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
아들에게 말했다.
나 : 글을 쓰면 인생이 달라질까?
아들 : 응, 달라지겠지. 글을 잘 쓰게 되겠지.
나 : 인생은? 사람은?
아들 : 인생은 안 바뀌지. 글만 잘 쓰게 되지.
올해 스무 살 아들에게 물어보았던 질문이다.
남편에게도 똑같이 질문했다.
나 : 글을 쓰면 인생이 달라질까?
남편 : 응, 달라지겠지?
나 : 인생은?
남편 :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렇지.
나 : 애매하게 답하지 말고.
남편 : 인생이 정답이 어디 있어. 1 더하기 1이 2이면 좋지. 글을 쓰든, 책을 읽든 꾸준히 하면 사람이 달라지니까 인생도 달라질 확률이 높겠지. 당연한 거니까. (내 눈치를 본다)
인생이 달라진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책을 출판하거나 그럴듯한 이름 석자를 알리는 일이 최종 목표인가? 아니다. 그렇다. 브런치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나도 솔직히 그렇다. 인생이 달라졌다는 확인 도장. 그렇다고 이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목표이면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니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어떤 소재로 글을 쓸지. 고민한다. 아직은 뒤죽박죽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브런치 친구들이 참 고맙다. 아직 독자라는 말도 어색하다. 아직은 글은 일기 수준이고 서평은 독서록 수준이지만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괜찮다고. 나아질 거라고 위로한다.
시험 준비하면서 영어 공부하던 때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점수에만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가 심했다. 영 점수가 오르지 않아서. 생각을 했다. ‘왜? 점수가 안 오르지?' 난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젊은 친구들이 기출문제 풀고 독해할 때 중학 영단어부터 외었다. 그러길 잘했다. 지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직감적으로 난 그렇게 느낀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만 봐도 나는 작아졌다. 남들이 공부하는 책을 보았다. 형광펜으로 그은 줄들로 가득한 책. 메모지가 가득한 노트. 난 그것만 봐도 위축되었다.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괜찮아.
사람은 다른 속도를 가졌어.
난 느림보 거북이니까.
거북이처럼 가면 돼.
그러니 괜찮아.’
세상의 이치는 왜 이리 똑같은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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