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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필은 Nov 01. 2022

<고전정신> 철학2. 나의 생각에 확신을

데카르트의 『성찰』

사례 1.

확신이란 단어는 민정 씨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일 것이다. 민정 씨는 확신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살면서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진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에는 그녀의 공부법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자신과 다른 방법으로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자신의 공부법이 의심스러워졌다. 그럼에도 줄곧 성적은 평균 이상이라 대학교도, 그리고 직장도 꽤 만족스러운 곳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민정 씨는 삶에서 크고 작은 성취들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자신에의 확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중이고 퇴근 후에는 예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미술을 배우며 즐겁게 산다. 민정 씨는 이러한 즐거움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퇴근 후 그리고 주말까지도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는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혼란스러워진다.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게 확실해?”     


사례 2.

“확실합니까?” 회의 시간에 민정 씨가 의견을 내자 팀장이 되묻는다. 팀장의 물음 한 마디에 회의에 참여한 모든 팀원의 표정은 물음표를 띤다. 팀원들의 물음표가 모두 민정 씨의 입을 향한다. 민정 씨는 등딱지 속으로 숨는 거북이처럼 움츠러든다. 의견을 말할 때까지만 해도 민정 씨는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의 질문과 팀원들의 표정을 접하자마자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민정 씨의 의견을 뒷받침할 논리적 근거나 수치적 자료는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민정 씨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 스스로도 의문이 생겨버렸다. “내 생각이 확실한가?” 민정 씨는 속으로 절규한다. “왜 너도나도 나한테 확실하냐고 묻는 거야? 나도 모르겠다고!”          



의심병 말기 환자의 질문

“확실합니까?” 이 단순한 질문 하나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다양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사색에 잠길 때, 학교 토론 수업에서 사안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할 때, 회사에서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나만의 해법을 제안할 때 등등.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나 자신, 토론 수업을 듣는 학생들, 회사 동료 등등. 이렇듯 다양한 상황 속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확실하냐고 묻는다. 이들은 무엇에 대해 확실하냐고 묻는 것일까? 내가 살아가는 방식? 토론에서 밝힌 나의 의견? 회사에서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언뜻 보면 각기 다른 것을 겨냥하는 듯하지만 결국 질문의 표적은 하나로 귀결된다. 나의 생각.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대면하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을 가져도 될까?

“확실합니까?”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진 사람은 아마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R. Descartes)일 것이다. 갈색 깃털을 가진 참새를 보고 그는 묻는다. “저게 갈색 참새가 확실합니까?” 차를 마시려고 물을 끓이다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 데고도 묻는다. 화상의 고통에 끙끙 앓으면서. “주전자가 뜨거운 게 확실합니까?” 데카르트가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면 음식을 먹으면서 물었을 것이다. “떡볶이가 달콤하고 짭짤하며 매콤한 맛인 게 확실합니까?” 이 정도면 의심병 말기 환자다. 거의 정신 병원에 입원해야 할 수준이다.

데카르트는 의심이 많은 철학자였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진리를 의심했다. 데카르트가 살았던 당시 유럽은 중세 신학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이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였다. 모든 진리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이었다. 비록 루터(M. Luther)를 필두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조금씩 스콜라식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진리는 신에 대한 믿음에서 파생되었고 학문은 스콜라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스콜라 철학이 정신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시대 속에서 데카르트는, 신앙이라는 절대적 믿음으로 견고해진 기존의 진리를 의심한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의심의 철학자라고 불린다. 그는 스콜라 철학을 향해 묻는다. “확실합니까?”

