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약 타러 다니지 말고 운동을 해 보세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by 자몽에이드

타이레놀이 들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눈까지 내려오는 번쩍거림에 앉아 있기 힘들었다. 누워도 통증에 시달리던 나에게 의사는 처방 진통제를 권하였다. 이 신경안정제의 효과가 어찌나 시원한지 청량음료 마시는 것 같았다.



두통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2주 길게는 한 달에 한 번씩 사람을 미치게 쥐고 흔들다 사라지곤 했다. 검사를 여러 번 받았지만 나오는 대답은 예민하다는 것일 뿐. 두 아이를 가진 임신 기간을 제외하고는 생리처럼 순응해야 하는 몸의 반응이었다. 생리는 예측이나 하지 두통은 대책이 없다. 이런 나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의사는 만날 때마다 친절했다. 그럴 수 있다, 예민한 사람 많다, 이보다 더 센 약도 처방 가능하다 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약을 타러 가면 갈수록 나는 초라해져만 갔다. 이게 두통을 낫게 하는지 아니면 더 의식하게 하는지 의문이었다. 약의 개수가 줄어들면 걱정은 그만큼 늘었다. 하루하루가 두통을 대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약 타는 거 이외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지낸 게 어느덧 1년. 그날도 처방전을 받으러 병원에 갔었다. 친절하던 의사 선생님이 테이블을 툭툭 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약 타러 다니지 말고 운동을 해 보세요.”

‘아니 약을 주니까 받으러 왔지. 어이가 없어서. 누구는 이러고 싶어서 이리 다니는 줄 아세요. 주차도 힘들고 예약하고 와도 기다려야 하는 이 병원에 누가 오고 싶어서 그럽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대답은 어이없이 소심했다.

“무슨 운동이요?”

“수영이라든지. 많잖아요.”

“아. 네”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운동이라. 나의 인생에는 운동이 없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몸치이다. 어릴 때부터 너무 당연해서 왜 안 하는지 의문도 없었던 운동. 퇴근하면 그 하루 에너지를 다 쓰고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잤다. 그러면 어느 정도 회복되는 나의 저질 체력을 잘 달래가면서 그동안 잘 살았다. 그렇게 나는 운동할 의지가 전혀 없던 사람이었다.



“아니 운동이 필요하면 처음부터 운동을 하라고 하던지. 왜 이제 와서 운동을 하라 마라야. 수영? 내가 수영한다 해! 내가 수영 등록하고 약도 이제 안 먹을 거라고”

그동안 참았던 내 모습에 대한 울분이 터졌는지 당시 나는 화가 많이 났었다. 이미 익숙하게 약국을 들렀지만 약도 안 받았어야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당장 핸드폰을 꺼내 제일 가까운 수영장을 찾았다.

‘어 여기는 도서관인데. 수영장도 있었네.’

<출처: 픽사베이>

애들과 책 읽으러 자주 갔던 곳인데 거기 수영장이 있었다. 내 인생에 이런 추진력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바로 수영장으로 차를 몰았다. 내게 가용한 시간은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오전 9시부터이다. 그런데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수영 기초반이 다음 달 시작된다고 한다. 게다가 마침 딱 2자리 남았다. 그 유명한 마감 임박을 목격한 이상 나는 등록과 결제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곳은 그렇게 쉽게 등록할 곳이 아니었다. 시에 운영하기 때문에 등록도 어렵고 대기도 상당하다고 한다. 내가 들어가고 싶다 해서 나를 당장 받아줄 곳이 아니었다. 그곳을 등록했으니 이걸 운명이라고 하나...



이제와 고백하자면 나는 돌다리를 수십 번쯤 두들기다 끝내 안 건너는 종류의 인간이다. 계획하다 제풀에 지쳐버리는 스타일이라는 의미다. 그런 내가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무작정 실행하다니. 수영복, 수영모, 수경, 샤워바구니까지 참 야무지게도 준비물을 구하다 말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후회가 몰아친다. 내가 왜 그랬을까. 운동은 무슨 운동. 물에는 어떻게 들어가. 이런 내 마음과 상관없이 개강의 그날은 차근차근 다가왔다. 도망가긴 아무래도 너무 멀리 와버렸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