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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Jan 31. 2020

자동차 빵은 동그라미

“이거 봐. 여기에다 이어케에~ 그이며언~ 빵, 빵, 빵이야아.”

- 우와~ 잘 그렸네~ 빵 그린거야? 무슨 빵?

“빵이야. 빵, 빠앙, 빵!”

- 아~ 으응~ 빵이야?

“이거 자동차 빵이야. 성욱이가 조아하능~ 자동차 빵이야.”

- 그렇구나, 성욱이 주려고 그렸어? 유은이 성욱이 좋아해?

“응...”

- 좋아해? 으응~ 엄마가 좋아하는 빵도 그려줘~

“이것도 자동차, 이것도 자동차, 이건 뻐어쓰 자동차아.”

- 하하하하하하하... 왜 자동차 빵만 그려?

“뻐쓰 자동차 엄마가 조아하능 거니?”

- 아니, 엄마는 안 좋아해.

“그러머언, 성욱이는 조와해?”

- 응, 성욱이는 좋아하지. 흐흐흐흐.     


유은이가 그림을 그린 종이에는 온통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뿐 이었다. 자동차 빵을 그렸다고 했는데 바퀴를 그린 걸까? 자동차를 1도 안 좋아하는 유은이가 남자친구 성욱이에게 주기 위해 그린 자동차 빵은 동그라미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유은이는 지그재그 끼적이기만 1년 반을 넘게 해오다가, 한 달 전부터 제대로 된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그린 도형은 동그라미. 도형 중 동그라미를 제일 먼저 그렸다는 것은 동그라미가 그만큼 그리기 쉽다는 뜻일 거다.

물론, 유은이의 동그라미는 완전한 원형의 동그라미는 아니다. 한쪽이 찌그러진 반달 같기도 하고, 중간만 움푹 들어가 하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작가가 동그라미로 그린 거니, 찌그러졌든 움푹하든 다 같은 동그라미다. 동그라미만 잔뜩 그려놓은 그림의 제목이 자동차 빵인 것처럼. 자동차 빵 그림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조금 각이 진 것들도 같이 모아놓고 보면 동글동글해 보이는 게, 모두 동그라미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동그라미와 참 닮았다. 얼굴도 동그랗고 눈도 손도 엉덩이까지 모두 동그랗다. 동그랗게 생긴 아이는 좋아하는 것도 동그란 것들이다. 블루베리, 방울토마토, 메추리알처럼 동그란 음식을 더 맛있게 먹고, 인형도 동그란 얼굴을 가져야 좋아한다. 곰, 강아지, 호랑이 그리고 고래상어 인형까지도 얼굴은 다 동그랗다. 하다못해 가위바위보를 해도 동그란 주먹만 내밀 정도다. 동그란 아이가 웃을 때는 또 얼마나 더 동그래지는지. 두 눈썹과 입꼬리가 만날 듯이 이어지며 만들어지는 표정은 바로 동그라미다.     


동그란 아이 하나가 태어나고 우리 집은 예전보다 훨씬 더 동그래졌다. 태어날 때부터 응애~응애~ 동그랗게 울던 아기가 지금은 아잉~아잉~ 동그랗게 애교를 떨어주기 때문이다. 아이의 작은 동그라미는 우리 세 식구가 사는 집만이 아니라, 친정집과 시댁까지 닿도록 큰 동심원을 일으켰다. 자식들 앞에서 웃는 낯 보이기를 금처럼 여기셨던 친정 아빠는, 이젠 웃는 게 제일 쉬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 친정집에 갈 때면 가장 먼저 동그란 얼굴을 내미신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참 힘든 삼십 대 초반을 보내고 있는 내 동생도, 동그란 아이에게만은 따뜻한 동그란 얼굴로 변하고 만다. 신혼 때 어색했던 시부모님도 동그란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서로 동그란 얼굴로만 마주하니, 엄마아빠만큼 편해졌다.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 길수록, 서로의 얼굴을 닮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개 오래된 연인이나 노부부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내 경우엔 아이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아이의 얼굴, 표정, 몸짓을 주시하고 있어서일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이가 잘 짓는 표정을 따라 하고 있게 된다. 요즘처럼 웃는 일, 우는 일 많았던 때는 아마도 소녀 시절 이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아이의 표정을 닮아가다 보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아이처럼 둥글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아이를 닮아간다는 것은 내겐 선물 같은 일이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동그란 얼굴을 내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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