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은 Aug 21. 2023

우리 집에서 무엇이 돈이 되나?

월세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전세금리 죽여버려...

 다음 달 월세 낼 돈이 없다. 내가 한 달에 내야 하는 돈은 140만 원.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은 프리랜서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 집에 사냐 묻는다면, 그땐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일이 계속 들어왔고, 30대 여자라면 이 정도 집엔 살아야 가오가 선다 생각했다. 이 돈을 내기 위해 나는 더 열심히 일하겠지? 성공은 그렇게 오는 거라 배웠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주로 하는 영상 편집 일은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럼 내 작업을 할 시간이 또 사라지겠지. 최대한 에너지를 많이 안 뺏기면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건너편 방이 보였다.


 “그래! 방! 저 방을 누구에게 빌려주자!”


 작년 가을, 용산구의 신축 빌라에 입주한 나는 한 방은 침실로, 한 방은 작업실로 썼다. 내가 바닥에서 자면 되니, 침대 방을 빌려줘야겠다. 그렇게 나는 룸메이트 공고를 올렸고, 며칠 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이미 구하셨나요? 가격을 알고 싶은데…”

 “아! 안녕하세요. 하루에 2만 원 정도 해서… 60만 원 생각했어요. 제가 요즘 시세를 잘 몰라서… 근데 이 정도 가격이면 원룸에서도 살 수 있죠?”


 일부러 가격을 올려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좀 무서웠다. 평소 해외에 가느라 집을 길게 비울 때면 가끔 지인에게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룸메이트를 구해보긴 처음이었다.


  “집에서 거의 잠만 잘 것 같아서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네요… 저는 40을 생각하고 있어서… 차이가 너무 크죠?”

 “그럼 50 정도면 될까요? 다른 곳도 한번 보시고 연락 주셔요. (이 가격에 이런 쾌적한 집에 살 수 있을 줄 아는가 어린 친구여)”

 “네! 혹시 나중에라도 45에 가능하시면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격을 너무 후려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ㅠ 하지만 제가 정말 잠만 잘 것 같아서요…”

 “네! 저도 생각 좀 더 해보겠습니다!”


 2달만 살 사람이었다. 3달 뒤엔 나 역시 해외에 나가야 하는 일이 있어, 그땐 집 전체를 빌려줄 계획이었다. 그 사이 잠깐이라도 돈을 벌어보자 올린 공고였는데, 마침 그 기간에 맞는 누군가에게서 처음 연락이 온 거다. 반가웠지만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필 사진도 없고, SNS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무리 같은 여자라도 그렇지. 혹시 옆 방에서 자다가 나를 죽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고작 45만 원 벌려다 죽임 당하는 34세 여성으로 9시 뉴스에 올라가면 어쩌지. 시바 그럴 순 없어… 안 빌려주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 순간, 영상 일 하는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오랜만. 혹시 영상 안에 들어가는 내레이션 글 작업이나 구성 짜는 작업도 해?”

 “쌉 가능이지.”


 공공기관 홍보영상이었다. 몇 분짜리인지, 몇 개를 해야 하며 수정은 몇 번까지인지 명시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다음 달 월세는 내겠는데? 미팅을 했다. 개인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혼자 기획, 촬영, 편집 다 하는 규모의 작은 영상만 만들다가, 큰 프로젝트의 톱니바퀴로 들어가니 새삼 편했다. 이제는 딱 내 일만 하고 넘기는 거야. 책임감에 심장 아프지 않아도 돼. 그리고 이 일은, 워드 프로세서랑 뇌만 있으면 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미팅이 끝났다. 오랜만에 일을 하니 기분도 좋았다. 이 정도 에너지를 쓰는 일을 조금씩 하며 글을 써야겠군. 그런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누나 정말 미안한데… 프로젝트가 가을로 미뤄졌대. 정말 미안. 지금까지 일한 비용은 꼭 쳐줄게.”


 아쉽지만 뭐, 늘 있는 일이니 프리랜서에겐… 그도 고용된 처지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다음번엔 꼭 계약서를 쓰자고 해야지. 10만 원이 입금되었다. 나는 바로 오픈카톡방 룸메이트 지원자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만약 잠만 자시는 거면… 45만 원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어떤 일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도 모르는 분과 같이 사는 건 처음이어서요…”


그녀는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대학생이었다. 다른 집도 알아보는 중이라 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우리 집을 꼭 합격자 배출시키는 집으로 만들겠다.'며 '취업준비 파이팅!!!!!'을 외치며 룸메이트로서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우리 집에 살고 싶다고 했다. 당신도 집을 봐야 하니 일단 와보라고 했다.


 띵동. 그녀가 1층 출입 벨을 눌렀다. 비밀번호를 가르쳐줄까 하다 내가 열어주기로 했다. 문을 열어뒀다. 엘리베이터 도착 소리가 나오고, 얼굴이 마주쳤다.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간단히 집을 소개했다.


 “어떠세요?”

 “좋네요~”

 “그럼… 같이… 사는 걸로?”

 “네! 제가 알아야 할 주의사항 있으면 알려주세요.”


 나는 집에 오면 발부터 씻을 것을 당부하며 쓰레기 버리는 법과 보일러 켜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녀는 나에게 잠귀 밝냐고 물었다. 왜... 밤에 무슨 짓 하려고…? 약간 긴장한 나는 어디서든 잘 잔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약간의 침묵. 나는 잠시 생각하다 한 번은 짚고 넘어야 할 것 같아서 용기 내 말했다.


 “저… 부탁할 게 있습니다.”

 “뭔데요?”

 “저는 그쪽이 애인을 데려와도 상관없고,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써도 상관없는데요… 솔직히 좀 무서워요. 혹시 저를 죽일까 봐요… 요즘 뉴스 보면 여자들도 죽이더라고요. 그 아시죠? 어플로 만나서 살해한 그 여자…”

 “하하. 네. 저 안 죽여요 사람.”

 “정말이죠?”

 “네ㅋㅋㅋ 저 시험 1차 붙어서요. 2차까지 합격해야 되어요."

 “휴… 다행이다… 근데 그럼... 제가 그쪽을 죽일까 겁나진 않으세요? 저 어떤 사람인지 모르시잖아요.”

 “제가 학생 때 셰어하우스에 살아서요. 다른 사람이랑 사는 거에 익숙해요.”

 “그러시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혹시 학생증 있으시면 한번 봐도 될까요? 저는… 졸업한 지가 많이 지나서… 인스타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우린 같이 살게 되었고, 나는 45만 원을 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녀를 처음 볼 때부터 착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자, 이제 남은 95만 원은 어떻게 벌 것인가.



                     

이전 01화 함부로 소원을 빌지 말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