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관하여]
그때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때 그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후회들을 하면서 살았다. 지금도 후회를 하면서 산다. 횟수가 줄었을 뿐이다.
그때 그렇게 하고. 그때 그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새해가 되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2013년 [어바웃 타임]이다. 내용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한 집안의 남자들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레이철 맥아담스가 나온다. 여주인공은 레이철이 남자 주인공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다. 남자 주인공의 아빠가 나오는 장면에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남자 주인공 아빠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아빠는 시간여행자로서 마지막으로 어린 아들과 해변에서 하루 종일 논다. 자신이 일하는라 바빠서 아들과 마음껏 놀아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하필 이때가 내가 힘들어서 막내를 친정에 맡기고 신나게 놀면서 봤던 영화다.
6살 아들이랑 놀아주는 게 힘들었다.
베개 싸움도 해야 하고, 젠가도 해야 하고, 부루마블도 해야 하고…
나에게는 모두 ‘해야 하고’였다.
그 장면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시간, 가족, 친구, 사랑
인생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굵직한 것들은 의외로 몇 개 안된다. 대개 비슷하다. 우리 집 식탁 뒤쪽 벽에 영화 포스터 액자를 걸어 두었다. 일부러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내가 예전에 주문해 놓은 포스터 중에 있었다. 이걸 보면 의외로 리마인드가 된다.
“성수야 엄마가 놀아 줄게.” 가 "성수야 엄마랑 놀자.”로 바뀌었다.
근대 영화처럼 아이가 매번 사랑스럽거나 주인공 아빠처럼 행복에 넘치는 얼굴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랑 다소(?) 다르다. 이제 나에게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아들이 엄마에게 놀아 달라고. 반짝거리는 두눈으로 나를 바라 봐 줄 시간이 곧 끝 난다. 아쉬움 반, 시원함 반이다.
보면 기분 좋은 것들.
보면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집안에 놓아 보자.
시간여행은 할 수 없어도 내 마음 가짐은 바꿀 수 있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