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현 Nov 08. 2021

비문이지만, 엄마에게는 아름다운

계절에만   있는 일들을 좋아한다. 날씨 좋은 구월,  계절에 재미 들린 일은 하원 길의 피크닉이다. 사실 피크닉이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한 , 장소가 우리 아파트 산책로에 있는 벤치이기 때문이다. 산책로가 우리  바로 뒤에 있기 때문에,  뒤뜰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더불어 우리 집은 1층이라  그대로 집이 그냥 코앞이다.


피크닉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처음 며칠은 집을 눈앞에 두고 굳이 밖에서 간식을 먹는 것에 대한 효율성을 계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엄마의 생각과는 반대로, 아이는 점점 피크닉 시간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오늘은 뭐 싸왔어요?“ 하며, 잔뜩 기대를 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날이 잦아졌다. 아이 엄마의 취향이란 바로 아이의 취향. 어느새 나도 아이에게 물들어갔고, 우리의 작은 피크닉은 섬세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오늘의 피크닉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오늘은 오후에 스타벅스에 다녀오면서, 미리 피크닉을 위한 호두당근케이크를 포장해왔다. 초록색 로고가 박힌 하얀 케이크 박스를 들고 어린이집에 가니, 유은이는 나보다 내 손을 반겼다.


“엄마~ 뭐예요, 이건? 케익이예요?”

엄마보다 반가운 케이크. 케이크 덕분에 유은이는 집까지 떼 한 번 쓰지 않고 또박또박 잘도 걸어갔다. 아니 거의 날아갔다. 우리의 집 뒤뜰로. 늘 앉는 자리는 산책로 안쪽에 위치한, 등나무 울타리를 지붕처럼 두르고 있는 벤치이다. 지역 신문을 벤치 위에 돗자리 대용으로 깔고, 유은이와 나란히 앉았다.


케이크 박스를 열려는데, 유은이가 우유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래 그래. 집이 바로 요 앞인 걸. 자리에 나머지 짐은 그대로 두고, 유은이와 몸만 들고 집으로 갔다. 유은이 전용 부엉이 컵에 우유를 따르는 동안, 유은이는 “아, 책도 필요해. 책 가져가도 되요?” 하며, 대답도 듣지 않고 책을 한 권 골라냈다.


이제 정말 피크닉을 시작할 시간이다. 오늘의 피크닉은 스타벅스표 호두당근케이크와 우유 한 잔, 생수 한 병과 <다섯 쌍둥이의 봄날 하루> 책과 함께 한다. 오후의 햇살이 등나무 사이로 따뜻하게 비추고, 우린 플라스틱 포크로 케이크를 사이 좋게 한 입씩 찍어 먹는다. 물론 나는 왼손으로는 동화책을 들고 입으로는 글자들을 읽어주느라, 찍어먹을 기회가 별로 없지만. 멀리서 보면 한가로이 보이지만, 실은 꽤 바쁜 와중이다. 그래도 오늘은 짧게나마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무슨 소리지?”

“소리? 저기 찻길에서 나는 차 소리 아니야?”

“아니, 아니!. 무슨 소리지? 당근 소리가 나네?”

“응? 당근 소리라니?”

“아아~ 당근케잌에서 나는 소리네~”


그리고 유은이는 포크를 입에 쏙 넣는 엄마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내가 저런 눈빛으로 유은이를 바라봤을까. 유은이는 내가 준 것을 그대로 돌려주어 기쁘게 한다.

그나저나 당근 소리라니, 엄마가 당근 케이크를 쩝쩝대며 먹는 소리를 말하는 걸까. 케이크 속 당근이 나 좀 먹어줘~ 라며 내는 소리를 말하는 걸까. 설명 좀 해줘, 유은아.


당근 소리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빨리 다음 장을 읽으라는 독촉에 다시 동화책으로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유은이와의 대화는 또다시 아쉽게 끝이 났다. 그러나 짧은 대화만으로도 내게는 오늘의 소풍 이미지로 남아있다.


어쩌면, 정확히 그 의미를 알 수 없기에 더욱 여운이 남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언제나 확실하지 않은 문장으로 내게 말을 전하고, 엄마는 엄마의 경험 안에서 그 말을 해석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비문이지만, 엄마에게는 아름다운 문장들. 문장을 전할 때의 아이의 눈빛과 표정, 목소리는 날 것 그대로 살아있어서, 문장들은 소리로, 이미지로, 영상으로 마음속에 새겨진다.


이전 09화 금요일 밤, 서울행 도로 위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