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처음이라..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page 1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인연'이었다는 말밖에
맞는 단어를 찾을 수 없고
인생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나의 아이들을
만나야 했던 그때로 밖에
다시 돌아갈 곳이 없으니
나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우리 두 아이들을 만나는
그 인연이
나의 운명이고
숙명이었고
그 숙명을
지키며 사느라 겪게 되는
많은 시련과 상처보다
더 크고 감사한
사랑을 배우게 해 준
나의 아들과 딸에게
인간대 인간으로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존엄한 경이로움...
투명한 나의 아이들에게서
배운 감동의 시간들이었고
그들은..
신께서 나눠주신
복중에 복이라
시련의 무게를 견디는 것에도
반드시 그만큼의 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나의 시련이었다는 게
이제는 참 감사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실
나는 알지 못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받아들인 후
그가 나의 일부라고
생각했기에
모든 걸 주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랑은 수많은
현실의 책임과
헌신을 요구했기에
나를 지키는 여분의 공간이
없었던 사이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는
나를 사랑했고
애틋했지만
동시에 무능했고
파괴적이었다.
나는
그가 처음이라
애틋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딱딱해졌고
감당하기
버거웠다.
결국
우리는
청춘에 만나
뜨거웠지만
함께 하지 못한
시절인연으로
남았다.
그래서
사랑에는
잘못이 없다.
열심히 살았다.
그 사랑이
인연으로 묶였던
그때에는
그가 전부인 듯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도
나도
우리는
인연만큼
충분히 사랑을 했다.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꿈같았던
20대의
추억으로
이젠 아픈 기억이 아닌
소중한 순간으로
그 이름을 바꿔본다.
그때의 내가 있어서
오늘의 내가 있고
그를 만났기에
나의 아이들이 있고
그런 충실한 사랑을
해보았기에
더 이상 사랑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
아픈 과거가 아니며
그것은
나의 아름다운
청춘의 한 때였다.
운명은
오만한 인간을 꺾어
겸허함을 가르친다고
한다.
일찍이
나의 삶의 소명으로
두 아이들을 만나서
지금을 살고 보니
그 운명을 만나
이만큼이나마
겸허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내가
되었지 싶어
그 모든 과정이
이제는 정말이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