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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11. 2024

'참 잘 늙은 절 한 채' 별명붙은 전북 완주 화암사





불명산 중턱에 자리잡은 전북 완주 화암사에는 언젠가부터 '참 잘 늙은 절 한 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곤 한다. '연탄 한 장'이라는 시로 대중적으로 아주 매우 널리 알려진 안도현 시인 덕분이다. 보다 정확히는 그의 시집 <그리운 여우(1997년 刊)>에 수록된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시 한 편 덕분이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참 잘 늙은 절 한 채


-안도현 作 <화암사, 내 사랑> 중​​


​완주 화암사를 가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귀절을 보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맞앗!" 하며 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적확한 표현이어서다. 특히 나처럼 평소 산과는 별로 안 친하게 지내는 등린이, 산린이라면 더더욱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쯤 얘기하면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지만, 완주 화암사는 깊다면 제법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작은 절집이다. 일주문 바로 앞까지 아스팔트 도로가 곱게 깔려있어 접근성이 좋은 수많은 절집들과는 달리 산 넘고 물 넘고 땀 뻘뻘 흘리며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속세와 동떨어져 수도에만 정진하려는 듯 부러 적당한 거리를 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덕분에 걸핏하면 새로 전각을 짓는답시고 뻑적지근한 공사를 벌여 몸집만 잔뜩 키워나가는 다른 절집들과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깊이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 특징이다.​​


이렇듯 속세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덕분에 평소 방문객 발길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건축학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완주 화암사는 꼭 한 번은 찾아가 봐야 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자그마치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 때문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절집 중심을 떡 받치고 서있는 이 전각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하앙식' 구조 건축물. 국어사전을 뒤져봐도 찾기 힘든 '하앙'이라는 단어가 낯설어 한자로 검색해보니 아래 하(下), 오를 앙(昻)자를 사용해 '아래로 오른다'는 알쏭달쏭 선문답 같은 해석이 나오는데, 글자 하나하나의 뜻은 알겠지만 나 같은 우매한 중생 입장에선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뿐이다.​​


결국 이런저런 관련 자료들을 검색한 끝에 '용머리 모양 하앙을 지붕과 기둥 사이에 집어넣어 지붕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지렛대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라는 설명을 찾아냈는데, 쉽게 얘기하면 극락전이 세워진 그 시대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신공법으로 독특한 구조의 전각을 지었다는 얘기쯤 되시겠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면 주입식 교육 따위나 일삼았던 우리 시대 선생놈들 말씀을 떠올리며 "숙어처럼 그냥 외웟!" 하면 된다.​​





​어이됐든 문과 출신이라 건축학 같은 거엔 일자무식인 나 같은 사람이야 그게 어떤 정도의 무게와 의미를 갖는지 잘 모르겠으나, 건축학을 하는 사람들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신공법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버금가는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 아닌가 싶다. 혹은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원리를 알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사고의 전환까지가 결코 쉽지 않은 대발견이 깃들어 있다고나 할까.​​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정문 역할겸 완주 화암사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는 우화루(雨花樓) 역시 대한민국 보물 제662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역사적 가치는 물론 멋진 외관을 자랑하는 건축물이다. 원래 있던 건축물을 대신해 지금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인 1611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가 꽃처럼 내리는지 혹은 꽃이 비처럼 내리는지는 몰라도 그 이름부터 아주 매우 많이 '갬성'을 자극한다.​​


이밖에도 완주 화암사에는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625호로 지정돼 있는 괘불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등록돼 있는 동종 등 눈여겨 볼만한 볼거리들이 작은 절집 안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전각 숫자만 무려 수십 채에 달하는 다른 큰 절집들에 비하면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속이 알찬 곳이라고나 할까.​​


​정확한 창건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참고로 완주 화암사는 통일신라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머물려 수행했다는 기록이 전해오는 천년고찰이다. 세종 7년인 1425년 세워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돼 있는 화암사 중창비에 적혀있는 기록인데, 등산한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한 번 찾아가보면 '참 잘 늙은 절 한 채'가 간직하고 있는 그 소박한 아름다움에 반드시 반하고야 말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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