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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27. 2024

가족이름 걸고 장사하는 맛집, 순창 창림동두부마을

국산콩만 엄선해 매일 아침 가마솥에 장작불로 직접 손두부 만들어




두부를 워낙 좋아해서 '두부돌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나이지만, 사실 내겐 두부 못잖게 혹은 그 이상으로 애정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두부를 만들고 나면 남는 찌꺼기 비스무레한 존재 '비지'를 활용해 끓여내는 비지찌개가 바로 그것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도 있듯이 어린 시절부터 비지찌개를 아주 매우 많이 먹고 자란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 무렵 내가 사는 동네에는 소규모 두부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선 만들다가 귀퉁이가 깨진 두부와 비지를 거의 원가보다도 싸게 동네 주민들에게 팔았었다.


그래서 두부 나올 시간이 되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큰 바가지나 통 같은 걸 하나씩 챙겨들고 두부공장 앞에 줄을 서곤 했더랬다. 콩을 주원료로 하다 보니 단백질 덩어리라서 두부나 비지란 녀석은 맛도 맛이지만 건강에도 좋은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네 명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우리집 역시 틈만 나면 그 행렬에 동참하곤 했는데, 한 푼이라도 더 아끼겠다는 생각이셨던듯 우리 어머니는 두부보다는 비지 쪽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곤 했다. 두부를 만들고 나면 나오는 찌꺼기 같은 존재라 아무래도 그 편이 가격이 훨씬 착해서 그랬을 거다.


덕분에 우리집에선 시도 때도 없이 비지찌개 파티가 벌어지곤 했다. 싼 값에 푸짐하게 재료를 구해올 수 있다 보니 거의 솥으로 한솥을 끓여내곤 했는데, 묵은김치 등을 함께 넣어 매콤하고 쌉싸름하게 끓여낸 비지찌개는 맛 있어서 한 번, 배 불러서 한 번 어린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곤 했더랬다. 다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끓이다 보니 몇날 며칠동안 죽어라 비지찌개만 먹어야 했던 건 안 비밀이다.


아쉽게도 그로부터 얼마 후 우리집이 이사를 하는 바람에 비지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지다 보니 오랫동안 이 음식을 거의 잊고 살아왔다. 몇 년 전 손두부 만들어 파는 집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사장님 내외가 "비지 좋아하면 좀 가져가세요" 하며 한 웅큼 챙겨주신 덕분에 집에서 한두 차례 끓여먹은 게 거의 전부였을 정도.





전북 순창으로 여행갔던 길에 지역맛집 검색을 통해 우연히 창림동두부마을이란 음식점을 알게 돼 찾아갔다가 비지를 주재료로 한 메뉴가 있는 걸 보는 순간 그래서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비록 내가 즐겨먹던 비지찌개와는 좀 다른 '콩비지비빔밥'이라는 낯선 메뉴만 있어 아쉽긴 했지만, 오랜만에 비지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마저 좋아졌더랬다.


자연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음식 나오기만 목이 빠져라 기다린 끝에 마침내 음식을 마주했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게 있었다. 비빔밥이다 보니 이것저것 들어갈 거라 예상 못한 건 아니었으되, 이 콩비지비빔밥에도 전북 3대 먹거리로 불리는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 한정식 등과 마찬가지로 콩나물이 아주 매우 많이 한몫 단단히 차지하고 있더라는 거다.


자작한 국물을 곁들인 콩비지와 밥이 담긴 뚝배기 위에 별도 접시에 담아 내어주는 삶은 콩나물과 무생채, 순창의 대명사 고추장을 버무려 비벼먹는 방식인데, 비지 특유의 쌉싸름하면서 고소한 맛에다가 콩나물과 무생채가 주는 아삭한 식감,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순창표 고추장이 주는 남다른 풍미가 어우러져 다른 곳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존맛'이 입 안에서 대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이 창림동두부마을이란 음식점은 1950년대에 1대 창업주인 외할머니 최보남 어르신이 손두부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데서부터 출발해 그 딸인 어머니와 손자에게로 3대에 걸쳐 70여 년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유서깊은 맛집이었다. 처음 입구를 들어갈 때 인상은 언뜻 잘 나가는 카페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아기자기 세련된 모습이어서 문 연지 얼마 안 된 퓨전 음식점인가 하고 오해 아닌 오해를 했던 데 비춰보면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이 집에서 사용되고 있는 식기들만 해도 여간내기들이 아니었다. 그 중 비교적 세월의 무게가 덜 내려앉은 녀석이 최하 몇십 년, 가장 오래된 건 100년 이상 된 녀석들도 있어 한 상에 세팅된 그릇들 나이를 합치고 합치다 보면 거의 1천년 세월이 밥상 위에 수북히 얹혀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버뜨(but), 이것저것 얘깃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넘쳐나긴 하지만 이곳 창림동두부마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3대 70여년 세월동안 변함없이 매일 아침마다 손두부를 직접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국산콩만 엄선해 옛날 방식 그대로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워 무쇠가마솥으로 한땀한땀 정성스레 손두부를 끓여내고 있는데, 하루 맥시멈 15모 밖엔 못 만들다 보니 손님이 좀 많은 날은 재료 소진으로 일찌감치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도 왕왕 발생한단다.


이밖에도 개인적으로 내가 창림동두부마을과 관련해 아주 매우 많이 인상깊게 봤던 게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음식점 출입구 맞은 편 벽에 새겨넣은 가계도였다. 1919년생인 외할아버지 김진태 씨와 1931년 생인 외할머니 최보남 씨가 창업을 했고, 그 딸인 김평순 씨와 외손자인 김상욱 대표가 2~3대째 가업을 잇고 있음을 알기 쉽게 보여주는 이 가계도는 '우리는 가족 이름을 걸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음식을 만들어 판닷!' 하는 외침처럼 들려 내게 큰 신뢰감을 안겨줬다.


이 장면은 미처 찍지 못해 창림동두부마을 블로그에서 퍼왔다.





음식과는 별 관계가 없지만, 창림동두부마을이 있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눈길을 사로잡는 이 음식점 마스코트 같은 존재 빨간색 포니 승용차도 아주 매우 많이 인상 깊었다. 이 음식점을 다녀간 사람들 SNS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상징적인 존재인데. 놀라운 건 1970년대 중반쯤 나온 걸로 추정돼 사람으로 따지면 환갑 진갑에 팔순 구순은 지났음직한 이 차 보존상태가 너~~~~~~무 좋아서 장보러 갈 때라든가 순창읍내를 오갈 땐 직접 끌고 다닐 만큼 현역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것.


맛과 역사와 신뢰감은 기본빵이요, 수많은 얘깃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순창 창림동두부마을은 매일 오전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을 한다. 내 경우 토요일 오후 2시쯤 방문을 했었는데 주말이라 그런가 재료가 거의 소진돼 가고 있는 상황이라 내 뒤로 온 여행객 1팀은 턱걸이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온 1팀은 처음엔 재료 소진이라며 거절했다가 사장님이 너무 미안했던지 남은 재료를 딸딸 긁어모아 간신히 밥 한 상을 차려주는 상황이 연출됐다. 평일은 몰라도 주말엔 오후 6시까지라는 영업시간은 그냥 참조만 하고 가능한 서둘러 방문하는 게 좋다는 얘기 되시겠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이며, 골목길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음식점 특성상 별도의 전용주차장은 없다. 하지만 바로 앞 도로변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노상 주차장이 완비돼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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