 말이죠.
또 다른 의미는 일이 풀리지 않거나 길을 잃었을 때는 말의 무의식처럼 내면의 숨겨진 본능을 탐구해 보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노마지지의 이야기 속에서 '말(馬)'은 사람의 '무의식'을, '노인'은 사람의 '의식'을 상징합니다. 말이 가는 '길'은 각자 추구해야 할 '가치', '길 옆의 풀'은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는 여러 '유혹'을 상징합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우리가 깨어있을 때의 의식은 전체 정신세계 중 물 위에 떠있는 빙산처럼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빙산은 보이지 않은 바다 밑부분이 대부분인 것처럼 우리의 무의식도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의식은 제한적이지만 인간의 한계 너머를 이해하려고 할 때는 현실 자각은 무의식의 힘을 받습니다. 간혹 꿈으로 나타나듯 말이죠. 무의식은 지나간 일을 저장하는 창고일 뿐만 아니라 본능을 비롯한 의식 이외의 모든 정신 작용을 담고 있어 심적 갈등이나 사고, 창조적 관념으로 가득 차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의식의 힘은 무궁무진하다고 합니다.
노마지지의 숨은 반전은 사사로운 욕심에 흔들리지 않고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핵심은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느냐'라고 합니다.
일이 꼬여 지금 이 순간이 막막할 때 자신을 돌아보라고 합니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건 내면을 들여본다는 의미, 무의식의 영역으로 확장하다 보면 말의 귀소본능처럼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무언가가 자꾸 마음에 떠오른다면, 그것은 일단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무의식의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잊고 사는 건 없는지, 놓친 건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길을 잘 찾으면 좋겠습니다. 무의식이 잘 살아가라고 당부하는 응원을 받으며 파이팅 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