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아, 네가 곁에 없으니 정말 보고 싶다. 널 보고 싶은 마음에 편지를 써. 넌 아마도 같이 있으면 될 것을, 왜 유치원에 보냈느냐고 원망하려나. 3개월 가까이 엄마하고만 지내다 갑자기 유치원에 가라니, 네게는 큰 산이 되겠구나 싶어. 그래도 엄마 역시 네 첫 등원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 마음을 함께 했다는 것만은 알아줘.
어젯밤, 그러니까 유치원에 가기 하루 전날 캄캄한 밤에 네가 했던 말 기억하니? “가슴에서 콩 콩콩 소리가 나는 것 같아”라고 했잖아.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유은이가 설렘과 두려움, 떨림을 이해하고 느끼며,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또 다른 의미에서 떨었어. 이제 엄마 품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단계를 직면한 사실에 대한 떨림과 두려움으로. 잠들기 전까지 유치원에 가는 것에 대한 감정과 추억 이야기를 나누며, 설레던 우리의 그 밤을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오늘 아침, 아니나 다를까 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지.
“유치원에 꼭 가야 되요? 유치원 가기 싫어요” 라고 말하며, 눈물 맺힌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널 보며, 잠시나마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단다. 자식을 전장에 억지로 등 떠밀어 보내는 부모가 된 심정 같았다고나 할까. 뭐 과장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10%쯤은 지분이 있다고 생각해.
너도 알다시피, 달콤한 거짓말을 잘 꾸며내는 엄마잖니. 오늘 아침 네가 좋아하는 산책을 하러 가자고 했던 꼼수, 지금은 다 알아챘지? 산책하러 가는 길에 유치원에 잠깐 들르자는 꼼수는 엄마도 비겁했다고 생각해. 그래도 떼를 쓰는 너를 유치원까지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가 없었단다.
“유은아, 유치원 한 번 구경만 해보자. 구경해보고 괜찮으면 들어가고, 괜찮지 않으면 안 가도 돼. 엄마랑 집에 가면 돼.”
라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어. 정말로 네가 유치원에 못 갈 것 같은 상황이라면, 엄마는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유치원에 걸어가던 길이 여전히 엄마 머릿속에 선명하다. 서늘하게 그늘진 나무 아래를 조용히 걸어가던 너와 나. 넌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듯 말도 없이 걸어갔지. 엄마가 뜬금없이 노래를 불렀던 건 혹시라도 유치원에 가는 길이 무겁게 느껴질까 걱정해서였단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하니? 루돌프 사슴코야. 엄마도 참, 뜨거운 봄 날씨에 루돌프 사슴코를 왜 불렀는지. 넌 그걸 또 받아 너만의 노래로 개사해서 신나게 불러주었지. 산책으로 위장했던 아침의 그 길은 한 30분은 걸렸을까? 엄마 혼자라면 10분이면 족한 거린데.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담임선생님이 현관 앞에 나와 계셨지. 담임 선생님과는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으니 잘 들어가겠지 싶었는데, 넌 엄마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어.
“엄마, 괜찮지 않아요. 집에 갈래요” 라는 말을 들으며, 엄마는 아침의 회유성 대화를 잠시나마 반성했다. 그래도 사회의 첫발을 내디디는 건데, 엄마는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잡았어. 약한 마음으로 널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건 두 번째, 세 번째의 실패를 가져올 선례로 남게 될 테니까.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반 앞까지 네 손을 잡고 들어갔지. 친구들 몇 명이 다가와 너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놀자며 손을 건넸어. 그래도 넌 엄마 등 뒤에 숨어 부끄러워만 했지.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님이 먼저 가셔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너를 놓아주지 못한 것은 나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지.
네 손을 놓고 뒤를 돌아 유치원을 나갈 때, 유치원이 떠나가라 “엄마 어디 갔어. 엄마 무서워!!!” 하고 소리 지르며 울던 네 목소리 엄마도 들었어. 매정한 엄마가 된 느낌이 들었지만, 꿀꺽 삼켜버렸지. 그 순간 엄마가 할 수 있던 건 그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었어.
약속된 2시간은 금세 지나갔지. 정오 무렵, 너를 데리러 가는 길은 약간의 긴장과 걱정이 섞인 그리운 마음으로 가득했다. 유치원 현관에 서서 널 마주한 순간, 그 순간은 캡처된 영상처럼 내게 남아있어. 유은아, 넌 무척이나 뿌듯한 얼굴로 당당하게 걸어 나왔단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유능감이 네 어깨를 타고 흐르는 걸 보았지. 집에 돌아오면서, 유치원이 너무 좋았다고 내일 또 가고 싶다고 한 씩씩한 모습도 눈 속에 잘 담아두었어. 언젠가 네가 새로운 일에 직면해 두려워할 때, 이날의 모습을 잘 꺼내줄 수 있도록.
네 처음을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싶어. 유치원은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세계의 작은 첫 단추일 뿐이야. 그 작은 단추 끼우기, 넌 잘 해낸 거야. 너의 다른 시작들도 응원할게. 함께 잘해보자.
2020년 5월 11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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