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사례 1.
고등학생이 된 재민이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순박한 면을 지니고 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기에, 친구들은 비싼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 입고 헤어 스타일을 자주 바꾼다. 어떤 친구들은 벌써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 그들은 주식을 공부하거나 인터넷 방송으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종종 “돈이 최고”라며 나중에는 부유한 건물주가 되길 꿈꾸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재민이는 외모를 꾸미는 데에도 돈을 버는 데에도 관심이 없다. 어릴 때부터 외모보다는 마음이, 돈보다는 성품이 더 중요하다고 배워 왔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이런 순박한 재민이를 짓궂게 놀리지만 재민이는 그저 웃을 뿐이다. 그는 진심으로 친구들을 좋아하고 친구들도 자신을 좋아해서 놀린다는 것을 안다. 친구들과의 순수한 우정. 이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만 같다.
사례 2.
어느새 어른이 된 재민이는 더 이상 친구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씩 친구들이 미워질 때가 생기기도 한다. 그들은 재민이와 다르게 수려한 외모와 많은 돈, 넓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졌다. 친구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외모와 돈, 재산으로 서로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평가의 대상에서 재민이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재민이가 친구들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저 눈에 보이는 가치로만 자신을 평가하는 그들의 냉정한 태도가 그를 불쾌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재민이가 느끼는 감정은 불쾌한 야속함보다는 서늘한 불안감에 가깝다. 눈에 보이는 가치를 중시하는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시하는 재민이의 관념을 휘저어 놓았기 때문이다. 순간 재민이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왜 나도 갑자기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쏟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게 왜 중요한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외모보다는 마음이, 돈보다는 성품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막론하고 어린 우리를 가르치는 어른들은 모두 그렇게 말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보이는 행태는 그들의 말과 달랐다. 어른들은 입으로는 마음과 성품을 외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외모와 돈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말과 행동이 다른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 우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에 보이는 가치, 즉 가시적(可視的)인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즉 비가시적(非可視的)인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우리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우리 또한 어른이 될수록 전자도 후자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재민이의 친구들처럼 수려한 외모와 많은 돈, 넓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진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러움을 느낀다. 그들의 삶은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행복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외모와 돈도 마음과 성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주객전도다. 외모와 돈 때문에 마음과 성품을 뒷전에 두는 일이 주변에서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런 일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느새 똑같이 눈에 보이는 가치에 이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한없이 비참해진다.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도대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게 왜 중요한데? 우리는 비가시적인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듣고 자라 왔지만, 정작 그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들은 적이 없다. 들은 적이 없으니 납득하기도 어렵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가치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시성의 진리를 외면하도록 세뇌당한 건 아닐까? 우리가 자라서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 어른들의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우리를 세뇌한 것일까? 머릿속에 박혀 있는 명제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서양철학의 시초라고 불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의 이러한 의구심에 탁월한 설명을 제공한다. 그는 살면서 서른 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했는데, 모두 유실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플라톤이 대화 형식으로 쓴 책인 대화편과, 유일하게 서사적 형식으로 전개한 작품인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다. 많은 고대 철학자들의 저서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훼손되고 사라졌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그의 여러 저서 중에서도 우리의 의구심 해소에 도움이 되는 책은 특히 『국가』다. 『국가』는 플라톤 철학의 전체적인 맥락을 담고 있어 그의 다른 저서들보다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책이기도 하다.
『국가』의 원제는 ‘Politeia’로 사실 ‘국가’보다 정치 체제를 뜻하는 ‘정체(政體)’가 더 원제에 충실한 번역이다. 실제로 작품 안에서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를 포함한 화자들의 대화도 상당 부분 정의로운 국가, 즉 이상적인 국가상을 주제로 삼는다. 가장 올바른 정치 체제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국가 안에서의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의 화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길고 긴 대화를 이어 나간다.
하지만 플라톤의 『국가』가 이상적인 국가상을 탐구한다고 해서, 그것을 책의 근본적인 주제나 플라톤의 궁극적인 목표로 볼 수는 없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상을 탐구함으로써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유추해 내려 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올바른 국가의 모습을 파악하면 자연스럽게 올바른 삶의 모습까지 파악할 수 있다.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정치 체제는 개인이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가치관에 관한 문제로 수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는 일종의 비유다. 결국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 던지는 화두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삶에서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란 무엇인가?”