사실 의심은 많은 사상가들이 학문을 대하는 기본자세였다. 유명한 철학자인 흄(D. Hume)과 니체(F. Nietzsche)는 기존의 진리를 의심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학문을 전개했다. 마르크스(K. Marx)와 프로이트(S. Freud)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위대한 학문적 업적은 기존에 당연시되던 진리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상가들 중에서도 데카르트가 의심의 철학자를 대표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데카르트가 의심을 학문의 방법론으로 이용한 최초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흄도 니체도 마르크스도 프로이트도 데카르트에 비하면 의심의 후발 주자다. 데카르트는 본격적으로 의심을 학문의 방법론으로 삼았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회의적 태도를 일컬어 ‘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기존의 진리를 의심하는 철학적 태도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가 두드러지는 저서는 아마도 『성찰』일 것이다. 그는 왜 의심했는가? 그의 천성적으로 병약한 체질이 뇌에도 영향을 미쳐 의심병 말기로 번진 것일까? 하지만 데카르트가 학문에 있어 의심하는 태도를 취한 이유는 합리적이었다. 그가 보기에 스콜라 철학을 포함한 기존 학문의 모든 진리는 학문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철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맹목적인 신앙에 의지해 진리를 내뱉는 기존의 학문에는 허점이 없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진리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가 떠오른다. 그렇기에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기존의 모든 진리에 의심을 품고 새로운 진리를 찾기 위한 지적 탐구에 천착한다.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진리를 세우는 것. 이것이 데카르트가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찰』이라는 제목은 ‘제1철학에 관한 여러 가지 성찰’이라는 원래 제목의 축약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목표는 의심할 수 없는 제1원칙의 건립이다. 건립의 사전 작업으로 데카르트는 당연하게 생각되어 온 익숙한 진리들을 무너뜨린다. 비유하자면 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원래 그려진 그림을 지워 버린다. 이는 또한 컴퓨터의 손상된 디스크를 포맷해 초기화하는 작업과 같다.


학문에 확고부동한 무언가를 세우고자 열망한다면, 사는 동안 한번은 모든 것을 뿌리째 뒤집어 최초의 토대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하리라.

(양진호 옮김, 책세상, 2011, 35쪽)     


우리가 어떤 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때 그 믿음은 대부분 감각에 연유한다. 우리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의 모양과 색깔을 인식한다. 우리는 코를 이용해 숲의 상쾌한 풀 내음을 맡는다. 우리는 혀를 통해 사탕을 맛보며 그것이 달콤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피부로 햇빛을 느끼며 태양의 따스함을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는 귀로 새소리를 들고 새가 어떤 소리로 재잘거리는지 파악한다. 이처럼 우리는 오감을 가장 흔한 인식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오감을 활용해 얻은 인식은 관념이 되고 지식과 진리로 발전한다. 그러한 이유로 데카르트는 기존 진리의 초기화 작업을 위해 우선 감각을 의심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문제는 인식의 수단인 감각이 우리를 기만하기 쉽다는 데 있다. 가령 바다의 모양과 색깔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아침의 바다는 잔잔하고 새파랗지만 낮의 바다는 역동적이고 새하얗다. 저녁의 바다는 고요하고 새까맣다. 그럼 바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눈으로는 바다의 진짜 모습을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들의 감각 기관인 눈은 시간에 따라 바다를 다른 모양과 색깔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은 실정에서 우리가 어찌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후각, 미각, 촉각, 청각도 다르지 않다. 무더운 여름에 집에 들어가는 상황과 매서운 겨울에 집에 들어가는 상황을 비교해 보라. 똑같은 온도의 실내인데도 여름에는 시원하게 느껴지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과연 우리는 촉각을 믿어도 될까?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꿈을 꾸는 순간에는 꿈속에서의 체험이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꿈에서 괴물이나 귀신처럼 현실성 없는 존재를 만나도 우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이동이나 공간 왜곡 등 말도 안 되는 현상이 자연 현상인 양 일어나기도 한다. 꿈이 꿈으로 인지되는 순간은 우리가 꿈에서 벗어난 이후다. 그러면 지금 내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거짓일 수도 있지 않은가! 동시에 지금 내가 현실이라고 느끼는 이 순간이 실상 꿈일 수도 있지 않은가!

결국 기존의 진리들은 모두 불확실해진다. 우리가 믿었던 바다, 풀, 사탕, 태양, 새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되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물론 가족과 친구, 애인을 포함한 사람들의 존재 여부도 확실성에서 멀어진다. 혹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현상과 존재들이 환상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데카르트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무엇이 참된 것일까? 아마도 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같은 책, 45쪽)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오로지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주변의 사물들, 사람들, 심지어 절대적인 신조차 확실히 존재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사실이라고 알고 있고 또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요소들은 모두 허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백지로 되돌림으로써 새로운 진리를 찾기 위한 사전 작업을 끝마친다.     


