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을 소개합니다.

내 방은 거실

by 성희

내 방은 거실

새벽 아침에 일어나 무거운 두 다리를 이끌고 책상 앞까지 오는 길은 천리길이다. 나는 아파트에 산다. 산이 보이는 곳이다. 거실에는 3인용 천 소파와 4인용 가죽 소파 2개가 있다. 집이 넓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여름에 소파에서 자다 보니 기존에 쓰던 3인용 소파가 불편해졌다. 소파에 누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꽉 낀다. 옆으로 누우면 좀 낫긴 하다. 그래서 4인용 소파를 샀다. 확장한 베란다 쪽 바닥에 습기가 찼다. 3인용 소파를 버리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곳에 소파를 두게 되었다. 베란다를 등지고 소파를 놓았다. 소파 앞에 조그만 거실 테이블을 놓고 사용했다. 나는 물건을 어지르는 재주가 있다. 결국 큰 책상으로 바꿨다. 쉬는 날엔 그 3인용 소파에 누워 빈둥댄다.


그 소파 앞에 흰색 책상을 놓았다. 책상에는 중고로 산 노트북 한 대, 아이패드, 신랑한테 선물 받은 에어 팟, 최신형 핸드폰 충전 거치대, 아들한테 얻은 카카오 프렌즈 마우스패드, 신용카드 만들고 선물 받은 청록색 스타벅스 다이어리, 읽고 있는 책 두 권, 시험공부 책 한 권, 다이소에서 산 내가 좋아하는 볼펜 몇 자루, 패드형 노트와 녹차 잔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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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앉은자리에서 보면 왼쪽에 책장이 하나 있다. 내 미니 서점이다. 맨 아래쪽 문이 달린 칸에는 버리지 못한 잡동사니가 있다. 쓰다 만 노트들이 스무 권쯤 되는 것 같다. 진득이 노트 한 권을 다 못쓰는 편이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첫째 칸에는 잡지책과 다이어리 몇 권, 또 쓰다 만 노트들이 있다. 다시 쓰기 괜찮은 노트만 골라 놓았다. 출판사에서 구독하고 하고 있는 잡지책은 생각보다 가볍게 읽기에 좋다. 두 번째 칸에는 읽을 책들이 있다. 요즘은 책을 고를 때 분야를 다양하게 고르려고 노력한다. 지금 보니 [중국 통사], [콘테츠의 미래] 이렇게 역사책이랑 경제/사회분야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제일 늦게 읽게 될 것 같다. (풋) 책 앞쪽에는 필기도구를 넣어 둔 다이소에서 산 바구니가 있다. 바구니에는 필기도구, 집게, 메모지, 스카치테이프, 마트 영주증, 고무줄 몇 개 그리고 주름개선 화장품이 들어 있다. 세 번째 칸은 읽다가 만 책들이 있는데 대개 벽돌 책들이다. 밀린 숙제를 보는 것 같다. 전자책 리더기도 있다. 지름신이 강림하는 날 샀다. 하나는 예스 24에서 산 국산용, 하나는 아마존 킨들이다. 이건 영어 공부하겠다고 샀던 거다. 이러다 고물 되겠다 싶다. 네 번째 칸은 읽은 책들이다. 읽은 책들을 보면 서평을 쓴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다르다.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은 책을 읽을 때 밀도가 다르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내가 서평을 쓰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엄마도 엄마만의 방이 필요하다.

방 3개 화장실 2개_ 4인 가족 평범한 집이다. 나만 그런가? 갱년기라 그런가? 당연하게 살아왔는데 방이 없는 게 불편하다. 아들들은 밤까지 열심히 컴퓨터를 한다. 아들 키우는 엄마들을 알 것이다. 신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난 9시에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다. 안방에서도 막내아들방에서도 잘 수 없다. 소파형 침대를 사야 하나? 소파 앞에 잠자리를 펴고 몇 번 잠을 잔 적이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개고 펴고 하는 것도 노동이다. 그래도 그렇게 할까? 이리저리 생각을 해봐도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침대형 소파를 사고 3인용 소파 자리에 놓으면 가능은 하겠지만 거실은 가족들이 왔다 갔다 해서 9시 취침은 힘들다. 그럼 안방으로 들어갈까? 신랑의 마우스 소리 때문에 어제는 이어폰을 끼고 누웠다. 근데 음악을 들으며 자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귀가 아프다. 내가 까탈스러운 사람인가? 거실을 내방으로 만드느냐? 아님 안방이나 아들방에서 9시 취침이 가능하도록 타협점을 찾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요즘은 자꾸 ‘내 것’에 집착한다. ‘이건 엄마 거다. 빌려주는 거다.’ ‘엄마도 태어날 때부터 엄마 아니었거든!’ 엄마도 방 필요하다고 했더니 막내가 ‘거실이 엄마 방이지 않냐’고 실실 웃으며 대꾸한다. 나도 화가 나서 그럼 엄마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하고 오라고 우겼다. 가족들에게 노크하고 거실에 들어오라고 했다.

미쳐가나 보다.

진짜로 지금, 내 방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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