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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로빅 한지 얼마나 됐어요?

by 자몽에이드

이사 와서 수영장에 가는 건 포기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은 저렴했는데 사설 수영장을 다니려니 수강료가 해도 너무 차이 난다. 두통 때문에 수영을 시작했던가. 두통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횟수는 꽤 줄었다. 수영 덕분에 통증을 잊고 살았으니 운동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그래서 수영이 아니라도 뭔가 할 수 있는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다. 마음은 그랬다. 문득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자치프로그램이 떠올랐다. 프로그램 용지 첫 줄에 적혀있었던 요가 수업을 한 시간 겨우 했다. '다른 건 뭐 없을까?' 어디선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터덜터덜 끌리듯 따라갔다. 에어로빅은 그렇게 만났다.



*'최근 에어로빅은 대중가요의 안무를 에어로빅 식으로 하여 음악적 즐거움과 동시에 유산소 운동을 통한 건강을 증진시킨다. 정통 에어로빅보다 줌바와 K팝 댄스 동작을 통합해 운영되는 것이 각 지역 스포츠센터에서 더 인기가 많다.' <나무위키발췌> 실제로 본인이 수강한 강좌도 에어로빅, 다이어트댄스, 줌바등 명칭이 변경이 여러 번 있었어요. 통칭해서 에어로빅이라고 하겠습니다.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전신 거울, 둥둥 바닥까지 느껴지는 음악 비트, 레깅스에 브라탑 입고 땀 흘리는 사람들. 에어로빅 첫날의 공기, 온도, 습도 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사십 평생 처음 겪어보는 낯선 곳. 맨 뒷줄에서 몸을 로봇같이 삐걱댔다. 본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뚱이를 차마 거울로 못 보겠다.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분명 음악이 꺼졌는데 귀에서는 아직도 비트가 쿵쿵 터졌다. 숨은 목까지 차오르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회원님, 한 3개월은 그냥 오세요. 익숙해지려면 시간 걸려요.” 숏컷 머리에 한눈에 봐도 카리스마 넘치는 강사님은 뭐랄까. 여고 시절 인기 있던 보이쉬한 선배처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넘쳤다. ‘못하겠어요’하고 말하려고 강사님께 갔는데 “네”하고 나왔다.



그렇지. 시간이 필요하지. 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열망은 시간을 원한다. 그 시간을 쌓는 작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말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믿고 그 시간을 무던히 보내야만 한다. 다행스러운 건 나는 루틴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 루틴을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 게으름까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어로빅 시간을 하루에 세팅한 이상 나는 그 시간 그곳에 있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계획형 인간 시야에 비로소 함께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좀 할만해졌나 보다.



"언니는 에어로빅 한지 얼마나 됐어요?"

“8년? 9년? 저 언닌 더 해. 한 20년 뛰었을걸.”

‘농담이야 뭐야. 이게 그렇게 할 일이야?’ 고작 두어 달 뛴 새내기가 어찌 그 내공을 알랴마는 그들의 시간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다들 각자의 운동을 하고 있으니 부딪힐 일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일종에 찍히면 죽는다 같은 방어의식이랄까. 레깅스 입은 언니들. 범상치 않다. 뛰면서 벗는 언니들. 센캐의 절정이다.



일주일에 4일을 에어로빅에 갔다. 어지간하면 안 빠졌는데 이런 모습이 강사님과 언니들을 감동시켰다. 강사님은 매우 못 따라가는 나를 지나치지 않고 동작을 봐주셨다. 운동이 끝나면 언니들은 커피 마시고 가라, 점심 먹고 가라, 김치는 있냐며 나를 챙겨줬다. 이렇게 예쁘다 예쁘다 하는데 열심히 안 할 이유가 없지. 나는 그 끝도 없이 나오는 작품(음악)의 동작들을 열심히 외웠다. 쉽지 않았다. 도대체가 어떻게 이렇게 다른 곡들이 쏟아져 나오고 언니들은 그걸 다 알고 있는지 참 대단했다. 다행인 건 강사님이 매주 수요일마다 새 작품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게 그렇게 좋았다. 세부 동작 설명 듣고 하니 눈치껏 했던 거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한 언니가 꿀팁을 줬다. 요즘은 유튜브에 에어로빅 영상이 많이 올라오니 곡 제목을 치면 볼 수 있다고. 오호.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도움이 되었다. 동작이 머릿속에 있으니 자신감 있게 팍팍 찌를 수 있었다. 언니들마다 많이 늘었다고 칭찬을 했고 내가 보기에도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았다.



나도 어엿이 몇 달이 아닌 1년 차가 되었다. 검은 레깅스 벗어던지고 형형색색 다양한 커팅의 레깅스를 사 모으고 시간 날 때마다 브라탑과 예쁜 민소매 상의를 검색했으니 나의 평상복은 운동복이 된 지 오래다. 몸에 붙는 옷을 질색팔색했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몸의 변화도 고무적이었다. 그렇게 뛰었으니 몸에 있던 군살이 정리되면서 근육이 붙는 건 당연지사. 내 천자는 아니었어도 위에서 아래로 갈라진 두줄이 보이는 복근이 생기고 (지금은 없다) 허벅지가 단단하고 매끈해졌으니 그야말로 인생 바디였다. 에어로빅을 하면서 한 시간 뛰어도 숨이 가쁘지 않았고 어떤 음악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 그런 마음의 여유까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겼다. 강사님이 무대 공연을 준비하신다면서 팀 멤버를 뽑으신 것이다. ‘그런 것도 하는구나.’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내 이름이 불렸다. 모두가 놀란 그 더운 공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네? 저... 요."


<이미지출처: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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