다시확신으로

데카르트는 다시 문제에 직면한다. 우리가 여태까지 확실하다고 여겼던 모든 진리는 무효가 되었다. 그럼 이제 새로운 진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실마리는 그가 앞에서 못 박은 생각에 있다.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이 생각은 어떤 존재가 하는 생각인지 고민해 보자. 그것은 의심할 수 없이 당연하게도 ‘나’다.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만이 확실하다는 생각의 주체는 분명히 ‘나’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진리를 무너뜨린 저 혁명적인 생각도 창출될 수 없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 시점에서 비로소 확실한 제1원칙이 확립되기 시작한다. 생각하는 ‘나.’     


나는 모든 것을 대단히 충분히 숙고한 뒤 마침내 이러한 공리를 확립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

(같은 책, 46쪽)     


새로운 진리의 출발점인 제1원칙은 바로 ‘나’의 존재다. 내가 아무리 감각에 기만당하고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상태라 해도 어쨌든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존재 그 자체로 확실성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는 ‘나’ 중에서도 감각하는 ‘나’가 아닌 생각하는 ‘나’만을 확실한 존재로 여긴다. 즉 ‘나’의 존재에는 이성이라는 조건부가 붙는다.

데카르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한 번은 들어 봤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이 말은 데카르트가 『성찰』을 출간하기 4년 전인 1637년에 『방법서설』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명제지만, 『성찰』에서의 제1원칙과 일맥상통한다.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 내가 감각에 기만당하고 꿈을 현실로 착각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 하나는 내가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의 이성만큼은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하다. 감각은 나를 속이지만 이성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내가 기존의 진리를 의심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새로운 진리를 확신하는 활동은 모두 이성이라는 능력에 기인한다. 이성이 명료함을 담보한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존재는 제쳐두더라도 이성을 가진 ‘나’의 존재는 신뢰할 수 있으리라.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성을 가진 ‘나.’ 이것이 데카르트가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첫 번째 진리다.

데카르트의 ‘나’ 개념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의 점에 비유되기도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라는 외침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다. 또 다른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그는 왕 앞에서 자신에게 엄청나게 긴 지렛대와 그 지렛대를 받치는 고정된 받침목이 주어진다면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확언했다. 아르키메데스의 점은 바로 고정된 받침목이 위치한 지점을 가리킨다. 아르키메데스가 지구 들어 올리기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면 고정된 받침목을 놓을 점이 설정되어야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점은 거대한 프로젝트의 단단한 토대인 셈이다. 데카르트의 프로젝트도 동일하다. 데카르트는 새로운 진리를 완성하는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해, ‘나’ 개념을 고정된 점으로 삼는다.

이어서 데카르트는 ‘나’라는 머릿돌을 기반으로 『성찰』의 나머지 부분을 차례대로 풀어나간다. ‘나’라는 존재를 확신함으로써 ‘나’ 외의 다른 존재들도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그가 ‘나’ 다음으로 증명하는 진리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데카르트는 신이 존재한다는 진리의 근거를 ‘나’가 가진 신에 대한 관념에서 발견한다. 무한한 존재인 신에 대한 관념이 유한한 존재인 ‘나’에게서 발생했을 리가 없기에, 신에 대한 관념은 신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신이 없다면 신에 대한 관념 또한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 또한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내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을 포함한 나머지 존재들은 어떨까. 신의 존재가 확실하다면 내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도 확실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신은 ‘나’를 비롯해 여러 피조물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한 ‘나’와 사물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완성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데카르트는 주변의 사물 및 사람들의 존재까지 확신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 관한 진리를 의심해 무너뜨린 후, 데카르트는 이성을 가진 ‘나’의 존재를 제1원칙으로 삼아 신, 사물 및 사람들, 세계의 존재를 다시 증명한다.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데카르트가 성찰해 얻은 결과값은 그가 의심했던 기존의 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데카르트는 신, 사물 및 사람들, 세계를 의심하며 새로운 진리를 탐구했지만 결국 그가 제시한 새로운 진리는 이전과 동일하게 신, 사물 및 사람들, 세계로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 철학의 정수는 결과보다는 탐구의 시작점에서 찾아야 한다. 그는 다른 학문과는 다르게 진리의 토대를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생각하는 ‘나’로 삼았다. 신앙이 전부였던 시대 속에서 불경하게도 신이 아닌 ‘나’가 첫 번째 진리로 등장한다. 이는 당시에 너무도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사상이었다. 진리의 시작점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권력의 근거를 신앙에 두었던 교회로서는 심기가 무척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데카르트가 죽은 후 그의 저서들은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다.    