이데아계의 탄생
지금 시대 학자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고대 철학자들은 변하지 않는 참된 가치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일례로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세계의 근원인 보편적 물질을 탐구하기 위해 자연에 주목했다. 가령 탈레스(Thales)는 물을 세계의 근원이라고 여겼고,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공기를, 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는 원자를 세계의 기초라고 생각한 식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눈에 자연철학자들이 내세운 자연의 물질들은 하나같이 비본질적으로 보였다. 자연의 물질들은 자연 현상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참된 가치로서의 자격이 부족했다. 참된 가치는 변하지 않는 성질인 불변성을 전제로 삼기 때문에, 수증기로 변하는 물이나 이리저리 떠도는 공기는 지극히 불완전한 물질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생각한 진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 물음의 해답을 도출하고자 플라톤은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한다. 그는 세계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인 줄만 알았던 우리의 세계를 두 부분으로 나누다니! 플라톤이 나눈 두 부분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세계인 가시적인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비가시적인 세계다.
가시적인 세계는 간략히 가시계(可視界)라고 부른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 점철된 세계라는 의미에서 현상계라고도 한다.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현상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세계를 가리킨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가를 즐기는 일상 세계다. 인간이 감각을 통해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세계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반면 비가시적인 세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추상적인 세계다. 이곳은 이데아(Idea)라는 것으로 가득하다. 이 이데아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따라서 비가시적인 세계는 눈이나 손과 같은 감각 기관이 아닌 오직 순수한 지성으로만 파악된다. 이러한 점에서 비가시적인 세계를 가지계(可知界)라고도 부른다. 또는 이데아계로 명명한다. 얼추 생각해서는 이데아계의 실상을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이데아계는 우리의 경험이 이루어지는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면서도 현상계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독특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데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데아는 플라톤 철학의 근간일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다. 이데아란 간단히 말해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의 원천이다. 현상계에 존재하는 사물, 자연, 심지어 인간까지도 각각 자신만의 본질적 원천 혹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인 이데아를 갖는다. 『국가』에 따르면 현상계의 모든 요소들에는 고유한 이데아가 있다.
우리는 각 사물에는 단 하나의 이데아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각 사물마다 단 하나의 이데아를 설정하여 그것을 각 사물의 실재라고 부르네.
(천병희 옮김, 숲, 2013, 373~374쪽)
책상은 책상의 이데아를,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의 이데아를, 인간은 인간의 이데아를 지닌다는 말이다.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이들의 이데아는 책상으로, 스마트폰으로, 인간으로 형상화되어 비로소 현상계에 등장한다. 사물, 자연, 인간을 포함해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적인 산물은 이데아라는 씨앗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자. 책상이란 사물은 책상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인 책상의 이데아가 있기에 현상계에 구현된다. 책상의 이데아가 없다면 현상계에는 책상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도 스스로의 가장 본질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인 이데아를 가진다. 인간의 이데아가 육체를 통해 현상계에 구현되면서 인간이 존재하게 된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생물학적 물질인 육체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인간에게는 육체에 생동성을 부여해 작동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데아다. 이데아가 결여된 육체는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이데아들로 구성되는 세계가 이데아계다. 이데아계는 현상계에 반영됨으로써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것들로 구현된다. 동시에 이데아계 자체는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기에 현상계를 초월한 저 어딘가에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라고 해서 곧 이데아계가 현상계보다 덜 중요한 세계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현상계의 존립은 이데아계에 의존하고 있는 바 이데아계가 현상계보다 훨씬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이데아계가 반영된 가짜 세계에 불과하다. 진짜 세계는 본질적 원천으로 가득한 이데아계다. 만약 이데아계가 없다면 우리의 일상 세계인 현상계도 무너지고 만다.
