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우리의 결혼이 꽤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해서 결혼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우리는 다른 가족의 개입 없이 둘만의 결심으로 결혼했고, 결혼한 일상에도 우리는 둘 밖에 없었으니까.
자발적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커플은 대략 두 가지 루트를 통해 이루어진다.
첫 번째로 한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갔다가 그곳의 현지인과 만나 연애한 뒤 결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영국 남자가 한국에 갔다가 한국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든지, 아니면 그 반대로 한국 여자가 영국에 갔다가 영국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든지. 이 경우, 타지인이 현지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높다면 보통 그 현지를 중심으로 결혼 생활이 이루어진다. 아니면 타지인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현지인이 따라가기도 하고.
두 번째는 두 사람이 제3국으로 따로 여행/연수 혹은 이민 갔다가 우연찮게 만나 연애를 한 뒤 결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가 호주로 여행을 갔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든지. 이 경우에도 보통은 비자 문제 때문에 둘 중 한 명의 모국에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비자 문제가 없다면 둘이 만난 나라나 아니면 아예 다른 나라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다.
남편과 나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케이스였다.
우리는 둘 다 모국을 떠난 지 꽤 되어 딱히 한국이나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없었고, 이미 영국에서 직장을 비롯한 삶의 터전을 어느 정도 닦아 두었기에 자연스레 영국에서 생활을 이어갔을 뿐이다.
보통 결혼을 하게 되면 '시월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장 스트레스받는 게 부부사이가 아닌 그 외 가족 관계라는데, 나와 남편은 가족들의 개입 없이 둘이 알아서 결혼과 그 외 생활에 대한 모든 준비를 이루었기에 나는 그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줄 알았다.
문화가 달라 생신이라고 해서 따로 용돈을 챙겨 드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본다고 해도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라 잔소리를 들을 걱정도 없고, 얼마나 좋은가!
우리는 진심으로 둘만의 결혼 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건 이미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
먼저 각자의 가족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내가 스페인에서 겪은 것처럼 남편 역시 한국에 갈 때면 잔뜩 긴장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한국에 가는 빈도수 자체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내 스페인에서의 경험과 맞먹을 수준은 아니다. 거기다 내 가족들은 '남자가 어딜 주방에 들어가', '여자가 어디서!', '딸은 출가외인', 등등의 전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딸을 별로 귀하게 키우지 않았던 분들답게 도리어 내게 '남편에게 잘해라'를 종용했기 때문에 남편은 사위로서 꽤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외국인이라서 좀 어려워하며 되려 집안사람들이 눈치를 봤는데, 그는 도리어 그 대접을 불편해했다. 자기도 물 정도는 혼자 따라 마실 수 있는데, 왜 그것도 못하게 하냐며, 자신의 주체성과 자립성을 의심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좀 발끈하면서.
유럽에서 두 발로 걷고 말할 줄 아는 신기한 개 취급을 받는데 익숙했던 나는 속으로 배부른 소리 한다고 좀 어이없어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라서 나는 가족을 포함해서 그가 만나야 하는 모든 한국인을 대표하는 기분으로 한국에서는 늘 조금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는데, 그것 역시 오래 할 짓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나는 스페인에서 중간에 끼인 남편의 역할과 그 때문에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이해할 수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열받는 건 받는 거라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 외 서로의 문화나 나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것도 결혼하고 나니 우리의 관계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긴 했다.
연애할 때야 신기하네, 하고 넘어가면 됐지만, 결혼하고 일상을 오래 유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자라온 환경의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더 그랬고.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서로의 나라를 방문할 때는 꼭 한 번씩 언성을 높여 싸우곤 했다.
예를 들어, 남편은 한국에서 횡단보도임에도 차가 멈추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어했고, 간혹 배 째라는 식으로 대뜸 차도로 발을 내딛곤 했는데 그게 보는 사람을 돌게 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러다가 진짜로 사고가 나면 누구 손해란 말인가!
놀란 내가 화를 내자, 남편은 잘못한 건 저 차들인데 왜 자기한테 화를 내냐며 도리어 화를 냈고, 그렇게 싸움으로 번졌다.
뭐 스페인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육아 방식의 차이 때문에도 꽤 싸우긴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크게 싸우고 난 뒤 우리 사이에는 암묵적 룰이 생겼다.
각자의 나라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뭐라고 따지지 말 것. 우리가 싸운다고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까.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도 뭐라고 말하지 말 것. 어차피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가 뭐라고 한다고 바꿀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니.
한국에서도 미역국에 소고기를 넣느냐, 조개를 넣느냐로 싸우는 부부도 있다던데, 아예 다른 두 문화권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났으니 어떻겠는가.
나는 그 뻔한 사실을 꽤나 뒤늦게 알게 된 것에 불과했다.