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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ug 19. 2022

인생 하이라이트는?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사람들은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제일 잘 나갈 때의 뿌듯함,

 누가 봐도 부러워했던 늘씬한 몸매,

 3일 밤낮을 꼬박 새워 놀아도 거뜬했던 체력,

 아무리 일이 많아도 몇 시간 만에 뚝딱 해치웠던 열정.

 '라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레퍼토리에 빠지지 않는 그 시절 추억담을 그리워하면서요. 


 밝은 부분이나 반사되는 부분을 뜻하는 미술 용어입니다. 스포츠나 연극, 영화, 음악 같은 각종 분야에서 가장 흥미 있거나 중요한 연출을 이끌어내는 장면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만 추가해 줘도 매끈하고 생기 있는 질감이 생긴다는 '하이라이트'입니다. 하얀 바탕에 까만 글자만 있는 노트에 노란색 형광펜을 칠하면 눈에 확 띄는 것처럼 말이죠.  




 한창 잘 나가던 그때와 지금 처지를 비교하다 실망하곤 합니다. 번쩍번쩍 빛나는 하이라이트 장면에 푹 빠져 있다 현실의 나를 마주하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잘 나가기는커녕 간당간당 버티고 있을 때,

 체중계의 눈금이 뱃살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거울 앞에서 자신만만하던 눈동자가 어느새 흐리멍덩한 동태눈처럼 보일 때가 그렇습니다.

 3일 밤낮은 고사하고 하룻밤만 잠을 설쳐도 다음날 컨디션은 엉망이 되고, 좀 무리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앓은 소리가 납니다. 마음은 한창인데 몸은 왜 이리 따라주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가진 모임, 술잔을 기울이다 한 동료가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답니다.

 진짜 모르겠다, 시간이 빠른 건지 아니면 내가 굼뜬 건지. 하루 종일 바둥바둥거려도 해놓은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자꾸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는 횟수만 늘어나는 것 같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지난 몇 년간, 그러다가 평생 동안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나?' 하는 허탈함이 들고요.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에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인생에서 과연 하이라이트는 있기나 했는지 의아하기만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사실을 까먹습니다. 예전엔 이까이 꺼쯤이야 만만했던 일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로 다가옵니다.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는 저질 체력으로 내가 근근이 붙어 있는 이 자리에서 이대로 꼬꾸라지는 게 아닐까 싶으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선배들이 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며 흥이 오른 신입 사원이 인생 하이라이트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합니다.

 "저는 아직 저의 하이라이트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맞이하는 그날까지 매일매일 전진하고 있습니다."

 패기만만한 청춘의 대답에 다들 웃음꽃을 피웁니다. 이런 덕담이 빠질 수 없습니다.

 "인마, 그런 이야기할 때가 좋을 때야!"

 그랬습니다. 이렇게 말한 그 상사도 옛날에 같은 이야기를 했을 테죠.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아직도 모른 채 말이죠.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나?' 싶지만 하나씩 되새기다 보면 제법 여러 가지 변화를 내가 잊고 살았을 뿐입니다.

 좀 더 무거운 직책을 얻어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정성껏 키웠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멋지게 해내기도 했고,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이겨내 왔습니다. 어울리는 사람도 많이 바뀌어 있고, 연륜이 쌓이는 동안 삶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뭔가 엄청난 일은 하나쯤은 해내야 할 것 같은 바람은 굴뚝같은데 하루는 금방 가 있고 어떤 때는 '내가 뭘 했지?' 하는 허무함이 몰려옵니다. 근데 사실 매일 어떻게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몇 명이나 되겠어요?

 오늘내일,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딱 그 정도만 보고 사느라 변화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고, 누군가한테 등 떠밀려 여기까지 와 있는 듯한 기분도 종종 듭니다만 사실 매 순간 본능적으로 애쓰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듯이 나이에 따라 컨디션도 다 다릅니다. 생각이나 행동의 속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삶의 무게를 짊어지다 생긴 과부하일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의 기분이나 날씨 탓일 수도 있죠. 무조건 연식만을 탓하며 아쉬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기보다 천천히 움직여도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넉넉함이 또 다른 인생 하이라이트를 색칠해가는 여정이 될 수 있으니까요. 


 밋밋한 생활만 계속 살다 보면 어느덧 기대를 품지 않게 됩니다. 재미없다며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곤 합니다만 건조한 일상에 신나는 재미를 찾아 즐긴다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조금씩 그려나가는 거겠죠.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만들려고 애쓰고 하이라이트만 기억하고픈 우리, 훗날 시간을 길게 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도 인생 하이라이트를 그리며 열심히 살고 있는 걸 테니까요.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만들기 위해 정신없이 부지런히 달려가야죠. 하루치 밥벌이하는 오늘도 그럴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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