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음 분기는 절대로 등록 안 할 거야

그렇게 2년을 번번이 등록했다

by 자몽에이드

수영 첫날 어땠는지 묻지 마세요. 발차기했다가 물에 얼굴 넣었다 뺐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난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지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수영장은 낯설었고 부끄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주 3일은 부랴부랴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수영복을 입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냈다. 자유형을 배우고 있지만 나는 그저 발차기나 조금 빨라지길 바랄 뿐 팔 돌리기는 사치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수영장이 익숙해지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서열도 생겼다. 발차기가 느린 사람이 선두에 서면 줄줄이 밀리기 때문에 눈치껏 자기 자리를 찾았다. 처음엔 맘 편하게 맨 뒤에서 출발했지만 내 자리를 노리는 큰언니들 때문에 점점 중위권으로 떠밀렸다. 언니들은 나보고 새댁이라고 불렀다. ‘새댁 아니고 헌 댁인데 수영모에 민낯이니 어려 보이나.’ 어쨌든 초보 레인은 친해지고 있었다.



수영장에 다니니 아침에 샤워하는 게 좋았다. 이 맛에 수영을 계속 다니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작은 사우나실은 언제나 만원인데 한번 들어가 보니 몸이 찾는다. 수영보다 다른데 정이 들고 있었다. 수영강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수영강사는 성실하지 않았다. 출근하는 날보다 안 하는 날이 많아서 잘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옆 레인 강사님이 대강 봐주는데 우리 레인 언니들이 얼마나 착한지 별다른 민원을 넣지 않았다. 우리의 영법은 엉망이고 진도는 더디 나갔다. 나는 등록 때를 기다리며 늘 외쳤다.



“다음 분기는 절대로 등록 안 할 거야.”

그러기를 1년이다. 등록 때가 되면 언니들은 친절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목욕하러 와라, 놀러 와라, 그 시간에 별다르게 할 거 없다는 둥. 사실 다 맞는 말이다. 언제쯤 수영을 잘하게 될는지 참. 처음으로 수영이란 운동을 할 땐 잘 몰랐다. 운동을 유지하는데 함께하는 멤버들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이 1 레인을 지키는 수영 못하면서 매번 등록하는 언니들 덕분에 나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50, 60대 언니들이 운동을 얼마나 잘했겠으랴. 수영 진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꾸준히 하면 승자이다.



드디어 1번 레인에 변화가 생겼다. 성실하지 못한 강사가 그만두고 열정 있는 강사가 온 것이다. 강사는 고질적인 우리의 엉망진창 영법을 열정적으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이어 자발적인 언니들의 수업 외 수영 연습이 시작됐다. 강사님께 칭찬받는 언니들이 부러워하며 나도 수영에 열을 내었다. 수영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수영이 빨라졌고 무엇보다 활기가 넘쳤다. 예전엔 생리가 결석 핑계가 되었는데 지금은 생리 때문에 빠지면 그렇게 그 시간이 아쉬웠다.



생리는 약과였다. 난데없이 치질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수술도 무서웠지만 수술하게 되면 수영을 무려 1~2달 쉬어야 한다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견디기 힘들었다. 다행히 회복 속도가 빨라서 1달 정도 지나니 괜찮아졌다. 의사는 2주 정도는 더 있다가 수영하라고 했지만 왜 그랬을까. 너무 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던 나는 결국 수영장에 갔다. 그리고 재수술을 하게 되었다. 염증이 생겼다나 뭐라나. 정말 수영이 뭐라고 이러는지. 어이가 없긴 했는데 그렇게 진지하고 간절했다.



여름엔 수영장 물이 시원했고 겨울엔 수영장 공기 추워서 발차기로 몸을 데웠다. 자유형으로 10바퀴를 돌면 물에서 땀나는 느낌과 얼굴이 터질듯한 느낌도 좋았다. 수영 끝나고 먹었던 믹스 커피 한잔의 맛은 그 어떤 스페셜티 못지않았다. 나는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수영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언니들은 못 보게 되는 것이 참 슬펐다. 그렇게 2년 다녔던 도서관 옆 수영장과 이별을 했다. 수영을 계속할 수 있을까.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keyword
이전 01화약 타러 다니지 말고 운동을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