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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히 May 01. 2024

신입사원이라 죄송합니다.

 - 09. 500만 원밖에 안 되는 돈 독촉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영업직에 있었지만 흔히들 말하는 필드 영업은 아니었다. 즉, 내가 직접 고객들과 대면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은 가맹점(혹은 대리점 등) 점주들을 관리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영업관리직이었던 것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의 가맹점은 전국에 약 350개 정도가 있었고, 내가 속해있는 사업부의 영업담당자들은 어림잡아 대략 50명 정도는 있었던 듯하다.


 한 달만의 부서이동 후 나는 제대로 된 직무교육을 다 이수하지 못한 채, 대리점들을 맡아서 관리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관리했던 매장의 수는 약 20개 남짓했었다.


 전국팔도의 매장들 중에서 내가 담당하는 매장의 지역들은 부산, 경상지역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나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해 준 조치인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투리가 엄청 심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사투리를 쓴다. 예전보다 심하진 않지만 말이다.)


 내가 맡은 매장에 일일이 전화를 하면서 담당자가 변경되었다고 유선으로 인사를 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에게 친숙한 사투리였고, 사장님들도 사투리 쓰는 신입사원을 귀엽게 봐주는 듯한 눈치였었다.


 얼마 후, 내가 담당하는 매장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첫 출장이라 팀장님과 함께 이동했었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로 출장을 다녔었고 약 한 달에 걸쳐서 내가 맡은 전매장을 순회할 수 있었다.


 팀장님과 함께 출장을 다니면서 내가 크게 나설 일이 없었다. 팀장님이 나에 대해서 소개해주셨고, 나는 대부분 듣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매장 사장님들 중 몇 명은 본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팀장님과 막역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본사 출신이란, 본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사 후 매장을 오픈한 사장님들을 의미한다.)


 그 당시 나는 매장의 위치는 어떤지, 매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등 기본적인 사항만 머릿속에 남겨둔 채 출장을 마무리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했었다.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매장들에 제공되는 상품들은 "위탁"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여기서 위탁이라 함은 본사에서 상품을 만들고 제공해 주고, 가맹점에서 대신(=위탁) 판매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위탁 판매 체제였기 때문에 한 달이 마감이 되면 판매 대금을 본사로 입금해 주는 구조였다. 나는 당연히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판매분에 대해 입금을 매장 사장님들에게 요청을 했었고, 입금을 받아야만 당월의 업무가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당시에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줬었다.

"영업은 매출이 시작이고 입금이 끝이다. 입금 없는 매출은 매출이 아니다."


 회사는 판매대금을 회수해야지만 자금 흐름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건전한 회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판매 대금을 정산해서 입금해 달라고 요청을 했었고, 출근 후 한 번, 점심 후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금되지 않은 매장은 퇴근 전에 다시 연락을 돌렸었다.


 팀장님께서도 퇴근 전에 입금을 다 받고 퇴근하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퇴근 전에 한 군데 매장이 입금이 안되었었다. 전체 금액을 입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500만 원 정도 부족하게 입금을 했었던 것이다.


 매장 사장님께 전화를 해서 입금을 해주긴 하셨는데, 500만 원이 부족하다고 전달했고, 나머지 금액을 입금해 달라고 요청했었었다.


 바로 그때, 수화기 너머로 쌍욕이 날아왔다. 정말 문자 그대로 쌍시옷이 들어간 쌍욕이었다.


 "야, 500만 원이 돈이야? 어? 그거 가지고 지금 몇 번을 전화하는 거야? 다음 달에 준다고! 너 팀장 누구야? 누가 그렇게 가르쳤어?


 한 순간 나는 머리가 멍해졌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화를 내는 게 맞는 건지, 죄송하다고 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안 되는 순간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사장님께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고 차분하게 팀장님께 현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500만 원 정도 입금이 덜 되어서 입금 요청을 했는데, 사장님께서 욕을 하셨고, 다음 달에 입금해 준다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팀장님께서는 사장님께 전화를 하셨고, 내심 팀장님께서 화를 내주시길 바랐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충격적인 통화내용이 들려왔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신입사원이라 잘 모르고 그랬습니다. 제가 잘 교육하겠습니다. 입금은 다음 달에 해주세요"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잘못한 건가? 본사 물건을 팔았으면 판매대금을 받아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팀장님이 사과할 일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팀장님께서는 나를 불러서, 500만 원은 크지 않은 돈이고, 입금을 했으니 다시 전화해서 사과하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전화하기 정말 싫었지만 다시 전화를 해서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던졌다. 그 한마디에 인생의 비굴함을 느꼈었다.


 신입사원이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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