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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Feb 22. 2024

숨은 무림고수같은 어탕국수 맛집, 무주 <영애국수>



여행을 다니다 보면 허기나 달랠 생각으로 찾아 들어간 식당에서 예기치 못하게 맛집을 마주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관통하는 라제통문 가던 길에 우연히 찾아든 영애어탕국수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였다.


원래는 무주군 설천면 설천시장 내 평균연령 80대 할머니들 몇 분이 5일장 장날에만 문을 여는 <잘 나가는 언니들>이라는 식당에서 청포묵을 곁들인 맛난 전들로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설날 며칠 후였던 이날은 안타깝게도 언니들께서 명절 때 너무너무 힘든 일이 많으셨었는지 식당 문을 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음 여정인 라제통문을 향해 발길을 돌렸는데, 목적지를 얼마 앞둔 지점에서 문득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게 하나 있었다. 멋드러지게 잘 지어진 한옥을 배경으로 한쪽엔 장작더미를 잔뜩 쌓아놓은 <영애어탕국수>가 바로 그곳이었다. 차 타고 지나다가 언뜻 봤을 뿐이긴 하지만 왠지 맛집일 거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원래 가려고 했던 <잘 나가는 언니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허기가 진 까닭도 분명 있었을 거다. 독일 철학자 칸트 싸대기를 날릴 만큼 아주 매우 많이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내 배꼽시계가 그때쯤은 마구마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단 얘기인데, 그런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는 "저 집 어때요?" 하는 내 물음에 선뜻 "괜찮아 보이네요. 한번 가 봅시닷!" 하고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게 찾아들어간 영애어탕국수는 편안한 첫인상으로 우리를 반겨줬다. 널찍한 마당을 가로지르면 나오는 한옥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대형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이 눈부신 환영인사를 보내왔고, 또 하나의 문을 지나자 나타난 테이블 4개 남짓 아담하고 정갈한 실내 분위기는 식당이라기보다는 아는 사람 집처럼 편하고 아늑했다.


우리보다 앞서 자리를 잡은 선객들과 식당 사장님 간에 오가는 대화들도 듣기 좋았다. 알고 보니 예의 선객들은 인근 무주태권도원에 일이 있어 장기간 머물고 있는 태권도 사범들이라고 했다. 차가 없어 지난 며칠 간 바깥 나들이를 못하는 바람에 컵라면 같은 걸로 근근히 연명을 하던 중 선배가 차를 끌고 방문했길래 갇혀있던 내내 혀끝에 맴돌던 그리운 어탕국수를 먹으러 바로 달려온 길이라고 했다.


이 얘기를 들은 식당 사장님은 "전화줬으면 내가 태우러 가도 됐는데..." 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 했고, 집 떠나 고생 중인 그들을 위해 반찬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 마음을 써주셨다. 그 모습이 마치 모처럼 고향집을 찾아온 자식이나 조카를 맞는 어머니 혹은 이모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는 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후 나온 이 집 시그니처메뉴 어탕국수는 다시 한번 우리 부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처음 가보는 집인데다가 인터넷 검색 결과 이렇다 할 리뷰도 별로 없는 곳이라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입천정이 델 만큼 뜨겁게 끓는 국수를 후후 불어가며 한 젓가락 떠 입에 넣는 순간 기분이가 아주 매우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제법 소문난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어탕과 어탕수제비, 어탕국수까지 두루 먹어봤지만, 그 어떤 집과 비교해도 가히 일미라 해도 좋을 <대존맛>이었다.



너무 뜨거워서 빨리 못 먹는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국수에 잘 배어든 어탕 특유의 깊은 국물맛 덕분에 일반 국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남다른 풍미가 느껴졌고, 어탕 류 음식을 먹다 보면 간헐적으로 느껴지곤 하는 덜 걸러진 생선뼈가 주는 이물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기분좋은 식감을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어탕국수에 곁들여 나온 봄동 겉절이 등 밑반찬 맛도 거의 예술이었다. 언뜻 보기엔 금방이라도 제발로 걸어 밭으로 돌아갈 거 같은 완전 생짜 봄동에다가 고춧가루 약간 뿌려놓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그 아삭아삭하면서도 매콤한 감칠맛이 입안을 행복하게 채워줬다. 요즘 채소값이 너무 사악해졌다는 걸 잘 알기에 어지간하면 리필 부탁은 잘 하지 않는 편임에도 어쩔 수없이, 정말 죄송한 심정을 무릅쓰고 리필을 부탁드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맛이었다고나 할까.




맛집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똑같은 재료를 써도 남다른 손맛을 내는 집들이 간혹 있는데, 아마 영애어탕국수 사장님도 그런 손맛을 가진 금손이 아니셨나 싶다. 덕분에 정말 맛나게 어탕국수 한 그릇을 밥까지 말아 국물 한방울 안 남긴채 말끔히 해치울 수 있었다. <잘 나가는 언니들> 찾아갔다가 허탕친 설천시장에서 너무 배가 고파 호떡 두 개를 사먹는 바람에 사실 배가 좀 차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잘 하지도 않던 '완뚝'씩이나 했다는 건 안 비밀이다.



덕분에 기분이가 아주 매우 많이 좋아져서 '맛있는 집들은 반드시 오래오래 장수해야 한다'는 바람을 담아 평소 주로 애용하는 스미트폰 시대 문명의 이기 '○○페이' 대신에, 언젠가부터 지갑 속에서 좀처럼 나올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던 현금님을 등판시켜 나만의 현금 결제 작은 이벤트를 열었다는 것 역시 절대, 네버 안 비밀이다.


영애어탕국수는 문 연지 이제 겨우 3년 남짓 밖엔 안 됐지만, 숨은 무림고수를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어탕국수 맛집이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에서 라제통문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걸어서 방문하기엔 마을로부터 제법 멀리 떨어져 있음을 감안하면 그동안 제법 두터운 단골층을 확보하고 있는듯 보인다. 앞서 언급한 태권도 사범들의 경우만 봐도 다음에 무주태권도원에 다시 올 때 꼭 다시 오겠노라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고 간 것만 봐도 그렇고, 나 역시 그 근처를 지날 일이 있다면 반드시 다시 찾고 싶은 맛집이라 생각하며 돌아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포스팅을 읽는 분들 중 만일 전북 무주 쪽 여행 갈 일이 있고 어탕이나 국수 류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 맛을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무주 지역에 어탕으로 유명한 집들이 제법 여러 곳 있긴 하지만, 열에 여덟아홉 정도는 아주 매우 많이 만족하실 만한 맛이라고 생각한다. 이상 내돈내먹 영애어탕국수 리얼솔직 이용후기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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