      

중세 유럽에서 인간의 지위는 보잘것없었다. 인간은 신-천사-인간-동물-식물-광물 순으로 이어지는 스콜라식 위계질서에 포함된 존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렇듯 신의 피조물 중 하나에 불과했던 인간은 데카르트 철학으로 인해 독자적인 존재로 지위가 격상된다. 인간은 더 이상 스콜라식 위계질서에 속박된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성이라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주체적 존재다. 이때부터 근대적 자아가 탄생한다. 신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변하는 지점이다. 이제 진리의 모든 초점은 신이 아닌 ‘나’, 즉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에 맞춰진다. 데카르트가 제시한 ‘나’ 개념은 신에게 삶의 주도권을 뺏겼던 중세인들을 스스로의 삶을 일구는 근대인으로 변모시킨다. 이렇게 종교개혁, 르네상스와 더불어 데카르트는 근대라는 시대의 문을 연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이유다.

근대적 자아의 주체성은 감각이 아닌 이성의 힘으로부터 형성된다. 근대인들이 자신의 이성에 집중하면서 시대는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데카르트 철학은 이후 칸트(I. Kant)나 헤겔(G. W. F. Hegel)과 같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철학사적 의의로만 평가할 수 없다. 인간 이성의 발견은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인류의 창조력이 발휘되는 일종의 변곡점이다. 계산하고 예측하고 발명하는 이성의 힘은, 인간에게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인간은 이성의 힘을 자각하자마자 이를 활용해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이성이라는 강력한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근대의 산물인 계몽주의, 산업혁명, 과학혁명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데카르트가 주목한 ‘나.’ 특히 생각하는 ‘나’는 인류 발전과 진보의 진정한 원천인 것이다.

생각은 내가 가진 가장 막강한 힘이다. 생각이 내재한 힘이 이토록 막강하다면, 나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성찰』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이성, 즉 나의 생각은 모든 것을 초기화시키는 힘과 모든 것을 재건하는 힘을 함께 지닌다. 심지어 생각의 위력은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와 드넓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밝힐 정도로 눈부시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토론에서 밝힌 나의 의견, 회사에서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이것들은 모두 나의 생각이라는 확실한 진리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앞으로 나의 생각에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민정 씨처럼 자기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의심 앞에서 주눅 드는 사람들에게 데카르트는 외친다. “나의 생각에 확신을!”          



□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

데카르트는 1596년 프랑스 투렌에서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해 고생했지만, 라 플레슈 학원과 푸아티에 대학을 거치며 스콜라 철학, 수학, 자연철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다. 데카르트는 여러 공부를 하면서 학문적으로 명확성이 결여된 스콜라 철학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졸업 후 네덜란드 군대에 입대한 데카르트는 이곳에서 수학자 베크만(I. Beeckman)과 교류한다. 베크만과의 교류는 그가 수학적 사고방식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후에도 데카르트는 군인 신분으로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는 네덜란드로 돌아온다. 네덜란드에서 자유롭게 학문에 몰두해 『방법서설』, 『성찰』과 같은 저서를 남긴다.

1649년에는 스웨덴 여왕의 초청을 받는다. 여왕에게 철학 강의를 하러 스웨덴으로 향한 그는 선천적으로 허약한 체질과 스웨덴의 추위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다. 결국 1년 뒤 폐렴으로 사망한다.    


      

※ 추천 도서

르네 데카르트, 『성찰』, 양진호 옮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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