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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현 Feb 15. 2019

2월의 눈

연애편지 #20

겨우 두달 살았던 베를린에서 본 눈오는 풍경은

왜인지 너무 슬픈 기억으로 남아버렸어.

오늘 아침 서울에도 똑같은 눈이 내렸는데

왜인지 나는 그 때 그 기억이 떠올라서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건

슬픔이지만 슬픔이 아닌 무언가였어.


서울에서 홀로 산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야

친구들도 많고 즐거운 일도 많지만

나는 둥둥 떠다니는 공허함을 붙잡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찾으며

한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어.

사랑을 향해 가고 싶은데 아직도 길을 못 찾았나봐

어디에서 마주할 지 모르는 운명을 기대하며

멀지않은 거리의 장소들만 반복해서 다니곤 해

그 시간들은 참 외롭지만

외로움이나 슬픔이 극에 달하면 

또 다른 어떤 행복감으로 변해.


창문을 활짝 열자 따뜻한 집안으로 

차갑고 시린 공기가 창틀을 타고 들어왔어

팔을 괴고 고개를 들어 눈이 내리는 속도를 따라

시선도 생각도, 천천히 바라봤어.

조급해하지도, 간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그렇게 천천히 살자고

잘 살고 있다고 되내었어.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 사람의 발걸음에는

지난 새벽동안 일한 무게만큼 고통만이 실려있을까,

눈을 보며 잠시라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따뜻한 집과 아늑한 침대가 있는 내게는 눈이 아름답지만

어디에서도 쉴 수 없는 이는 차가운 눈이 원망스럽기만 할지도 모르니까

잠시 기도를 했어. 그래도 잠시나마 웃을 수 있기를,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잠시 행복해지잖아.


새벽 내내 손이 저릴만큼 일을 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잠든 눈오는 아침

하얀 색 이불을 덮고 빛이 없는 방에서

다섯시간 동안 네 꿈을 꿨어.

너는 내게 아직 기다리고 있다며

얼른 일어나라고, 나 여기 있다고

나를 불렀는데

나는 일어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어.


꿈꾸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눈이 계속 내려, 

쌓이지 않고 녹아서 사라지면서

계속 눈이 오고 있어.




/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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