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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Feb 08. 2024

80년 역사 간직한 묵밥맛집, 대전 <강태분할머니묵집>


새로 개업한 식당이 5년 후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20%라는 통계가 있다. 매년 평균 20% 안팎의 식당들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이를 토대로 10년 후 살아남을 확률을 계산하면 6.5%, 20년 후와 30년 후 확률을 계산해보면 각각 0.7%, 0.07%라는 소수점 이하 결과가 나온다. 10년 후엔 100집 가운데 6집, 20년 후와 30년 후엔 소수점 이하인 100~1000집 가운데 1곳 이하만 겨우겨우 살아남을 거라는 얘기다.


대전시 유성구 구즉 묵마을 지구에 위치한 강태분할머니묵집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채 무려 80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유서깊은 맛집이다. 생존확률로 계산해보면 자그마치 0.000001%, 그러니까 천만분지 일쯤 되는 극소수점을 뚫고 나온 아주 매우 많이 주목받을 만한 맛집이라는 얘기 되시겠다(계산이 틀렸다느니 하는 태클은 걸지 말자. 나 문과 출신이다).



강태분할머니묵집이 처음 장사를 시작한 건 해방 직후인 1946년이라고 한다. 대전 지역에서 어렵게 살던 강 할머니가 호구지책으로 산도토리를 주워다가 묵을 쒀서 팔기 시작한 게 그 시초였는데, 손맛이 좋았던 덕분에 그 당시 살던 집 마루며 방 같은 데다가 대충 밥상을 놓고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 발길이 제법 줄을 이었단다.


그러던 중 대박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1993년 대전에선 온 나라를 떠들석하게 만든 국제엑스포대회가 개최됐는데, 이 행사 취재를 위해 몰려든 전국 각지의 취재진 중 제법 영향력 있는 중앙일간지 기자 하나가 우연히 강 할머니 묵집에 들렀다가 그 별스런 맛에 반해 기사화하기에 이르렀던 거다.


덕분에 강태분할머니묵집은 전국적으로 큰 유명세를 떨치면서 수많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단다. 강 할머니 혼자 힘으로는 감당이 힘들 정도로 어마무지하게 몰려들었는데, 그러자 인근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낙수효과를 노린 고만고만한 묵집들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묵마을'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대전이 묵밥으로 유명해지다 못해 '묵마을'이라는 새로운 명소까지 잉태하게 된 배경이다.




 할머니의 묵밥은 도토리를 주재료로 한 까닭에 쌉싸름하면서 찰진 식감이 일품이다. 면발처럼 길죽하게 뽑아내다 보니 국수처럼 후루룩후루룩 먹기 편한데, 직접 담가서 숙성시킨 조선간장 하나만 물에 넣어 육수를 우려내기 때문에 그냥 먹으면 맛이 좀 심심한 감이 있다. 그러므로 묵밥과 함께 제공되는 충청도식 삭힌 고추 <지고추>와 쫑쫑 썬 김치를 함께 넣어 휘휘 저어먹으면 간도 적당해지고 식감이나 풍미도 한층 풍부해지니 꼭 곁들여 먹는 게 좋다.


묵밥 사촌쯤 되는 묵무침과 도토리전도 함께 먹으면 정말 좋다. 우리 식구들의 경우 이날 어딜 좀 다녀오느라 아침도 안 먹은 채 식당 문 열기 무섭게 쳐들어가다 보니 더 꿀맛이었는데, 맛집 소개를 위한 사진 한 장 찍느라 영점 몇 초쯤 시간을 끌었다가 자칫 굶주린 하이에나 눈빛을 한 딸들에게 카메라 든 손을 뜯어먹힐 뻔 했던 건 안 비밀이다. 그만큼 일단 비주얼부터 먹고 싶은 욕망을 마구마구 불러일으키는 음식이었다는 얘기 되시겠다.


백프로 보리를 사용한 맛난 보리밥


보릿고개라는 게 있었을 정도로 먹고 사는 게 한 마디로 전쟁과도 같았던 시절, 쌀 한 말이면 보리밥 두 세 말과 바꿔먹을 수 있다 보니 필연적으로 보리밥과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라때' 추억을 떠올리며 묵밥과 함께 시켜먹은 보리밥도 아주 맛있었다. 푸성귀 조각과 콩나물 몇 가닥을 곁들여 고추장에 비볐을 뿐임에도 보리쌀 특유의 거칠면서도 탄탄한 식감이 입 안을 가득 채우면서 추억 돋는 그리운 맛을 선사해줬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강태분할머니묵집이 80여년 가까운 오랜 역사를 간직한 원조 묵밥맛집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실외 간판 쪽엔 '강태분'이라는 브랜드를 생략한채 '50년 할머니묵집'이라고 표기를 해놓았고, 실내에도 '60년 전통'이니 '70년 전통'이니 중구난방 소개문구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한 눈에 정체성을 알아볼 수 있도록 '강태분할머니묵집 since 1946' 정도로 원조 묵밥집임을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강태분할머니묵집 영업시간은 인터넷 사이트마다 다 제각각으로 달리 나온다. 어떤 곳은 영업 시작시간이 오전 8시30분이라고 하는가 하면 다른 곳은 오전 10시라 하는 곳도 있고 백인백색 다 제 각각이다. 오전 8시30분으로 알고는 10시쯤 아주 여유롭게 방문한 우리 가족은 덕분에 적잖은 기다림을 감수해야 했는데, 나중에 사장님께 물어보니 정확히 11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단다. 토요일 11시 기준 전혀 붐비지 않았으니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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