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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소리 Oct 23. 2023

연애를 하지 않았던 이유

사랑을 기다리면서도 사랑을 믿지 않는 모순.. page 2

나는 무너졌다.


옛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던

어른들 말이 하필이면

나의 불행을 마주하는

순간에 떠올랐다.

살만하면 아프다... 는 그 말은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아니....

나를 위해 준비해 둔 말이었을까?

내가 생각했던 삶의 고지를

눈앞에 두고 나는...

또 한번 무너졌다.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와르르 소멸되듯

지독하게 꾸역꾸역

쌓아온 나의 성은

쌓아온 기간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며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내 나이 44살의 가을이었다.


20대 중반에 두 아이를

홀로 키우게 된 

싱글맘이었던 나는

길바닥 속옷 장사며

길바닥(노점)

아동복 장사를 거쳐

어렵게 작은 옷가게를 차렸다.

어린 두 아이들을 남겨두고

동대문 도매시장을 밤을 새워

돌면서 판매할 물건을

사입하는 일정을

한 달이면

2번~3번을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자는 아이들 걱정과

버거운 무게의 옷 가방이 주는

힘겨움이 뒤 썩여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른 아침에 돌아와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고 

쪽잠을 2시간가량

자고 일어나 가게로 나가

새로 해 온 물건을 받아

정리하는 일로

대체로 물건을 하는 2일간은

잠을 거의 못 자는 

패턴이 이어졌다.


나의 삶 어디에도

생존 말고는

다른 감정을 일으킬

시간도 없었고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

다른 누군가를 넣고 싶지도 않았다.


찬란히 젊었고

이쁘단 소리를 제법

많이 들었던 때라

혼자 나서면 아가씨로 보이는지

남자들의 대시도 많았지만

나의 마음은 단 한차례도

그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_The 소리필사


겨를이 없고 시간이 없고의 문제보다

남자의 사랑을 믿지 않는

나의 마음의 빗장이

어떤 누구에게도 열리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돈을 많이 가진 남자의

구애는 달콤했다.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는

신분 상승의

기회였을 수도 있었고

사랑이 없다 해도

내가 너무 좋다는데

눈 한번 감을 수도 있는

솔깃한 제안들을

너무도 냉정하고

메몰차게 거절한 이유는...


내 삶을 더 이상

돈에도 남자에게도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는

내면의 소리 때문이었다.


20대 초반 순정을 바친

한 남자는

나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그런 그를 보필하며

얻은 생활의

헤어진 후 고스란히

나에게 남아

30대를 지나 나이 40에

이르기까지

나를 옥죄였었다.


아이 둘과 사회적 커리어가 전무한

싱글맘이 헤쳐온 그 길은

절절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뚫고

가야 하는 길이었고

책임감과 사랑이 엉겨

두 자식을 끓어 안은 채

한차례 서러움도

토해내지 못하고 걷는

고독한 길이었다.


두 아이에

단 한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맹세는 어떤 허튼 감정도

용납하지 않았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지켜줄 단 한 사람.

잡은 손 절대로 놓지 않는

당연한 단 한 사람.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여야 했고

그런 엄마가 되고자

삶의 방향을 잡고 살아왔다.


이미지_The 소리



그러니 지독히도

열심히 살아야 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늘 고군분투하며

삶이 나아질 모든 공부를

독학으로 이어가며

미래에 포커스를 둔

삶을 살다 보니

여자로서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성공.. 성공... 경제적 자유..

아이들..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잘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부양과 훈육에 공을 들이며

매일을 살아갔다.


기승전...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쌓여 있던 서러운 마음을

털어내고 세상에 소리치고 싶었다.

'이거 봐... 나 해 냈잖아.'

'이거 봐... 내가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였어!'

'이거 봐... 내가 지켰잖아..

   그 약속을..'


아이들에게 강인한 엄마로

부모의 두몫을 해주고 싶었고

나를 세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남들처럼 가진 게 많치 않아도

이런 엄마의 아들 딸이어서

아이들 가슴에 당당한 프라이드가

되어줄 수 있도록

나는 매일을 깨어있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지켰다.

어쭙잖은 남녀의 관계로부터

소위 얘기하는 연애로부터...


연애라는 표현에 정색을 할 만큼

나는 그 단어가 싫었다.

나에게 연애는

책임을 갖지 않는

남녀의 좋은 감정나누기로

단정 지어 생각했기에

이미 책임감이 충만한

환경을 가진 나로서는

그런 감정놀음에 허비되는 것은

낭비라는 가치관을 가지 되었다.


연애는 애들이나 하는 거지...

나는 사랑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사랑은 책임이 우선이고

그러한 책임을 기꺼이

같이 하겠다는 다짐이고

그 사랑 안에는 기쁨과 슬픔과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뒤 썩이며

점점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라는

동화 같은 매뉴얼을 정해 놨으니

어느 누가 나의 사랑이

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작정하고

연애의 달큼한

감정들을 외면했고

사랑을 기다리면서도

사랑을 믿지 않는

모순덩어리였던 것 같다.


그렇게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리던 나는

드디어 가슴 뛰는

인생일과 직업을 만나고

소위 말하는 성공가도로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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