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19. 2024

길치 아내 덕에 새로 뚫은 여행지, 선운사 도솔제




'길치'도 나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 알게 됐다. 아내 덕분이다. 뭔 도그 껌씹는 소리냐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길치인 아내 덕분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도솔제 등산로>라는 아주 멋진 산책로를 하나 새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매년 이 맘 때면 동백꽃이 만발해 인기를 끄는 전북 고창 소재 천년고찰 선운사 여행으로부터 시작됐다. 5~600년 생 동백나무 3천여 그루가 약 5천여 평에 걸쳐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생태학적 가치가 높아 일찌감치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여행명소.


그 울창한 동백나무숲을 배경으로 동백꽃들이 일제히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이 아주 매우 많이 장관인 지라 아내와 나는 매년 이 맘 때마다 선운사를 찾고 있는데, 올해 역시 어김없이 며칠 전 주말을 이용해 이곳을 방문했다.


문제는 이날 날씨가 산책하기에 너~어무 좋았다는 거다. 사진에 꽂혀있는 나와는 달리 산책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인 아내는 그래서 자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돌탑 위에 놓여있는 동백꽃 한 송이 등 뭔가 마음에 드는 게 있어 사진 몇 장 찍다 보면 아내는 어딘가로 사라지는 상황이 계속 반복됐던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전에 아내와 "동백꽃 보고 나면 도솔암에 한 번 가봅시다" 하고 미리 약속을 해놓았다는 거였다. 그걸 믿고 아내는 내가 사진 찍기에 빠져 중간중간 딴짓을 하거나 말거나 아랑곳없이 제 갈길을 휭하니 가버렸는데, 여기서 그만 예기치 못한 문제가 하나 생겨버리고 말았다.


아내가 길치라는 사실을 우리 둘 다 간과하고 말았다는 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가는 길은 보행자 전용 산길로 가느냐 그 바로 옆에 있는 차도로 가느냐의 선택만 있을뿐 거의 외길이나 마찬가지여서 더 방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슬슬 뒤따라가다 보면 중간 어디쯤에선 만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껏 여유를 누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한 가지 변수가 생겼다는 사실을 아내도, 나도 미처 알지 못했다. 도솔암 가는 길목 중간에 전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도솔폭포 가는 갈림길 하나가 생겨 있었던 거다.


멀찌감치에서나마 다행히 아내가 이 새로 생긴 엉뚱한 길로 향하는 걸 목격한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뒤따라갔다. 그리고 아내를 붙잡아 "이 길은 도솔암 가는 길 아닙니다. 돌아서 아까 지나온 길로 가야 합니다" 하고 알려줬다. 그러자 아내는 "이쪽으로 가다 보면 도솔암 가는 다른 길이 나오지 않을까요?" 하며 가던 길로 계속 가보자고 고집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반, 도솔암과 만나기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다른 곳엘 가면 어떠랴 하는 생각 반으로 결국 나는 아내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 발견하게 된 게 바로 도솔제 등산로였다.








비학산 북쪽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도솔제는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호수였다. 인공폭포인 도솔폭포를 지나자 마자 나오는 높다란 제방을 오르면 마주하게 되는 이 호수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고, 산벚꽃과 각종 들꽃들이 곳곳에 피어있어 봄기운을 만끽하며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특히 중간중간 이어지는 숲길은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 한낮 더위에도 산책을 즐기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호수가를 배경으로 중간중간 벤치들도 놓여 있어 걷다가 지치면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


가장 좋았던 건 아직 별로 알려지지 않은 덕분인 듯 중간에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만큼 아주 매우 많이 호젓하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는 거다. 마치 아무에게도 개방되지 않은 비밀의 정원을 나 홀로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라고나 할까.







길치인 아내 덕분에 우연찮게 발견하긴 했지만, 다음번 선운사 여행 땐 아마도 부러 이곳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던 선운사 도솔제 산책길. '음치'라는 게 달리 해석하면 '음을 자유롭게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길치'라는 건 어쩌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만들어 준 참 인상적인 여행 경험이었다.


#선운사도솔제 #선운사동백꽃 #고창선운사 #동백꽃필무렵 #도솔제등산로 #고창가볼만한곳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후지XT


이전 13화 겹벚꽃 명소 전주 완산칠봉 꽃동산, 봄꽃들 만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