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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재 Oct 07. 2024

끊이지 않는 통화 연결음, 그 끝에 서있을 너

부재중 전화 6통, OO초 콜렉트콜     


덜컹. 심장이 내려앉는다.


잠시 청소기를 돌리고 있을 때였을까. 아니면 화장실에 있을 때였을까. 휴대 전화를 잘 들여다보던 내가,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휴대 전화를 들여다본다. 누구 전화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느냐고? 딸의 전화다.     

부재중 전화 6통.

휴대 전화 속 텍스트는 본 순간부터,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신경은 온통 전화에만 쏠리고, 도무지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다음 전화는 꼭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다시 전화를 못 받게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린다.     


아이유가 전화 공포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듣던 시절이 있었다. 폰 포비아, 연예인이나 사업가들처럼 찾는 사람 많고, 바빠서 전화가 빗발치듯 오는 사람들에게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전화 공포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휴대 전화를 손에 잡을 때면 초조하다. 혹시라도 부재중 전화가 있을 까봐. 부재중 전화가 없어도 불안하다. 이번엔 언젠가 걸려 올지 모를 전화를 기다리느라 그렇다. 기약 없는 전화를 기다린다. 9시 50분, 51분, 52분.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안 오면 걱정이 시작된다.     


지유는 아직 불안은 남아있지만, 학교에 잘 등교하고, 혼자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교실까지 데려다줘야 한다. 그리고 400여m 떨어진 나와 40분에 한 번씩 연결이 되어야 한다. 몸은 떨어졌지만, 존재 확인이 필요하다. 확인의 방식으로, 지유는 쉬는 시간마다 내게 전화한다. 1교시 쉬는 시간, 2교시 쉬는 시간, 3교시 쉬는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 5교시 후에는 교문 앞에서 만나니, 이것으로 전화 타임은 종료된다. 총 4번, 쉬는 시간은 10분간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 단 몇 분이라도, 4번,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야 5교시 수업을 무사히 들을 수 있다. 바보 같은 난 자꾸 전화를 놓친다.      


1교시 쉬는 시간은 등교 후, 잠깐의 집안 정리를 하다 보면 찾아온다. 오늘도 10시에 부재중 전화 6통. 1분 단위로 계속 걸려 온 전화 기록을 보니, 아마도 계속해서 전화를 누른 모양이다.     

끊이지 않는 통화 연결음, 그 끝에 서있을 너를 상상해 본다. 


뚜르르르르. 두근두근. 뚜르르르. 두근두근. 

수신인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에 연결하겠다는 안내 음성을 듣고서야,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다시 같은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 1541. 콜렉트 콜 연결 번호와 엄마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꾹꾹 눌렀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한다. 유선전화의 숫자 버튼을 일일이 하나하나 누르는 수고로움을, 기나긴 통화연결음을 기다리는 시간을, 기다림을 들여 엄마와의 통화를 6번이나 시도했을 상황을 그려본다. 학교 전화는 엄마에게 전화 걸려는 아이들로 언제나 붐빈다. 아이들이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다. 저들끼리 장난치고 소리도 지르겠지. 기다림에 지루해지면 인제 그만 전화를 끊으라고 재촉하기도 했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등을 톡톡 두드리는 아이, 여럿이서 뛰어가다 실수로 부딪치는 아이, 전화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유는 6번이나 전화를 시도했다. 왜 지유는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해서 걸었을까?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불안에 압도된 아이의 눈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안전기지만을, 안전기지에서 평안을 얻을 생각만을 하기에도 바쁘다. 그때 지유의 눈에 둘러쳐진 검정 손수건을 걷어낼 방법은 그저 딱 하나. 그 애의 전화를 받는 것뿐이다. 수화기 너머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엄마는 여기에 그대로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학교에 잘 다녀와서 다시 보자고, 괜찮다고.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기다리는 내게, 딸에게 너무 의존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딸이 의존하게 된 것은 아니냐고. 전화 정도 못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어느 날은 남편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지유랑 너는 좀 떨어져야 해. 떨어지는 게 서로한테 더 나을 것 같아.”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유의 예민성과 두려움은 나를 자극 시킨다. 누군가를 돌보고 챙기기를 좋아하는 나의 어떤 면을. 한편으로, 독단적이고 자기 세계가 과한 면도 있다. 이런 면은 지유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유를 끌고 갔을 수도 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기에 앞서 주저하고, 뒷걸음치는 지유를 기다려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모두 지유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했던 행동들이었다. 좋은 의도와 목적의 행동일지라도, 방법적인 측면에서 틀렸다면 어떨까. 결과적으로 좋은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내가 아이에게 했던 안전기지로서의 돌봄과 챙김이,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어떤 측면에서는 아이가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헤쳐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어야 하는 것을 아니었을지. 자책하고,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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