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현 Nov 10. 2021

유은에게

유은아, 네가 곁에 없으니 정말 보고 싶다.  보고 싶은 마음에 편지를 .  아마도 같이 있으면  것을,  유치원에 보냈느냐고 원망하려나. 3개월 가까이 엄마하고만 지내다 갑자기 유치원에 가라니, 네게는  산이 되겠구나 싶어. 그래도 엄마 역시   등원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음을 함께 했다는 것만은 알아줘.


어젯밤, 그러니까 유치원에 가기 하루 전날 캄캄한 밤에 네가 했던 말 기억하니? “가슴에서 콩 콩콩 소리가 나는 것 같아”라고 했잖아.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유은이가 설렘과 두려움, 떨림을 이해하고 느끼며,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또 다른 의미에서 떨었어. 이제 엄마 품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단계를 직면한 사실에 대한 떨림과 두려움으로. 잠들기 전까지 유치원에 가는 것에 대한 감정과 추억 이야기를 나누며, 설레던 우리의 그 밤을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오늘 아침, 아니나 다를까 넌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지.

“유치원에 꼭 가야 되요? 유치원 가기 싫어요” 라고 말하며, 눈물 맺힌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널 보며, 잠시나마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단다. 자식을 전장에 억지로 등 떠밀어 보내는 부모가 된 심정 같았다고나 할까. 뭐 과장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10%쯤은 지분이 있다고 생각해.


너도 알다시피, 달콤한 거짓말을 잘 꾸며내는 엄마잖니. 오늘 아침 네가 좋아하는 산책을 하러 가자고 했던 꼼수, 지금은 다 알아챘지? 산책하러 가는 길에 유치원에 잠깐 들르자는 꼼수는 엄마도 비겁했다고 생각해. 그래도 떼를 쓰는 너를 유치원까지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가 없었단다.

 “유은아, 유치원 한 번 구경만 해보자. 구경해보고 괜찮으면 들어가고, 괜찮지 않으면 안 가도 돼. 엄마랑 집에 가면 돼.”

라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어. 정말로 네가 유치원에 못 갈 것 같은 상황이라면, 엄마는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유치원에 걸어가던 길이 여전히 엄마 머릿속에 선명하다. 서늘하게 그늘진 나무 아래를 조용히 걸어가던 너와 나. 넌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듯 말도 없이 걸어갔지. 엄마가 뜬금없이 노래를 불렀던 건 혹시라도 유치원에 가는 길이 무겁게 느껴질까 걱정해서였단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하니? 루돌프 사슴코야. 엄마도 참, 뜨거운 봄 날씨에 루돌프 사슴코를 왜 불렀는지. 넌 그걸 또 받아 너만의 노래로 개사해서 신나게 불러주었지. 산책으로 위장했던 아침의 그 길은 한 30분은 걸렸을까? 엄마 혼자라면 10분이면 족한 거린데.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마침 담임선생님이 현관 앞에 나와 계셨지. 담임 선생님과는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으니 잘 들어가겠지 싶었는데, 넌 엄마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어.

“엄마, 괜찮지 않아요. 집에 갈래요” 라는 말을 들으며, 엄마는 아침의 회유성 대화를 잠시나마 반성했다. 그래도 사회의 첫발을 내디디는 건데, 엄마는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잡았어. 약한 마음으로 널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건 두 번째, 세 번째의 실패를 가져올 선례로 남게 될 테니까.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반 앞까지 네 손을 잡고 들어갔지. 친구들 몇 명이 다가와 너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놀자며 손을 건넸어. 그래도 넌 엄마 등 뒤에 숨어 부끄러워만 했지.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어머님이 먼저 가셔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너를 놓아주지 못한 것은 나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지.


네 손을 놓고 뒤를 돌아 유치원을 나갈 때, 유치원이 떠나가라 “엄마 어디 갔어. 엄마 무서워!!!” 하고 소리 지르며 울던 네 목소리 엄마도 들었어. 매정한 엄마가 된 느낌이 들었지만, 꿀꺽 삼켜버렸지. 그 순간 엄마가 할 수 있던 건 그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었어.


약속된 2시간은 금세 지나갔지. 정오 무렵, 너를 데리러 가는 길은 약간의 긴장과 걱정이 섞인 그리운 마음으로 가득했다. 유치원 현관에 서서 널 마주한 순간, 그 순간은 캡처된 영상처럼 내게 남아있어. 유은아, 넌 무척이나 뿌듯한 얼굴로 당당하게 걸어 나왔단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유능감이 네 어깨를 타고 흐르는 걸 보았지. 집에 돌아오면서, 유치원이 너무 좋았다고 내일 또 가고 싶다고 한 씩씩한 모습도 눈 속에 잘 담아두었어. 언젠가 네가 새로운 일에 직면해 두려워할 때, 이날의 모습을 잘 꺼내줄 수 있도록.


네 처음을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싶어. 유치원은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세계의 작은 첫 단추일 뿐이야. 그 작은 단추 끼우기, 넌 잘 해낸 거야. 너의 다른 시작들도 응원할게. 함께 잘해보자.


2020년 5월 11일.

엄마가.


이전 18화 사소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