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히 Mar 06. 2024

서울이다. 전혀 기 죽을 필요가 없었다.

 - 01. 대기업 최종면접

 서울이다. KTX 서울역 앞에는 드라마 '미생' 촬영지였던 (구) 대우빌딩이 보였다. (지금은 서울스퀘어라고 불린다.) 그 당시만 해도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각종 매체에서 자주 언급될 만큼 인기 있는 히트작이었고, 원작인 웹툰 역시 크나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대학시절 자취방에서 미생을 보며, 치열하지만 뿌듯할 직장생활을 꿈꿔왔던 나였기에 서울역 바로 앞에 자리한 대우빌딩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들이켰다. 도심의 퀴퀴한 매연과 12월 겨울의 차가운 한기가 한데 섞인 다소 불쾌할 수도 있는 공기였지만, 난 그 불쾌감을 다 감쌀 수 있는 설렘을 들이켰다.


 유년시절을 경남에서 보내고 부산에 있는 대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서울"이란 곳에 대해 환상을 가지기에 충분했었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서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서울에 대한 환상은 내가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쓰는 데에 서툴렀던 나는 부산역 개찰구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종이 티켓을 발급받을 수 있었고,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또다시 개찰구로 가서 부산행 티켓을 끊으려고 했었다.


 개찰구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 내 나이 또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주위를 힐끗힐끗 쳐다보니 스마트폰으로 다들 예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기다리는 동안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린 뒤, 내 차례가 채 오기도 전에 나는 부산행 KTX 표를 예매할 수 있었고, 기나긴 대기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난 그 당시 되게 흐뭇한 표정을 지었었고, 내 표정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경상도 남자의 순박하고 멋쩍은 웃음을 보았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KTX를 예매했다는 풋풋한 자신감을 얻은 채 나는 최종 면접을 보러 갔다. 최종 면접을 보기 위해 건물 로비에 있는 면접 안내문을 따라 회사 엘리베이터를 탔고, 분명 나와 같은 처지일 것 같은 한 청년이 같이 탔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각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서 경쟁자라 여겼을 것이다. 잔뜩 긴장한 어깨, 말끔히 올린 머리카락, 그리고 내 것이 아닌 듯 불편한 구두와 정장, 넥타이.


 하지만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청년은 긴장한 기색 때문에 옷이 불편해 보였을 뿐, 맞춤정장인 듯 몸 구석구석 옷이 말끔히 자리 잡고 있었다.


 반면에 내가 입은 정장은 긴장한 몸 상태와는 상관없이 물과 기름처럼 내 몸을 겉돌았다. 거울 속 어색한 내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 생각이 났다.


 검은색 정장은 너무 말라 보인다며, 곤색 정장을 사주시며 넥타이를 서비스로 받아주시던 우리 부모님. 네이비 색이라고 하지 않고, '곤색'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전혀 기죽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통틀어 제일 값비싼 옷이었기 때문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