결과적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가 보이는 가치보다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망각하거나 상실한다면 보이는 가치도 무의미해진다. 마음이나 성품과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가 갖춰졌을 때에야 외모나 돈과 같은 보이는 가치도 더욱 빛난다. 보이지 않는 가치. 이것이 플라톤이 찾은 변하지 않는 참된 가치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성취하려면
우리는 플라톤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해 보이는 가치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계가 가짜 세계고 감각할 수 없는 이데아계가 진짜 세계라면, 가짜 세계에 사는 우리들이 진짜 세계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성취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플라톤은 『국가』에서 인간의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 인간의 영혼은 욕구와 용기, 그리고 이성이라는 세 가지 부분으로 분류된다. 첫 번째로 욕구는 돈과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적인 부분이다. 돈과 이익은 눈에 보이는 가치이기 때문에 가짜 세계인 현상계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므로 가짜 세계에 집중하는 욕구는 영혼의 가장 하위에 자리한다. 두 번째로 용기는 승리와 명예를 좇는 성질을 갖는다. 승리와 명예는 돈과 이익에 비하면 확실히 비가시적인 가치다. 그러나 승리와 명예의 성취는 현상계의 차원을 벗어날 수 없다. 나와 겨루는 상대방을 이기고 이를 통해 나의 명예가 고취되는 경험은 현상계에 한정된다. 이러한 연유로 용기는 영혼의 중간 자리에 위치한다.
마지막 부분이자 영혼의 세 부분 중 최상위에 자리 잡는 것이 이성이다. 이성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자 덕목이다. 이성은 지혜를 사랑하고 진리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부분으로, 인간은 이성을 통해 존재의 본질인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다. 만약 이성이 아닌 욕구에 압도되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질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너무 지나친 용기로 만용을 부리면 원만하게 해결될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우리가 이데아를 파악하는 능력인 이성을 활용한다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 그리고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성적 인간은 더 이상 저차원적인 가치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보다 고상한 가치인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이성이 통제하는 영혼은 이데아계에 더욱 가까워진다. 영혼의 최상위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성취하는 위대한 인간으로 도약함으로써 풍성한 삶을 꾸려 나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플라톤이 이성을 우선시했다고 해서 욕구와 용기를 무조건 배척하고 이성만을 고집했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비록 그가 이성을 영혼의 최상위 능력으로 찬양하긴 했지만 동시에 욕구와 용기의 필요성도 충분히 고려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익을 탐하는 부분과 승리를 사랑하는 부분에 관계되는 욕구라도 지식과 이성에 따라 이것들과 함께 즐거움을 추구하며 지혜가 가리키는 즐거움만을 추구한다면, 진리를 따르고 있으니 자기에게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진정한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
(같은 책, 525쪽)
플라톤은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이성이 영혼의 전체를 지배하되 욕구와 용기를 적절히 이용해 진리를 추구하는 데 활용하는 사람을 제시한다. 이성, 용기, 욕구의 조화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성취하려고 노력하되 보이는 가치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은 예부터 많았지만, 자신만의 철학을 통해 체계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플라톤이 최초일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진리 탐구는 플라톤 이전에도 꾸준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플라톤만큼 체계적으로 또 설득력 있게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플라톤이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눈 이후, 서양철학 또한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시작점에 두어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을 중요시하는 학파와, 현상계에서 실제로 느끼는 경험을 중요시하는 학파로 양분된다. 플라톤 이후 서양의 철학사는 양분된 두 학파 간의 2000년이 넘는 싸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톤은 2000년 넘게 이어지는 싸움의 중심이자 주범인 셈이다. 도대체 보이는 가치와 보이지 않는 가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본질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철학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틀린 것인가? 플라톤이 촉발한 이러한 물음들의 연쇄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플라톤을 서양철학의 시초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죽하면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가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라는 유명한 말까지 남겼을까. 이렇듯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플라톤의 『국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남긴다. 외모나 돈처럼 눈에 보이는 가치를 쫓는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왜 허탈함과 허무함을 느끼는가. 플라톤의 철학에 따라 사랑, 우정, 지혜, 진리, 본질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 플라톤 (Platon, BC 427~347 추정)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태어난다. 귀족 가문 출신인 그는 정치 입문을 준비하는 동시에, 스승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을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에 적국 스파르타가 30인 참주를 내세워 과두 정치를 일삼자 플라톤은 정치 입문에 회의감을 느낀다. 이내 아테네는 30인 참주에 반발해 그들을 끌어내리고 민주 정치를 시행하지만 이 시기에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한다. 결국 플라톤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 정치 입문을 완전히 포기한다.
정치 입문을 포기한 그는 아테네를 떠나 여행에 나선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여행하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다. 이후 플라톤은 철학에 전념,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연구와 교육에 몰두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국가』, 『향연』을 포함해 수많은 저서를 남긴 그는 기원전 347년에 삶을 마감한다.
※ 추천 도서
플라톤, 『국가』, 천병희 옮김,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